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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는 여행에 지쳤다면, “읽고, 느끼고 사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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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마시는 여행에 지쳤다면, “읽고, 느끼고 사유하라”

입력
2019.08.15 16:47
수정
2019.08.15 19:3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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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카잔 대성당 앞에 서 있는 쿠투조프의 동상. 쿠투조프는 보르지노 전투 때 러시아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격전을 벌인 장수로, 톨스토이는 그를 명장으로 평가했다. 역사비평사 제공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카잔 대성당 앞에 서 있는 쿠투조프의 동상. 쿠투조프는 보르지노 전투 때 러시아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격전을 벌인 장수로, 톨스토이는 그를 명장으로 평가했다. 역사비평사 제공

그 흔한 명소 지도나 맛집 리스트는 없지만, 꺼내 읽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질을 한껏 높여 주는 인문 기행서의 출간이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관광이 아니라 여행에서 인문학적 배움과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다. 떠나는 사람도, 장소도, 목적도 다르지만 “여행은 비우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새 책 3권을 소개한다.

◇나만의 ‘사유 루트’를 개척하고 싶다면

독일 역사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서해문집 제공
독일 역사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서해문집 제공

‘그랜드피스투어’의 여행지는 패배와 극복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1, 2차 세계대전이란 비극과 분단의 아픔을 겪고 유럽의 새로운 리더로 성장한 독일, 한국과 마찬가지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침략과 수난의 역사를 반복했던 폴란드와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냉전 시기 공포와 두려움의 땅이었던 러시아가 첫 행선지다. 카자흐스탄 키맵 대학교 방문학자인 정다훈씨는 서구 중심의 시각과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로 세상을 보고 싶어 이곳으로 떠났다.

정씨가 기획한 테마 여행 지원 프로그램인 ‘그랜드피스투어’는 국가와 자본 권력이 만들어 놓은 경계와 한계를 넘어 주체적인 관점에서 기획하는 여행을 지향한다. 17세기 초반 유럽 상류층 귀족 자제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돌아보며 문물을 익히는 여행이었던 ‘그랜드투어’를 비틀어 만든 개념이다. 인권, 환경 보호 등 테마는 정하기 나름이다.

44일간의 첫 여행에서 정씨가 천착한 주제는 ‘한반도 분단 극복과 평화’다. 한때 분단과 경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그는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았던 힘이 동서독의 중단 없는 교류에 있었음을 배운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서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개하고 반성하려 노력하는 현장을 둘러보곤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러시아 붉은 광장의 차가운 묘 앞에서 만난 레닌에게는 러시아 혁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천편일률적인 여행 코스에 지치거나, 새로운 사유의 전환이 필요할 때 나만의 그랜드피스투어 계획을 짜보는 건 어떨까.

그랜드피스투어

정다훈 지음

서해문집 발행ㆍ280쪽ㆍ1만4,800원

◇거장의 발자취를 좇다 나를 찾는 순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르바트 거리에 세워진 푸시킨 부부의 동상. 역사비평사 제공.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아르바트 거리에 세워진 푸시킨 부부의 동상. 역사비평사 제공.

‘나의 영국 인문 기행’과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은 그 나라의 역사, 문학, 예술, 철학이 남긴 흔적을 탐색하며 현재를 묻는다. 재일조선인 2세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지닌 서경식 도쿄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가 떠난 곳은 영국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등 우상이라고도 할 법한 수많은 문학가들을 낳은 곳 (…) 이와 동시에 대제국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휘해왔던 두려울 정도로 냉혹하고 교활했던 측면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서 교수에게 영국은 모순으로 가득 찬, 암울한 양면성을 내뿜는 그래서 더 매혹적인 곳이다. 그의 여행기는 단순한 감상문을 넘어선다.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식민지와 거대한 제국의 역사에 대해 질문하고, 그 속에서 신음하며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탐구한다. 영국이 배출한 음악가이자 반전평화주의자였던 벤저민 브리튼이 만든 가곡 ‘겨울의 언어’의 마지막 곡을 들으며, 자본주의 사회를 극단적으로 풍자한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를 보고 나서 그는 인류는 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러시아와 유럽의 문호라 일컫는 작가 10명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전 생애의 흔적을 기록한다. 부유한 삶을 누렸던 괴테의 으리으리한 생가, 묘비나 조각상 하나 없이 너무나도 소박한 톨스토이의 무덤에서부터 ‘레미제라블’의 워털루 전투 현장, ‘수레바퀴 밑에서’(헤르만 헤세)의 무대였던 마울브론 수도원과 학교 등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까지 발품을 팔며 찾아 다녔다. 격변의 시대를 거장들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또 작품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나의 영국 인문기행

서경식 지음ㆍ최재혁 옮김

반비 발행ㆍ296쪽ㆍ1만7,000원

임헌영의 유럽문학기행

임헌영 지음

역사비평사 발행ㆍ456쪽ㆍ2만2,000원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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