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모 열사 손자 정화영 옹 인터뷰
[저작권 한국일보]독립유공자 정성모 열사의 손자 정화영씨.

“가끔 꺼내보려고 깊이 넣어두지도 않아.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독립유공자 정성모 열사의 손자 정화영(89) 옹은 할아버지의 훈장을 꺼내 보이며 “자랑스럽다”는 말을 기자에게 몇 번이나 되뇌었다. 지난 13일 충남 홍성군에 살고 있는 정 옹을 찾았다. 대문에 ‘독립유공자의 집’, ‘국가유공자의 집’ 팻말이 나란히 걸려 있는 게 확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정 옹의 집은 벽 사방에 금이 가 당장이라도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아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할아버지 훈장 때문에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절을 열 번 백 번이라고 하고 싶다”고 했다. 한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독립유공자 후손이란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정성모 열사는 지난 2005년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한 공로를 인정 받아 대통령 표창과 훈장을 받았다. 정 옹의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데 무려 65년이 걸렸다. 광복 이후 사는 게 바빠 독립유공자 신청하는 것도 잊고 지냈다. 정성모 열사는 1919년 4월1일 마을 인근에서 동료들과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운동은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됐지만 다음 날 그는 충남 홍성 장터에 나가 다시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이 대가는 혹독했다. 일제경찰에게 붙잡혀 무려 90대나 매질을 당했다.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정 옹은 “당시 약이 있나 뭐가 있나, 한약으로 고약을 만들어서 붙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순간에 가장이 드러누우면서 가세도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땅이 있어도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귀리로 연명했을 정도였다. 정 옹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 경찰보다 친일파들의 수탈이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일본 권력을 등에 업은 친일파들은 공짜로 일을 부리면서 부자가 됐다”며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당장 일본 경찰에 보고를 해 나 역시 경찰에게 맞기도 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충남 홍성군 금마면 금북로에 있는 정화영 씨 집.

가난은 대물림 됐다. 정 옹도 국민학교만 마치고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정씨의 여동생은 홍역에 걸렸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정 옹은 이후 6.25 전쟁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국민학교만 나온 정 옹이 전쟁 후 돈을 벌 데란 많지 않았다. 그래서 광부가 됐다. 폐광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마을에서 잡일을 하며 가정을 꾸렸다. 20여년 전엔 이웃집 담벼락을 고쳐주다 바닥에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아직도 제대로 걷지 못한다. 그는 “화장실이 밖에 있어 걸어가다 넘어져 뇌진탕에 걸리기도 했고 빨리 걸을 수가 없어 가는 도중에 실례를 하기도 했는데 집 안에 화장실만 있으면 소원이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딱한 정씨의 사정을 들은 충남서부보훈지청 복지사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집을 고쳐주는 한국 해비타트에 이 사연을 소개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이면서 국가유공자이기까지 한 그는 충분히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도 처음엔 연신 거절했다고 한다. 본인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담당자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그는 드디어 다음달 집 안에 화장실이 딸려 있는 새집으로 이사를 갈 수 있게 됐다.

정 옹은 가난이 너무 고돼서 젊었을 땐 떵떵거리며 잘 사는 친일파에게 딱 한번 부러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본인이 독립유공자 후손이면서 6.25 참전 용사라는 데서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친일 하면 당시는 좋았겠지만 지금 와서는 부끄러운 거여. 광복을 이룬 날 마을사람들이 제일 먼저 동네 친일파를 때려 죽이러 갔었다고. 그게 무서워 밤 사이 도망가고 했지. 그런데 난 이렇게 떳떳하게 삼시세끼 잘 먹고 사니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다만 이 좋은 세상을 못보고 먼저 간 마누라가 아쉬울 뿐이여.”

홍성=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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