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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동료 위해 소리 질러!” 희망 외친 ‘록커’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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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동료 위해 소리 질러!” 희망 외친 ‘록커’ 경찰들

입력
2019.08.11 15:54
수정
2019.08.11 23:1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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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조 록밴드 ‘나이트메어’

사고 조사 중 다친 경찰 가족 위해

자선공연으로 기부금 모아

지난 10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록앤드롤 라이브 펍에서 경찰관이 주축인 직장인 밴드 나이트메어가 두 번째 자선공연을 하고 있다. 보컬 강릉경찰서 이현서(가운데) 경장, 리드기타 경찰청 정승혁(오른쪽에서 두 번째) 경사, 기타 하남시청 공무원 권혁주(맨 오른쪽)씨, 래퍼 김진선(왼쪽에서 두 번째)씨, 베이스 이성환씨. 나이트메어 제공
지난 10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록앤드롤 라이브 펍에서 경찰관이 주축인 직장인 밴드 나이트메어가 두 번째 자선공연을 하고 있다. 보컬 강릉경찰서 이현서(가운데) 경장, 리드기타 경찰청 정승혁(오른쪽에서 두 번째) 경사, 기타 하남시청 공무원 권혁주(맨 오른쪽)씨, 래퍼 김진선(왼쪽에서 두 번째)씨, 베이스 이성환씨. 나이트메어 제공

”예원아 힘내라!”

지난 10일 오후 7시 서울 압구정동의 한 건물 지하 1층 ‘록앤드롤 라이브 펍’ 무대에 선 직장인 밴드 나이트메어가 공연에 앞서 선창하자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예원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어 리드기타 정승혁(40ㆍ경찰청 교육과) 경사의 귀를 찢을 듯한 전기기타 선율과 함께 해외밴드 어벤지드 세븐폴드의 히트곡 ‘나이트메어’ 연주가 시작됐다. 보컬 이현서(37ㆍ강원 강릉경찰서) 경장의 고음은 폭풍 같은 드럼과 강렬한 전자악기의 선율을 뚫고 지하공간을 채웠다.

◇동료 위해 무대에 선 경찰관들

나이트메어는 현직 경찰관들이 주축이 된 7인조 록 밴드다. 리더 정 경사와 보컬 이 경장은 부부 경찰관이다. 건반은 인천 남동경찰서 조해수(32) 경장이고, 드럼은 서울경찰청 김모 경사다. 여기에 경기 하남시청 공무원 권혁주(35)씨가 기타, 회사원 이성환(36)씨가 베이스,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김진선(28)씨가 래퍼 겸 서브보컬로 가세했다.

이날 공연은 입장료 없이 관객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공연의 주제는 ‘꺾이지 않는 날개를 위하여’. 여기서 날개의 주인은 경찰의 상징 참수리를 뜻하고, 기부금은 날개가 꺾일 어려움에 처한 경찰관에게 전달된다. 공연 시작 전 관객과 함께 외친 예원이는 이 경찰관의 딸 이름이다.

지난 6월 청와대 게시판에는 ‘경찰 아빠의 비애, 저희 가족에게 힘이 되어 주세요’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고속도로 연쇄추돌 사고 처리 중 다친 경찰관은 “근무지가 고속도로인데도 도로에 서 있었다는 게 과실이라 공무상 상해가 일부 불승인됐고, 자비로 재활치료를 한다”고 한탄했다.

'꺾이지 않는 날개를 위하여' 자선공연 포스터. 더 먼데이 필링 제공
'꺾이지 않는 날개를 위하여' 자선공연 포스터. 더 먼데이 필링 제공

이 경찰관의 부인이 남편을 간호하다 입원했고, 딸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게 알려지며 주목을 받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청원은 한 달간 1만2,019명의 동의를 받고 종료됐다.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예원이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 경사는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는 걸 알리고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공연을 준비했다”며 “딸 곁을 지키느라 오지 못하지만 ‘꼭 이름을 불러달라’는 부탁에 ‘예원아 힘내라’를 외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밴드 결성 1년, 두 번의 자선공연

나이트메어는 결성한 지 고작 1년된 신생 밴드다. 군악대 출신으로 여러 ‘인디밴드’에서 활동했던 정 경사가 지난해 8월 팀을 꾸렸다. 어려운 경찰관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은 같은 해 11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공연은 인디밴드의 성지인 서울 홍대입구의 한 클럽을 빌려서 했다. 100여 만원을 모금해 2015년 10월 경기 의정부시의 아파트 화재 때 주민을 구하기 위해 불길에 뛰어들었던 경찰관에게 전했다.

공연 취지를 듣고 경찰관이 아닌 멤버들도 흔쾌히 동의했지만 첫 공연 성사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각기 다른 지역에 사는 멤버들이 한달에 두 번 모여서 연습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준급 보컬을 찾지 못해 애도 먹었다.

그러던 정 경사의 눈에 학창시절부터 록 음악에 심취했던 부인이 들어왔다. 이 경장의 목소리를 밴드 반주에 얹어보니 ‘이 정도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경장은 “록을 좋아해도 무대에서 부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동료 경찰관을 돕기 위해 동참했다”고 말했다.

부부경찰관인 경찰청 정승혁 경사와 강원 강릉경찰서 이현서 경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홍대 첫 자선공연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나이트메어 제공
부부경찰관인 경찰청 정승혁 경사와 강원 강릉경찰서 이현서 경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홍대 첫 자선공연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나이트메어 제공

무명의 신생 밴드를 무대에 올려준 건 4인조 밴드 ‘더 먼데이 필링(TMF)’이다. 함께 연습을 했던 TMF는 공연 취지에 감동해 무대를 섭외하고 합동공연으로 나이트메어를 지원했다. 록 저변이 취약한 국내에서는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TMF는 자작곡과 연주까지 가능한 실력파 뮤지션으로 꼽힌다. 지난해에는 ‘메탈리카’ 등이 공연했던 미국 LA의 전설적인 클럽 ‘위스키고고(Whiskey A GoGo)’ 무대에도 올랐다. 국내 밴드 중에선 2015년 ‘윤도현밴드’에 이어 두 번째였다.

◇작은 물결이 거센 파도가 될 때까지

TMF는 올해도 나이트메어의 자선 공연에서 전반부 약 1시간을 책임지는 등 든든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참수리 날개를 상징하는 주제를 직접 선정했고, 공연 포스터도 뚝딱 만들었다. 여기에 자신들이 매주 목요일 공연을 하는 록앤드롤 라이브 펍 무대도 섭외했다. 공연 취지를 전해 들은 펍 대표 노재환씨는 최소 60만원인 주말 대관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베이시스트인 노씨도 인디밴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다. 그는 “제안을 듣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수락했다”며 “이런 공연을 더 많은 관객들이 즐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록 밴드 더 먼데이 필링이 10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록앤드롤 라이브 펍에서 경찰관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을 펼치고 있다. 김창훈 기자
록 밴드 더 먼데이 필링이 10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 록앤드롤 라이브 펍에서 경찰관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을 펼치고 있다. 김창훈 기자

하지만 이날 관객은 100명 안팎에 그쳤다. 경찰의 공식 행사가 아니라 이렇다 할 홍보를 하지 않았고 올해 최악의 폭염이 내리쬔 탓이 컸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촛불이 타오르며 동료 경찰관들이 대거 집회 관리에 투입된 영향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나이트메어 멤버 지인들과 TMF 팬, 멀리 강원에서 응원 온 경찰관들이 폭염보다 뜨거운 록 음악을 즐겼다.

나이트메어는 국내밴드 브로큰 발렌타인의 ‘포커페이스’와 직접 편곡한 변진섭의 ‘새들처럼’ 등 10곡을 열창하며 무대를 달궜다. 정 경사가 새로 장만한 자동튜닝 기타가 말썽을 일으켰고, 마이크 연결이 끊어져 무음으로 한 두 소절을 건너뛰기도 했지만 관객들은 아낌 없는 박수와 환호로 응원했다.

공연 모금액은 300만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적다면 적지만 지난해 첫 공연에 비하면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한 동료들이 ‘봉투’로 응원했고, 공연 소식을 들은 민갑룡 경찰청장도 금일봉을 전달했다.

TMF 리더 최천중(28)씨는 “작년 공연 뒤 올해는 우리 멤버들이 먼저 하자고 나이트메어를 재촉했다”며 “TMF가 메이저 밴드가 아니라 큰 도움이 못 되는 게 죄송하지만 의미 있는 공연이라 매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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