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

※ 세상을 뜬 이들을 추억합니다. 동시대를 살아 든든했고 또 내내 고마울 이들에게 주목합니다. ‘가만한’은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뜻입니다. ‘가만한 당신’은 격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인도네시아는 매년 2,000건이 넘는 자연재해를 겪는 재해취약국가다. 쓰나미 같은 대형 재해도 잦다. 국가 재난관리청 공보관 수토포(Sutopo)는 그런 참극의 전모와 데이터를 파악해 시민과 언론에 알리는 일을 했다. 그런 그를 시민과 내ㆍ외신 기자들이 신뢰하고 존경하고 심지어 사랑했다. 그 기적 같은 이야기를 남기고 그가 별세했다. 인스타그램.

인도네시아는 자연재해가 무척 잦은 나라다. 호주-인도 해양지각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부딪치고 포개지는 이른바 ‘불의 고리’ 위에 얹혀, 지진 화산 쓰나미 같은 지질학적 재해가 잦다. 1만 7,000여 개 섬으로 이뤄진 국토 자체가 격렬한 지각활동의 움직이는 흔적이다. 몬순 우기의 홍수에도 취약하다. 강우량이 많기도 하지만 지반이 무르고 낮아서 그렇다. 당장 수도 자카르타부터 전체 면적의 40%가 해수면 아래에 있다. 한해 평균 2,000여 건의 자연재해 중 건수 기준 약 95%가 홍수와 태풍, 산사태 같은 기후재해다.

2009년 3월 26일 새벽 자카르타 서쪽 수도권 탕에랑 시(市) 시푸타트의 시투긴퉁(Situ Gintung)댐이 무너져 주민 90여 명이 숨졌다. 주무부처인 공공건설부(Public Works)는 댐 자체 구조에는 이상이 없었다며 사고 원인을 “이례적 집중호우”탓으로 돌렸다. 사고 지역에는 전날 오후부터 113㎜ 폭우가 쏟아졌다. 댐은 피식민 시절인 193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건립한 거여서 노후한 데다 암반 사력댐이 아니라 월류시 붕괴 위험이 큰 흙댐이었다. 당국의 해명은 그럴싸했고, 조기 수습과 보상 협의가 책임을 따지는 여론을 압도해갔다.

그 분위기를 180도 뒤엎는 일이 일어났다. 넉 달 전인 2008년 12월 댐 제방에서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는 균열과 누수 현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국책연구기관인 ‘응용기술평가원(BPPT)’의 한 연구원이 폭로한 거였다.(tirto.id) 그가 BPPT의 지역자원개발팀의 40세 선임 연구원 수토포 푸르워 누그로호(Sutopo Purwo Nugroho)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당시 주민들도 당국에 그 하자를 지적하며 댐 보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준공 당시 31ha 유역에 최고 수심 10m에 이르던 댐 인공호수는, 장기간 토양 퇴적과 당국의 방치로 사고 당시 21.4ha에 수심 4m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폭로 후 그는 위협에 시달렸다. 하지만 시민과 언론이 그를 주목했다. 그 덕인지 그는 보복성 인사조치 대신 사고 원인 조사 및 대책 팀의 일원으로 발탁됐다. 당국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그가 필요했다.

2004년 파국적인 쓰나미를 겪은 인도네시아 정부와 의회가 2007년 재난관리법을 제정해 대통령 직속 부처총괄기구로 설립한 게 국가재난관리청(BNPB, Badan Nasional Penanggulangan Bancana)이다. BNPB가 2010년 수토포에게 재난 정보관리 및 공보 센터장을 맡아달라고 청했다.

그는 그 제안을 세 차례 거듭 거절했다. 우선 그는 연구전담 교수가 되는 게 꿈인 과학자였고, 공보 업무 경험도 전무했다. 권력의 이해에 끼인 공무원의 한계, 혹은 운명도 그는 댐 파동 당시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는 그 자리가 “정부가 원하는 말만 해야 하는 자리일 것이라 생각”했다. “조직 책임자를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훗날 말했다.

BNPB가 그에게 맡긴 첫 보직은 그래서 공보센터장이 아닌 재난경감팀장이었다. 하지만, 그가 발령받자마자 9월 파푸아 와쇼(Wasior)에서 대형 홍수가 발생했고, 한 달 뒤 대형 쓰나미가 수마트라 서쪽 믄타와이(Mentawai)제도를 덮쳤다. 수토포는 사태에 떠밀려 어영부영 공보관이 됐다.

인도네시아 재해 공보관은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을 비롯한 전세계 언론을 상대해야 하는 자리다. 재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린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신속하면 정확하기 힘들고, 공식 정보가 디디면 거짓들이 생겨나 소문으로 번진다. 재해의 공포와 혼란 상황에서 괴담은 또 하나의 재해이고, 선정성은 언론의 위험한 본능 중 하나다. 이래저래 국가기관은 신뢰를 잃기 십상이다. 그뿐 아니다. 부실한 재해 대비와 더딘 수습 상황에서는 책임을 따져야 할 일이 잦다. 그건 진실의 영역이지만 동시에 정치의 영역, 선택의 영역이다. 조직을 위해선 예산 기관의 심기를 헤아려야 하고, 보신 출세를 하려면 인사권자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진실은 그렇게 곧잘 덮이고 휘어진다. 수토포가 맡은 게 그런 일이었다. 그가 한사코 마다했던 건, 어쩌면 자신이 없어서였다. 신속 정확은 개인의 역량으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고, 당시 인도네시아 재해 공보 시스템은 빈말로라도 좋은 말 해주기 힘든 지경이었다. 시종 정직하고 정의로울 자신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에겐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있었다.

재임 만 9년 만인 지난 7월 7일, BNPB 공보센터장 수토포가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49세. 현지 언론은 물론이고, 가히 전세계 주요 외신이 그 소식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할 말을 하던 공보관(straight-shooting government spokesman)”이라 썼고, AP뉴스는 “가차없는 진실로 허위와 싸우며 부실한 재난 대비 태세나 피해를 키운 인적 과실을 거침없이 밝힘으로써, 이해에 끌려 진실을 덮고 공공연한 조작도 서슴지 않는 무리 안에서 스스로를 차별화했다”고 썼다.

지난해 12월 말 쓰나미가 자카르타 서쪽 순다해협을 휩쓸어 429명이 숨졌다. 수토포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민 대피를 위해 당국이 취한 조치가 전무했다.(…) 피해지역 주민들은 대피할 기회조차 없었다.”그는 해저에서 산사태나 화산폭발로 촉발된 쓰나미에 관한 한 인도네시아는 조기경보시스템 자체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사전 조치가 불가능했던 이유까지 공개했다. 2004년 20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수마트라 북부 인도양 쓰나미 이후 정부는 아체 등 취약지역에 주민 대피소를 짓고 지진계와 부표, GPS기능을 갖춘 파고측정기 등으로 쓰나미 경보시스템을 구축했지만, 그나마도 사고 당시 예산 부족과 관리 부실로 고장 난 상태였다. 앞서 9월 2,100명의 희생자를 낳은 술라웨시 쓰나미 때에도 당국은 부표 경보 데이터를 받지 못했다. 수토포는 내외신 기자들에게 “인도네시아의 재해 조기경보시스템은 여전히 턱없이 부실하다(far from satisfactory)”고 말했다.(nyt, 2018.12.25) 그는 정부가 아닌 시민의 공보관이었다.

수도 자카르타가 대형 홍수로 마비되다시피 했던 2016년 4월,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인 자카르타 주지사(basuki Tjahaja Purnama)가 BNPB의 사전 경보 부재 등을, 이례적으로 거칠게 비난했다. 수토포는 BNPB 공식 트위터 계정에 이렇게 썼다. “모든 비난과 모욕, 욕설과 분노를 우리가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지적으로 수용합니다.”한 해 전인 2015년 2월, 그는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재해 예측 장비 등 물리적인 시스템 외에 관련 법과 기관장들의 리더십과 실행 의지, 시민들의 재난에 대한 이해와 태도 등 개선돼야 할 것들이 무척 많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는 공식 공보 네트워크를 통해 최소 5,000명의 기자를 상대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널리 쓰인다는 ‘와츠앱WhatsApp’등 SNS를 통해 시민들에게도 ‘신속ㆍ정확한’ 재해 정보를 직접 알렸다. 기자들과의 와츠앱 단체 대화방만 176개였는데, 재해 관련 정보 이외 잡담은 일절 금지라는 게 수토포가 정한 단체방 원칙이었다고 한다.

2018년 12월 쓰나미가 순다해협을 덮친 직후 공보관 수토포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인도네시아의 취약한 재해 예보및 대응체제를, 빈약한 장비와 부실한 관리 시스템을 성토하듯 공개했다. 그로선 처음 하는 말이 아니었지만, 어조는 이례적으로 강했다. AP 연합뉴스

수토포는 2018년 1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남은 시간을 1~3년이라 예측했다. BNPB는 그 ‘재난’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 사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대처할 길도 없었다. 그는 워낙 독보적이었다. 수토포도 당장 손 놓을 생각이 없었다. 2018년은 1월 반텐주 지진서부터 9월 술라웨시 쓰나미, 12월 순다해협 쓰나미까지, 가히 숨돌릴 새조차 없던 ‘재해의 해’였다. BNPB 공식 집계, 지난 해 1년 동안 지진 화산 해일 쓰나미 산사태 돌풍 가뭄 홍수 산불이 총 2,430차례 발생해 4,685명이 목숨을 잃었다. 2,169명이 실종됐고 1만1,006명이 다쳤고, 약 1,000만 명이 집과 삶의 터전을 잃고 이재민이 됐다.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어떨 땐 병원 침상에서 링거를 꽂은 채 기자들의 전화에 응대하고 보도자료를 썼다고 한다.(guardian) 지난해 발리 아궁산(Mt.Agung) 화산 폭발 기자회견 때는 정맥주사를 꽂은 채 한 쪽 폐로 호흡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straitstimes) 그런 장면들이 TV로 방영되곤 했다. 수토포는 한 인터뷰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기자회견을 하는 게 내 일이다. 회견장에 가면 아드레날린이 샘솟아 통증도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에는 전국 각지 시민들이 보내온 ‘암에 좋은 약’ 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고, 너무 많아서 뜯어볼 엄두조차 못 낼 지경이었다고 가디언은 소개했다.

공식 직함보다 ‘팍 토포(Pak Topo, 토포 선생님 또는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더 널리 불린 수토포는 1969년 10월 7일 자바 중부 보욜라이(Boyalali)란 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사였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우기에 집에 기어든 흰개미를 볶아먹어야 했을 만큼 가난했던 탓에 초등학교를 맨발로 다녀 급우들의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다고 그는, 발병 직전인 2017년 12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kumparan.com) 어려서 손금을 봤는데 커서 성공할 거라고 했다고, 영리하진 않지만 워낙 성실해서 아둔함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하더라고도 했다. 그는 “돌이켜 보면 그 말이 옳았다”고, “남들은 한 번 보고 마는 책을 나는 세 번씩 봐야 간신히 이해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93년 족자카르타의 국립 가자마다(Gadjah Mada)대학을 우등 졸업했고, 졸업식장에서 인사 나눈 법학과 우등졸업생 레트노 우타미 율리아닝시(Retno Utami Yulianingsih)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교수나 연구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그는 37번 도전 끝에 94년 10월 ‘응용기술평가원(BPPT)’이란 곳에 취직했다. 그 직장을 다니며 명문 국립대인 보고르(Bogor) 농업대학에 진학, 2010년 수자원ㆍ환경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땄다.

수토포(가운데)는 임명직 공무원이었지만 시민들로부터 연예인을 방불케 하는 인기와 사랑을 누렸다. 저 사진은 그가 조직 안에서도 존경 받는 동료였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의 트위터.

어려운 재난 용어와 참담한 숫자들을 전달하는 게 그의 일이었지만, 경우에 따라선 유머와 위트를 곧잘 구사하곤 했다고 한다. 2017년 말 아궁산 분화 기자회견 도중 그는 산사태로 기울어진 전신주 사진도 함께 주목해 달라고 말해 회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 무렵 비리에 연루돼 조사를 받던 한 정치인이 운전 도중 전신주를 들이받은 사건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거였다. 회견 직후 트위터에는 ‘#SaveTiangListrik(Save the electric pole)’이란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기자에게는 “트럼프의 가짜 뉴스와 달리 나는 진짜만 제공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는 SMS를 통해 재난 소식과 안전 홍보 메시지뿐 아니라 비일상적인 풍경사진과 재미있는 사연, 직접 촬영한 재해 동영상 등을 올리기도 했다. 언젠가 그는 “재해ㆍ재난 정보도 사람의 이야기임을 여기 와서 알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republika.co.id) 결국엔 상실과 치유에 간여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추상적인 미덕일수록 부풀려 표현하기 쉽고 부풀린 표현은 말의 값어치를 떨어뜨리지만, 그는 정확하고 신속하고 정직한 공보관이면서 따뜻한 공보관이기도 했다. 정작 그는 “따분한 뉴스만 전하면 나부터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7년 12월 6일 새벽 4시 52분, 그는 아궁산 분화구 가스 기둥 뒤로 둥싯 떠오른 보름달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이렇게 썼다. “자연은 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산과 보름달. 저기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있다. 발리는 안전하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때 유력 일간지(Kompas)에 원고를 투고하곤 했지만 한 번도 채택된 적은 없었다는 그는 가끔 저렇게 문학적 감성을 슬며시 드러내기도 했다. 암 최종진단을 기다리던 때였다. 그는 과학 저널에 100여 편(국제 저널 11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지난해 11월 가디언 인터뷰에서 그는 “삶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타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로 판가름 날 것”이라며 “의사는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신문 ‘스트레이츠타임스(StraitsTimes)’는 지난해 10월 그를 ‘아시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암세포가 척추와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은 무렵이었다.

그는 버락 오바마와 인도네시아 첫 민선 민간인 대통령인 조코 위도도(Joko Widodo)를 존경했다고 한다. 위도도 대통령은 10월 병상의 그를 찾아가 격려했다. 또 그는 인기 팝가수 라이자 안드리아나(Raisa Andriana)의 열성 팬이었다. ‘팔로워’ 840만 명을 거느린 파워 트위터리언 라이자가 자신의 재해 트윗을 리트윗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사심을 밉지 않은 공적인 어조로 언급한 적도 있었다. 그걸 기억한 트위터리언들이 ‘#RaisaMeetSutopo’ 해시태그 캠페인을 벌여 11월 둘의 만남이 성사됐고, 라이자가 그를 위해 노래도 불러주었다고 한다. 물론 그 노래는 라이자 혼자 부른 노래가 아니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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