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길 서울 구로구청 민원여권과 가족관계등록팀장 인터뷰 

‘호적 업무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박영길 서울 구로구청 민원여권과 가족관계등록팀장이 구청 사무실에 보관된 낡은 제적부를 넘겨보고 있다. 구로구 제공

“오래 하다 보니 다른 분들보다 많이 아는 것뿐인데요.”

‘호적 업무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박영길(58) 서울 구로구청 민원여권과 가족관계등록팀장이 손을 내저었다. 호적(호주를 중심으로 그 집에 속하는 사람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적은 등록부)은 2008년 관련 법 폐지로 가족관계등록부가 대신하면서 사실상 입말로만 남아있다. 박 팀장은 공직생활 30여년 중 25년을 호적 업무에만 바친 이 분야 베테랑이다. 주민등록 유공 공무원으로 행정안전부 장관과 서울시장 표창을, 가족관계등록 유공 공무원으로 대법원장 표창을 받은 게 이를 증명해 보인다.

최근 서울 구로구청에서 만난 박 팀장은 “공무원은 자기 업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어야 된다”며 “직원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업무에 대해 공부하라는 얘기”라고 했다. 호적 업무는 선거인명부 관리부터 상속까지 얽혀 대대로 제일 고참이 맡아 했던 일이다. 하지만 2005년 구로구에서 전국 최초로 각 민원 창구를 은행처럼 하나로 통합하게 되면서 대표적인 기피 업무가 됐다. 혼인, 출생, 사망 등 50여개 복잡한 업무를 모두 꿰뚫고 민원에 응해야 하는 탓이다. 다들 꺼리다 보니 신규나 타 부서에서 전입 온 직원이 맡게 된다고 한다. 10년 이상 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신규로 배치 받아온 직원은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바로 편람을 찾아볼 정신도 없어요. 내가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혼자만 알고 있는 지식은 가치가 없거든요.” 지난 3월부터 박 팀장은 한 달에 한 번씩 후배 직원 10~12명을 모아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주민등록, 가족관계등록 업무 전반부터 민법, 국적법까지 직접 교육자료도 만든다. 그는 “처음에는 동아리를 만들까 하다가 의무가 되면 꺼릴 것 같아 퇴근 후 비공식적 모임으로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다”며 “누가 올까 싶었는데 호응이 좋아 자부심을 느낀다”며 웃었다. 한 시간으로 잡았던 교육 시간도 토론까지 하다 보면 두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틈틈이 전국 자치단체에서 걸려오는 업무 관련 문의에도 최선을 다한다. 박 팀장은 “관내 담당 직원뿐 아니라 부산 해운대구청, 안산 단원구청 등 다른 지역에서도 업무 관련 문의 전화가 오는데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알려줄 수 있다는 게 큰 보람이다”고 했다.

30여년 공직생활 중 25년간 호적 업무를 본 박영길 구로구청 가족관계등록팀장이 구청 통합민원창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로구 제공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그는 1989년 서울시 공무원에 임용되면서 공직 사회로 들어왔다. “기업체 필기 시험을 합격해도 면접에서 떨어져 이게 내 길이라는 생각으로” 한 선택이다. 곧 퇴직을 앞둔 그에게는 앞으로 공로연수를 제외하고 1년 11개월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생활과 달라질 건 없다고 했다. “공무원이 민원인보다 모르는 것처럼 창피한 일이 없습니다. 호적 업무는 표는 안 나지만 굉장히 중요한 업무예요.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후배들에게 교육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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