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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시트’처럼… 옥상 대피로가 막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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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시트’처럼… 옥상 대피로가 막혀있다

입력
2019.08.08 04:40
수정
2019.08.08 06:5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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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보, 서울 상가ㆍ주거지 34곳 점검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한 상가 건물 옥상 문이 굳게 잠겨있다. 안하늘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한 상가 건물 옥상 문이 굳게 잠겨있다. 안하늘 기자.

"왜 이 동네는 옥상문은 다 잠가두는 거야!"

최근 개봉한 영화 '엑시트'의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정체 모를 가스테러로 도시 전체가 연기로 뒤덮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렇게 소리친다. 대피할 곳이라곤 옥상 밖에 없는데, 옥상 문이 다들 굳게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면은 현실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한국일보가 6~7일 이틀간 서울 중구 을지로, 종로 및 양천구 목동 일대 상가와 주거단지 34곳을 살펴본 결과 절반 이상 건물에서 옥상 문이 닫혀있었다. 주로 1960~70년대에 지어진 5층 이하 건물들로 그 안에는 카페, 식당, 학원, 주거지 등이 있었다.

'힙지로'라고 불리며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을지로 일대 유명 카페, 식당이 있는 건물 10곳 중 옥상 문이 개방돼 있는 곳은 5곳에 불과했다. 골목 구석구석에 가게가 있는데다 간판도 없는 곳이 많아 사고가 났을 경우 경찰이나 소방관들이 제대로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주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30년 이상 된 아파트가 몰린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와 주변 상가 14곳 중 8곳의 옥상 문이 닫혀있었다.

찜질방과 고시원이 입주한 종로 일대 건물에서도 10곳 중 6곳 정도가 옥상으로 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옥상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 해도 점포나 사무실 내에 통로가 있거나, 상가 임차인이 옥상 키를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상 상황 시 해당 층이 닫혀있거나 임차인이 없을 경우 옥상 대피가 불가능하다.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 내 상가. 꼭대기 층에 계단이 설치 돼 있지만 옥상이 아닌 환풍구와 연결돼 있었다. 안하늘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 내 상가. 꼭대기 층에 계단이 설치 돼 있지만 옥상이 아닌 환풍구와 연결돼 있었다. 안하늘 기자.

옥상을 막아두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한 상가 관계자는 “술에 취한 사람이 올라가 사고를 내면 건물주와 임차인이 함께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늘 닫아두고 있다”고 말했다. 목동에 거주하는 권경아(39)씨도 "초등학생 애들이 멋 모르고 올라가서 위험할 뻔 한 적이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옥상을 창고로 쓰는 경우, 문을 더 꼭꼭 닫아뒀다.

옥상 개방에 대한 규정은 모호하다. 현행 법으론 2016년 이후 지어진 건물만 자동개폐장치를 의무적으로 달도록 해뒀다. 이전 건물에 대한 규정은 기준이 다양하다. 건축법 시행령은 5층 이상 건물에서 공연장ㆍ종교집회장ㆍ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제공업소(바닥면적의 합계가 300㎡ 이상인 경우),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 및 동식물원은 제외) 등일 경우 옥상을 개방해두라 했다. 반면 카페, 식당이나 다세대 주택 등은 옥상 개방 의무가 없다.

전문가들은 옥상 개방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18일 일본 교토 한 애니메이션 회사 사옥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만 20명이 사망한 채 발견된 것이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옥상 출입구도 중요 대피로다.

손원배 경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유 재산 침해라고 주장 때문에 옥상 개방은 2016년 이후 신축 건물에만 적용됐다"며 "최소한 카페, 노래방 등 불특정다수가 이용하는 시설이 들어선 경우에만이라도 옥상 개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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