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한 할머니가 시집간 손녀를 애타게 기다리다 죽었다. 손녀는 할머니를 양지바른 곳에 정성스레 묻었다. 이듬해부터 할머니의 묘지 위에 꽃이 피기 시작하며, 사람들은 그 이름을 할미꽃이라 불렀다. 축제가 한창인 영월 동강 절벽 귀퉁이에 할머니의 영혼 할미꽃이 따스한 봄볕을 내리쬐고 있다. 왕태석기자

정말 한국 고유의 다년초 식물인 ‘동강 할미꽃’이 영화 촬영 탓에 훼손, 멸종 위기에 처했을까.

한 청원인은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영화 ‘봉오동 전투’ 제작사가 촬영 중 동강 생태경관보전지역 일부를 훼손한 사례를 들며 예술 행위로 인한 환경 훼손에 대해 벌금 및 과태료를 강화해달라고 요구했다. 청원인은 “보전 지역의 야생 식물들은 그 훼손 정도가 심각해 자생 복구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며 “더 이상 예술이란 이름으로 환경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급속히 확산됐다. “할미꽃은 우리나라 고유종인데 자생지에서 (영화 ‘봉오동 전투’를) 촬영 하려함. 환경부에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폭약 터트리며 촬영했고 벌금내고 사과했지만, 자생지 복구는 안 됐다”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이에 해당 촬영지 근처 주민이라고 밝힌 트위터 사용자가 “할미꽃의 생태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반박하며 공방이 확산됐다.

한국일보 확인 결과 청원인의 이런 주장은 많이 부풀려진 낭설로 확인됐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는 6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영화 촬영이 이뤄진 곳은 동강할미꽃 서식지가 아닌 동강 하천 부지”라며 “동강할미꽃은 절벽이나 석회암 지대에 서식하는데, 이곳이 훼손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영화 '봉오동전투' 포스터(왼쪽)와 예술 행위로 인한 환경 훼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국민 청원.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물론 ‘봉오동 전투’ 제작사 더블유픽처스가 영화 촬영 중 동강 생태경관보전지역 내 환경 일부를 훼손한 것은 ‘팩트’다. 환경부 원주청 관계자는 “하천 부지에 촬영 장비 등이 진입하면서 강변에 바퀴 자국이 남고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등 환경이 훼손됐다. 또 공포탄을 발사해 소음을 일으킴으로써 주변 야생 동물들을 놀라게 하는 행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말 제작사에 대해 자연환경보전법 위반으로 과태료 부과 등 필요한 조치를 했으며 지난 3월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고 덧붙였다.

제작사 더블유픽처스도 환경 훼손에 대한 사실은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제작사는 지난 6월 “촬영 중 발생한 잘못을 인정하고, 지난해 말 환경청 담당자 확인 아래 식생 훼손에 대한 복구 작업을 진행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맨눈으로 확인이 어려웠던 동강변 할미꽃 주 서식지의 복구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못한 점을 사과한다”고 밝혔다.

다만 환경부 원주청 관계자는 “영화 ‘봉오동 전투’를 촬영한 곳은 출입이나 촬영은 얼마든지 가능한 장소였다”며 “다만 나뭇가지를 훼손하거나 바퀴자국이 남은 부분, 공포탄 발사로 야생동물을 놀라게 한 점에 대해 지적을 했던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동강 할미꽃은 강원 정선군과 영월군 동강 일대 석회암 절벽에만 서식하는 한국 고유의 다년초 식물이다. 할미꽃과 달리 고개를 숙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 점이 특징이다. 강원 정선군 귤암리 주민들은 2005년 최초 발견자인 생태사진가 김정명씨와 함께 ‘동강할미꽃 보존 연구회’를 창립해 동강할미꽃 보존에 힘쓰고 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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