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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아베의 일본이 일본의 전부 아냐… 승패 프레임, 외교에 도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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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 “아베의 일본이 일본의 전부 아냐… 승패 프레임, 외교에 도움 안 돼”

입력
2019.08.05 04:40
수정
2019.08.05 08:1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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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전문가 긴급 진단] 신각수 前 주일대사

日 경제압박 확대할 것… 내달 日기업 자산 현금화 전에 징용 교섭 토대 마련을

[저작권 한국일보] 2011~2013년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이 4일 서울 목동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진하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2011~2013년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이 4일 서울 목동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진하 기자

한일관계가 지난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배제 결정으로 금단의 선을 넘었다.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서 시작된 한일 외교 갈등이 일본의 고강도 경제보복으로 인해 통상ㆍ안보 갈등으로 확전되면서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화해하지 못한 한일 양국이 갈등 국면에 들어선 적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전면전으로 치달은 건 초유의 일이라고, 주일대사를 역임한 신각수(64) 전 외교부 차관은 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말했다. 신 전 차관은 “한일 국교 정상화 이래 54년 동안 6~7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아무리 한일관계가 악화돼도 양국 경제 교류는 건들지 않는다는 정경 분리 방화벽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게 무너졌다”며 “일본이 경제 압박을 택한 이상 이를 계속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 방화벽을 어떻게 재건하느냐다. 정부는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재ㆍ부품 산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우리도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제외하기로 했다. 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를 파기하는 ‘맞보복’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하지만 신 전 차관은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일본이 경제보복을 취한 이상 우리도 쌍방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진 않을 것”이라며 “결국 갈등 원인인 강제징용 문제에 있어 일본과 타협 가능한 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전 차관은 “외교의 핵심은 ‘타이밍’”이라며 이르면 내달 초 시작될 일본 전범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늦추거나, 늦출 수 없다면 그 이전에 우리 정부가 교섭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2년 8월 주일 한국대사 재직 시절 신각수 전 외교 차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2년 8월 주일 한국대사 재직 시절 신각수 전 외교 차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_한일관계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나.

“근본적 원인은 결국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문제 대처에 대한 일본의 불만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파기에서 시작된 불만이 강제징용 문제를 거쳐 폭발한 것이다. 일본이 자유무역 질서를 위반하고 한일이 동북아에서 당면한 전략적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역행하는 조치를 한 것 자체는 분명 잘못했다. 하지만 일본이 올해 초부터 경제보복을 계속 시사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본다.”

_양국 경제 갈등으로 막심한 기업 피해가 불가피하다. 정부가 해야 할 급선무는.

“어떤 외교적 행동도 적기(適期)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맞보복이 대증요법이라면, 근원 치료는 외교적 해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 배상을 위해 일본 기업 자산을 현금화하기 전이 적기다. 정부가 제시한 한일 기업 공동 배상안(1+1)이 아닌, 우리 정부까지 포함된 3자가 배상금을 출연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면 일본도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입장에선 일본 기업을 포함해 대법원 판결 취지를 살릴 수 있고, 일본은 우리 정부를 포함시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당장 이 같은 안을 제시할 수 없다면, 피해자들과 협의를 통해 현금화를 미루는 조치라도 해야 일본에서 대화 의지를 받아들일 것이다.”

_특사 파견 등 외교적 협의 노력을 했음에도 일본이 거부했다는 게 정부의 주장인데.

“일본이 거부한 안을 계속 들고 가서 이야기하면 무엇 하겠나. 교섭을 하려면 상대가 응할 만한 것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일본의 불안감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일본 정치지형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장기집권하는 것 자체가 세계 경제ㆍ정치 지형에서 뒤쳐지는 일본의 불안감을 보여주지 않나. 여기에 ‘전쟁’ 또는 ‘승패’ 프레임으로 대응하는 것은 국내 정치적으로 좋을 순 있어도 외교엔 도움이 안 된다. 아베의 일본이 일본의 전부가 아닌데, 오히려 일본 내의 반한 감정을 더 끌어올리는 결과만 자초하게 된다.”

_미국의 중재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사그라지지 않는데.

“양국 모두와 동맹인 미국은 동맹체제 관리를 위해 어느 한쪽의 손도 들지 않을 것이고, 절대 드러나서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직 한일 양국이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미국에 우리가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중재를 요청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등 여러 외교적 과제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개입은 우리에게 더 부담되는 수다.”

_한일청구권협정 체제를 궁극적으로 어떻게 재정비해야 할까.

“청구권협정은 절대 불가변의 협정이 아니다. 양국은 청구권협정을 근간으로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불완전한 협정 성격 상 부족한 부분은 그때그때 새로운 합의를 통해 보완해 왔다. 어업협정, 문화재협정 등이 이런 보완 협상을 거쳤다. 양국의 근본적인 입장 차를 봉합해 둔 청구권협정을 다시 맺으려면 20년도 넘게 걸릴 것이다. 강제징용 문제에 있어 대법원 판결이라는 새 변수가 생겼으니 이 부분에 한해 새 타협안을 만들면 되는 문제다.”

■신각수(64) 전 주일대사는

1975년 외무고시 9기로 외무부(현 외교부)에 들어가 조약국장, 주유엔 차석대사, 주이스라엘 대사를 거쳤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2011년 외교통상부 1, 2차관을 지내 양자ㆍ다자외교 모두 전문성을 갖고 있다. 2011년 5월 주일대사로 임명돼 2년간 대일 외교를 이끌었다. 대사 재직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고조된 한일 갈등을 관리했다. 2017년까지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을 맡았으며, 현재 한일 전문가 교류단체인 ‘서울·도쿄(SETO) 포럼’ 이사장이자 한일관계 전문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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