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 지원… 범정부 위원회 구성
내년 본예산에 ‘日 보복 대응’ 1조원 이상 반영
더불어민주당과 정부ㆍ청와대가 4일 ‘가마우지 경제’ 극복을 위한 본격 대응에 나섰다. 글로벌 경제에서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일본이 챙기는, 지금과 같은 기형적 구조를 이번 참에 확실히 깨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일본이 대(對) 한국 수출규제로 한일 경제전쟁을 도발한 데 이어 안보상 우호국가의 수출심사를 우대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해 전면전에 나서면서 사실상 타협의 여지가 사라진 만큼 장기전을 대비하겠다는 각오다.
당정청은 이날 국회에서 고위 당정청 협의회를 열고 국내 소재ㆍ부품ㆍ장비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일본의 경제보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로 뜻을 모았다.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강하다는 원천 기술과 소재 산업을 통해 한국 경제의 목줄을 죄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만큼 이를 좌시할 수 없다는 의지다. 이번에도 경제 종속의 사슬을 끊지 못한다면 가마우지 경제의 모순을 깰 기회가 다시는 없을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정청은 특히 대ㆍ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극일(克日)의 핵심으로 보고 일본을 대체할 국내 공급망 강화를 위한 대ㆍ중소기업 협력에 자금ㆍ세제ㆍ규제 완화를 패키지로 지원하기로 했다. 그간 우리 중소기업이 원천 기술 등을 개발해도 대기업이 관련 물품을 구매해주지 않아 국내 소재ㆍ부품산업의 성장이 더뎌지는 구조적 한계가 없지 않았다. 수출을 경제의 핵심으로 하는 한국으로서는 ‘글로벌 밸류체인’(국제 분업 체계)을 흔들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가 컸던 탓이다. 하지만 일본이 글로벌 밸류체인 상의 신뢰를 먼저 깬 만큼, 삼성 등 주요 국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의 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명분을 얻게 되면서 우리의 발걸음이 가벼워진 측면도 없지 않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한일 분업을 국내 대ㆍ중소기업 간 분업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번 계기가 우리 경제의 체질을 대전환해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정청은 이를 위해 내년도 본예산에 일본 경제보복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을 ‘최소 1조원 플러스 알파’ 규모로 반영하기로 했다. 또 범정부적 소재ㆍ부품ㆍ장비 경쟁력 위원회를 구성하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도록 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고위 당정청협의회 결과 브리핑에서 “우리 산업 핵심 요소인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예산, 법령, 세제, 금융 등 가용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당정청은 오는 2021년 일몰 예정인 소재ㆍ부품 전문기업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 대상을 소재ㆍ부품ㆍ장비 기업으로 확대하고, 해당 법령을 상시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핵심 전략 품목에 대한 연구ㆍ개발 투자를 과감히 늘리고,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업 맞춤형 실증 양산 테스트 베드 확충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인수ㆍ합병, 기술 제휴, 해외 투자 유치 등 재계에서 요구해 온 개방형 기술 획득 방식도 수용해 글로벌 수준의 전문기업을 육성키로 했으며, 향후 5년간 100개 기업을 지정해 연구지원과 세제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조 의장은 “일본의 조치는 한일관계의 건강한 미래를 사실상 파기한 것이고 우호국가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외교안보 분야 협력이 의미 있겠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 것”이라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은 추후 정부에서 종합 검토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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