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조현병학회ㆍ한국일보 공동 기획] ‘조현병 바로 알기’ ⑫이규영 을지대 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퇴원한 정신장애인이 거주하면서 자립 기회를 얻는 공동생활가정인 서울 서대문구 ‘한마음의 집‘에서 회원들이 사진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집안 생활비는 요즘 제가 다 벌어요.”

조현병이 발병한 지 상당히 오래된 40대 후반 여성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와 이같이 푸념했다. 발병 당시 환자는 어린 아들이 누군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믿는 피해망상 증상이 있었다. 입원치료 후 외래를 꾸준히 다니며 약을 복용하면서 피해망상 증상은 해소되었다.

재발을 막기 위해 약물 치료를 유지하던 중 몇 년 전부터 집안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최근 남편이 실직한 뒤로 이 여성 환자는 오롯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그래도 제가 일을 하니 우리 식구들이 먹고 살잖아요.” 푸념 속에서도 자신을 이만큼 살게 한 상황에 감사해 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해 새 직원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합숙하는 동안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감시하며 흉을 보고, 모의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는 피해망상과 환청을 겪게 된 20대 후반의 젊은 남성 조현병 환자가 있었다. 증상이 심했지만 발병 초기에 바로 병원을 찾아 조기 치료를 받았기에 치료 효과도 좋았다. 비록 입사했던 회사는 사직했지만 치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사에 취업을 했다. 이후 5년을 넘게 소량의 약물 투여를 유지하고 있지만, 직장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선생님, 저 이번 가을에 결혼합니다.” 진료실에서 웃으면서 청첩장을 건네는 모습으로 주치의를 흐뭇하게 하였다.

“피자집 매니저가 되었어요.” 20대 후반 여성 조현병 환자가 이처럼 말하면서 웃었다. 5년전 발병해 입원 치료도 몇 차례 받기도 했고, 약도 잘 먹지 않으려 하기도 했다. 외래 치료에 병행해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다니면서 자신의 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게 되었다. 정신사회재활 차원에서 센터에서 운영하던 카페 훈련에 참여하여 바리스타 교육, 손님 응대법, 복잡한 주문 처리법 등을 배웠다. 6개월간 직업교육 후 인근 피자집에 취업해 성실히 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주와 신뢰가 쌓여 매니저 임무까지 맡게 되었다.

위의 세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 이웃에 조현병 치료를 성공적으로 받고,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조현병 환자가 적지 않다. 치료를 제대로 받아 호전되면 겉으로 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 놓지 않기에 그들의 존재를 우리가 미처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조현병 환자 가운데 실제로 직장생활을 잘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조현병 환자가 일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루하루 생업에 바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로 소개된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내쉬처럼 대단한 업적으로 유명해지지 않았기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조현병 환자의 증상과 기능을 살펴보면 환자마다 천차만별이다. 중·장년기까지 증상 지속에 따른 사회기능 저하로 독립된 생활을 하지 못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증상에서 벗어나 번듯한 직장을 잘 다니는 환자도 있다.

의학 발달로 치료 약물이 우수해지고, 조기 치료도 확산되면서 조현병에 따른 만성화, 황폐화되는 경우가 적어지고 있다. 그만큼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직장인을 위한 토요일 진료 시간에 찾아온 조현병 환자가 늘고 있다. 조현병을 극복한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조현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저 그 업체에서 잘렸어요.” 진료실에서 듣는 이런 식의 안타까운 소식과 호소도 드물지 않다. 5년 이상 치료를 유지하고 있는 30대 중반 남성 조현병 환자가 있었다. 증상 호전 이후 발병 전에 일했던 인쇄업종에 재취업하기 위해 1년 이상 여러 업체에 이력서를 내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중 한 인쇄가게에 취업하게 됐는데 한 달이 되지 않아 해고되었다.

병원 다니는 이유를 묻는 사장의 질문에 조현병 때문이라고 답한 것이 화근이 되어 그런 결과로 이어졌다. 성실하고 순박하였기에 계속 일을 했다면 그 가게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조현병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사장이 환자를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환자는 그 사장을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조현병이란 병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아쉬워했을 뿐이었다.

조현병 환자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려면 우리 사회 전반에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적 인식이 필요하다. 편견의 대상으로서 조현병 환자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 하는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잘 보여주는 인기 드라마가 있었다. 2014년에 방영된 TV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그것이다. 살아 숨 쉬는 듯한 필력이 넘치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으로, 톱스타 조인성과 공효진의 열연이 인상적이었던 드라마였다.

조인성이 역할을 맡은 주인공은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가진 조현병 환자였고, 병을 극복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사람이었다. 드라마 종영 후 대한조현병학회 임원들이 제작진을 초청해 나눈 대화에서 노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1년 동안 취재하였고, 긴 시간 동안 조현병 환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고민하고서야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전달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조현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여전하다. 오히려 잇따른 강력사건이 조현병과 연결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건실한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조현병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통해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이규영 을지대 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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