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 ‘우천 이유’ 취소에 호텔서 무료 자체공연
한국팬들 종이비행기 응원… 킹 기저드도 지산록페 취소 후 깜짝공연
28일 내한공연이 갑자기 취소됐다. 무대에 오르기 2~3시간 전이었다. 일요일 늦은 오후 빗속을 뚫고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 영국 유명 가수 앤 마리(28)는 가만 있을 수 없었다. 급히 장소를 섭외해서 임시무대를 만들었고, 심야에 한국 관객을 위한 깜짝 무료 공연을 열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ㆍ유벤투스)가 지난 26일 한국의 K리그 선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약속과 달리 단 1초도 뛰지 않고 돌아가 축구 팬들의 공분을 산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스타의 모습이었다.
마리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홀리데이랜드) 무대에 28일 오후 9시 오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홀리데이랜드로부터 공연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비가 와서 안전 문제 등으로 공연 진행이 어렵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악천후에 따른 공연 취소로 치부할 수 있었을 일은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이어졌다. 홀리데이랜드가 마리의 공연 취소 이유를 공연장 스크린 등에 “뮤지션의 요청”으로 알린 뒤부터였다. 마리는 바로 반박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자신의 계정에 글을 올려 “내가 공연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는 ‘투 마이 코리안 팬스(나의 한국 팬들에게)’란 제목으로 동영상도 올려 “정말 너무 미안하다… 방에서 울었다”며 공연 취소를 안타까웠다.
마리는 잠시 후 SNS로 한국 관객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알렸다. 오후 11시 30분부터 홀리데이랜드 공연장 인근 호텔에서 공연을 연다는 공지였다. 무료 공연이었다. 공연장엔 관객 300여명이 몰렸다. 마리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취소돼 집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관객들이 대부분이었다.
마리는 히트곡 ‘2002’(2018) 등을 불러 한국 관객을 열광시켰다. 그의 무대엔 흰색 종이비행기가 한가득 떨어져 있었다. 한국 관객을 위해 작지만 특별한 무대를 마련해 준 마리를 향해 관객들이 표현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관객이 그의 무대에 종이비행기를 날리자 마리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특징인 마리는 국내에서 큰 사랑(본보 6월27일자ㆍ‘넌 노래방서 가요 부르니? 난 최신 팝 부른다!)을 받고 있다. 멜론과 벅스 등 국내 6개 음원사이트에서의 음원 소비량을 조사하는 가온차트에 따르면 마리의 ‘2002’는 한국 가수의 노래를 제치고 6월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국내 음원사이트에서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수를 합한 수치가 가장 높았던 것이다. 2010년 집계이래 해외 음악이 이 월간 차트에서 1위를 하기는 마리가 처음이다. 이날 깜짝 공연은 팬들의 뜨거운 사랑에 대한 마리의 화답이었던 셈이다.
마리가 보여준 한국 관객과의 소통과는 별개로 그의 무대가 돌연 취소되는 과정에서 주최 측의 운영 미숙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홀리데이랜드는 이날 예정된 무대 중 마리 뿐 아니라 캐나다 가수 다니엘 시저와 래퍼 빈지노의 공연도 취소했다. 우천을 문제로 음악 축제에서 주요 공연이 연달아 취소되는 일은 드물다. 10년 넘게 공연기획사에 일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여태 태풍, 폭우가 와도 대부분의 음악 축제가 큰 탈 없이 열렸고, 주요 아티스트의 무대가 연달아 취소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며 “홀리데이랜드 측이 무대 안전성 확보를 내세우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공연 취소 이유를 놓고 마리 등 가수들과 다른 입장을 냈던 홀리데이랜드는 “공연 프로덕션 업체 측에선 안전상 위험이 없다고 했지만 마리와 시저의 매니지먼트 측에선 ‘안전상의 이슈’로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다”라며 “두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측의 결정에 따라 해당 무대를 취소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한국 공연이 갑작스럽게 취소된 뒤 특별 공연을 연 해외 음악인은 마리 뿐 만이 아니었다. 애초 이날 지산 록 페스티벌에 설 예정이었으나 행사가 취소돼 공연이 무산된 호주 밴드 킹 기저드 앤드 더 리저드 위저드(킹 기저드)는 서울 홍익대 인근 작은 공연장에서 깜짝 공연을 열었다. 공연장 관계자는 “밴드가 일본 후지 록 페스티벌을 마친 뒤 한국에 와 연 깜짝 공연이었다”며 “밴드와 관객들 모두 공연을 즐겼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장엔 관객 100여명이 몰렸다. 킹 기저드는푯값으로 1만원을 받았다. 이 공연장에서의 푯값은 보통 1만5,000~2만원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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