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주간 차트 톱10 중 3곡이 팝송 이변
영국 가수 앤 마리의 노래 '2002'는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멜론 차트 톱10에 머물며 인기다.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대학생 김모(21)씨의 요즘 노래방 애창곡은 K팝이 아닌 해외 팝송이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최근 친구들과 찾은 노래방에서 영국 신인 가수 앤 마리의 ‘2002’(2018)를 불렀다고 했다. 김씨는 “멜로디가 흥겹고 가사가 재미있어 ‘2002’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노래방에서 최신 팝송을 부르는 시대는 끝났다? 편견이다. ‘2002’는 지난 2일부터 15일까지 2주 동안 노래방 차트(가온차트 집계)에서 20위 권에 올랐다. 같은 기간 30위 권에 머문 임창정의 ‘소주 한 잔’ 보다 순위가 높다. ‘소주 한 잔’보다 ‘2002’를 노래방에서 부른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다. 마리는 지난해 1집 ‘스피크 유어 마인드’를 냈다. 마룬5처럼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은 해외 신인 가수가 국내 노래방까지 파고들어 사랑을 받기는 이례적이다.

‘2002’는 청량한 멜로디에 마리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포개져 감칠맛을 더한다. 세계적인 영국 가수 에드 시런이 작곡에 참여했다. 노래의 백미는 마리가 쓴 가사다. 2002년에 겪었다는 첫사랑의 이야기는 짜릿하면서도 정겹다. ‘베이비 원 모어 타임’(브리트니 스피어스)과 ‘바이 바이 바이’(엔싱크) 등 당시 유행가를 활용해 재미를 준 덕이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 멤버인 정국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미국 가수 빌리 아일리시(왼쪽 위)의 노래 '배드 가이'를 틀어 놓고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다. 게시물에 쓴 'Duh(더)'는 후렴구에 흐르는 포인트 대목이다. 방탄소년단ㆍ아일리시 SNS 캡처

해외 팝송은 국내 음원 차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이달 셋째 주 멜론 주간 차트 톱10 중 3곡이 해외 팝송이었다. ‘2002’(3위)를 비롯해 미국 가수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 가이’(7위)와 영화 ‘알라딘’에서 주인공 자스민을 연기한 나오미 스콧이 부른 주제곡 ‘스피치리스’(10위) 등이다.

그래픽=김경진기자

해외 팝송의 선전은 국내 음악 시장에서의 소비 변화를 보여준다. 해외 팝송은 2000년대 이후 K팝에 밀려 국내 음악 시장에서 한동안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3년 새 상황은 변했다. 지난해 가요 대비 해외 팝송의 연간 음원 시장 점유율은 23.9%를 차지했다. 가온차트가 멜론 등 국내 주요 6개 음원 사이트에서의 해외 팝송 소비량(연간 차트 톱400 기준)을 조사한 결과다. 2016년 14,6%, 2017년 19.6%에서 2년 연속 해외 팝송 소비량은 증가했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해외 팝송의 국내 음원 시장 점유율 확대는 소비자들이 음원 사이트에서 톱100 위주의 감상 패턴을 점차 벗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영화 흥행의 특수를 누린 ‘스피치리스’와 달리 ‘2002’와 ‘배드 가이’는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고 뒤늦게 빛을 봤다. ‘배드 가이’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 멤버인 정국이 이 노래에 맞춰 ‘막춤’을 춘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최근 올리면서 새삼 화제다.

‘2002’는 지난해 4월 공개돼 음원차트 톱10에 오르는데 약 1년이 걸렸다. ‘배드 가이’는 지난 3월 공개돼 두 달 여가 소요됐다. 마리의 앨범 국내 배급사인 워너뮤직코리아 관계자는 “‘2002’는 앨범 발매 당시 주력해서 민 곡도 아니었다”고 귀띔했다. ‘2002’와 ‘배드 가이’는 곡 발매 당시엔 음원 차트 톱100에 진입조차 못 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2002’와 ‘배드 가이’의 흥행은 해외 팝송이 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소개돼 주목받은 사례와 다르다”라며 “젊은 층에 해외 팝송의 청취가 개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돼 해외 팝송의 돌발 선전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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