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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장교 되어 독립군 토벌했는데, 독립유공자 묘역 옆에 잠들다니…

입력
2019.07.30 04:40
수정
2019.07.30 08:1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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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부르는 삼월의 노래] <16> 현충원의 친일파들 

 친일하다 軍요직 49명 포함 서울ㆍ대전 현충원에 63명 묻혀 

 “이제라도 친일청산… 이장해야” 각계 지적 불구 법개정 감감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된 김백일의 묘비에는 “6.25 전쟁 당시 제1군단을 이끌고 용맹을 과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발족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이었던 김백일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김혜영 기자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된 김백일의 묘비에는 “6.25 전쟁 당시 제1군단을 이끌고 용맹을 과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발족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이었던 김백일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김혜영 기자

# “내가 죽거든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가 아니라 동지들이 묻혀 있는 효창공원에 묻어 달라.” 독립운동가 조경한(1900~1993) 선생의 유언이다.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그에게 현충원은 곧 ‘친일파가 묻힌 곳’이었다.

조경한 선생의 일생과 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인사들의 이력을 보면, 이런 강한 거부감의 배경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조 선생은 1921년 만주 소재 ‘독립단’의 국내 지하공작 연락원으로 활약했다. 1926년에는 배달청년회, 배신학교를 세워 동포들을 계도했고, 1931년에는 한국독립당이 조직한 한국독립군에서 수백 명의 유격독립여단을 이끌며 만주에서 항일투쟁에 투신했다.

그런 그가 광복 이후 1993년 눈을 감기 전까지 지켜봐야 했던 것은 독립군 토벌작전에 앞장섰던 일본군 장교, ‘조선인으로 조선인을 제압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독립군 토벌’을 목표로 일제 패망 직전까지 전투를 벌인 간도특설대 간부 등이 한국군 장교나 장관으로 출세하고, 심지어 사후 현충원에 안장되는 장면이었다.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인 김백일(1917~1951)은 1966년 국립서울현충원 ‘장군 제1묘역’에 안장됐다. 일본군 장교, 학생 동원을 위한 군사교관 등으로 참전과 병력 동원을 위한 선전에 협력한 신태영(1891~1959)은 1974년 서울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묻혔다.

조 선생 역시 동지들 곁인 효창공원이 아닌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과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에 따라서다. 조 선생을 모신 임시정부요인 묘역과 장군 제1묘역은 500m 거리, 장군 제2묘역까지는 75m 거리다.

# 제64회 현충일을 맞은 지난달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난데없는 오물투척 소동이 일었다. “현충원 바깥으로 몰아내자! 몰아내자! 몰아내자!” 현충원에 묻힌 친일 인사 묘의 이장을 촉구해 온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항의의 의미로 가축 분뇨를 들고 와 해당 묘에 뿌린 것. 항일 조직 색출에 앞장섰고, 김구 선생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김창룡(1916~1956)의 묘를 비롯한 5기의 묘에 분뇨가 투척됐고, 이내 주변에 악취가 진동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민중당 대전시당은 앞서 ‘3·1운동 100주년 친일잔재청산, 자주독립정신계승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백서를 만들었다. 이들 묘에 대한 이장 운동도 해 왔다.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항일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안장돼 있는 것은 순국선열뿐만 아니라 시민의 분노를 사는 일”이라며 “특히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도 이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친일 잔재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지사의 묘역과 김창룡 묘역은 불과 600m 거리다. 분뇨 투척에 당황한 대전현충원 측은 묘역 복구 방안과 고발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 독립군 잡다 광복 후에 출세길 

친일파의 현충원 안장 논란은 해묵은 숙제다. 사후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는 악명 높은 일본군 장교부터 여타 친일 의혹 인사까지 그 논란의 대상자가 적잖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지목한 1,005명 가운데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은 총 11명이다.

검토 대상을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 4,390명으로 확대하면, 현충원에 안장된 문제적 인사는 63명으로 늘어난다. 이 사전은 150여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7억원의 국민 성금을 토대로 약 8년간 연구한 끝에 나왔다. 직접 반민족 행위를 한 인물뿐 아니라 이에 적극 협력한 이른바 ‘부일’ 행위자 및 고위직 지휘자 등을 모두 포함했기 때문에 위원회의 1,005명에 비해 규모가 크다. 동일 인물 여부를 검토 중인 사안이 남아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해당 인사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군인이 49명으로 전체의 78%를 차지한다. 여러 고비마다 친일청산이 실패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군 간부 상당수가 광복 후 군의 주요 요직이나 장관직을 차지한 점이 영향을 줬다. 무엇보다 현충원 자체가 6·25 전쟁으로 전사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국군묘지’로 조성된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당초 군인을 위주로 이뤄졌던 안장은 1965년 이후 애국지사, 경찰관, 향토예비군으로 그 대상이 확대됐다. ‘국립묘지’라는 명칭이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바뀐 것은 2005년이다. 소방공무원, 의사상자 등도 안장 대상에 포함된 것도 이 무렵이다.

즉 논란의 중심에 선 안장 인사들은 과거 친일 행적과 관련된 기록은 있지만, 광복 후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주요 군 간부나 정부 요인으로 활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일 의혹과는 별개로 주로 6·25 전쟁에서 군을 지휘하거나, 참전 중 전사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았거나 광복 이후 훈장을 받은 이력 등을 토대로 ‘국군묘지’ 설립 이후부터 최근까지 현충원에 안장된 것이다.

임정묘역, 애국지사 묘역과 맞닿은 친일 지목 인물의 묘 지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임정묘역, 애국지사 묘역과 맞닿은 친일 지목 인물의 묘 지도. 그래픽=김경진 기자

 ◇ “야스쿠니에 묻히고 싶다”던 이까지 

묘역 별로 살펴보면, 서울현충원의 가장 깊숙한 안뜰이자 고지대인 장군 제1묘역에서부터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가 발견된다. 국가유공자 1묘역의 중앙부에 자리한 장군 제1묘역은 전체 묘역의 전경과 한강변이 내려다보이는 현충원의 꼭대기에 위치한다. 도보로 10분 이내 거리에는 이승만,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 묘역이 이웃한다.

이 묘역에는 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한 인물이 두 사람 있다.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인 김백일과 일본군 소좌 출신의 신응균(1921~1996)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김백일은 봉천군관학교 출신으로 1938년 간도특설대 창설에 참여한 요원이다. 간도특설대가 살해한 항일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한다. 강간·약탈·고문을 당한 이들도 적잖다.

핵심 요원으로 간도특설대에 몸 담은 김백일은 일본의 패망 소식이 이어진 1945년 8월 20일까지 작전을 수행하다, 26일 중국 진저우(錦州)에서 열린 부대 해체식까지 참석했다. 부대 해체 후엔 고향인 함경북도 명천에 머무르다 월남해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국방경비대 장교가 됐다. 이후 제3연대장, 국방경비사관학교 교장, 특별부대 사령관을 지냈고 1951년 3월 대관령 인근에서 항공기 사고로 숨졌다. 한때 6·25전쟁 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란민을 함께 태워달라’고 미군에 호소한 영웅으로 묘사되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는데, 이 요청을 한 것은 사실 미 제10군단의 고문 현봉학(1922~2007) 선생이었다는 점이 최근 밝혀지기도 했다.

신응균은 일본 육사 53기 출신이다. 오키나와에 파견돼 중대장으로 근무했으며 1945년 미군의 본격 상륙작전이 시작되자 미군과 유격전을 벌이다가 제압됐다. 미군 군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귀국한 그의 일제 패망 당시 신분은 일본군 포병 소좌였다. 6·25 전쟁 중에는 제1야전포병사령관을 지냈고, 국방부 제1국장, 제2사단장, 유엔군사령부파견 한국군연락장교단장, 육본관리부장 등을 거쳐 육군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주 터키대사, 국방부차관, 주 서독대사, 국방과학연구소장, 재향군인회 부회장 등을 지내다 1996년 숨졌다.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된 신태영도 일본군 복무 이력을 가진 인사다. 김혜영 기자
‘장군 제2묘역’에 안장된 신태영도 일본군 복무 이력을 가진 인사다. 김혜영 기자

400m 거리의 장군 제2묘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로 이 신응균의 부친인 신태영(1891~1959)의 묘가 있다. 이들은 부자가 나란히 일본 육사에 진학해 일본군에 복무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일본이 군을 파병한 ‘시베리아 간섭전쟁’ 당시, 신태영은 북만주 이북에 파견된 일본군 연대 소속 장교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가했다. 그는 특히 1943년 무렵에는 학생들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한 ‘임시특별지원병제도 종로익찬위원회’에 참여해 병력 동원의 선전, 선동에 협력했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발표한 ‘잡아라 철의 신념, 첫 출진의 목표는 야스쿠니 신사’라는 제목의 수기에서는 “제국의 신민이 되어 대화민족과 혼연일체가 되어 일본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개척할 것”을 주장하는 한편 자신의 첫 출진의 목표가 “야스쿠니 신사(안장)”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1948년 여순사건 이후 자진 입대해 육군 본부 초대 행정참모부장, 국방부 제1국장, 국방부장관, 재향군인회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묘소로부터 단 3기 떨어진 곳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장남이자 해군 창설의 주역인 손원일 제독이 안장돼 있다. 독립을 향한 열망이 남달랐던 손 목사의 일가와 대를 이어 일본군에 복무한 이가 나란히 같은 묘역에 몸을 누인 셈이다. 또 장군 제2묘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산화한 독립군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장군 제 2묘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진 독립군의 넋을 기리는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이 설치돼 있다. 김혜영 기자
장군 제 2묘역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진 독립군의 넋을 기리는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이 설치돼 있다. 김혜영 기자

비슷한 풍경은 대전현충원으로 눈을 돌려도 반복된다. 장군 제1묘역에는 일제가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 만주군 상위 출신 김석범(1915~1998), 일제가 조선 청년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설치한 경성 육군병사부 출신 백홍석(1890~1960), 간도특설대 중대장 출신 송석하(1916~1999), 간도특설대 창설 요원이자 창씨개명을 했던 신현준(1916~2007) 등이 안장됐다. 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시민사회가 가장 문제로 지적하는 인물은 김창룡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김창룡이 “일본 관동군 헌병 출신으로 항일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김구의 암살을 사주하는 등 온갖 반민족행위를 저질렀지만 육군 특무대장을 역임, 현충원에 안장됐다”는 점을 개탄한다.

 ◇ 친일 이력이냐 광복 후 공적이냐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들을 이장해야 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이어졌지만, 현행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이장은 불가능하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현충일을 앞두고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국립묘지 밖 이장을 강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이하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전시의회는 지난해 9월 ‘반민족·반헌법행위자 단죄 및 국립현충원 묘소 이장을 촉구하는 결의안'(더불어민주당 오광영 시의원 발의)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결의안에는 서울과 대전에 안장된 반민족·반헌법행위자 63명의 묘를 이장하고, 배재대에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을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권칠승 의원의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무엇보다 국가보훈처가 ‘취지에는 공감하나 이장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정무위의 법안심사소위에서 국가보훈처는 "앞으로 들어올 경우에 대해서는 제한을 해야 한다고 보지만, 이미 와 있는 부분은 꼭 친일파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유로 국립묘지에 들어온 경우라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정무위 법안소위 위원인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반대 의견을 펴며 대전시의회를 비판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대전현충원에 있는 국가유공자 중에서 친일 인사 묘지를 이장하라고 한다.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명목이라도 걸어 묘까지 파헤칠 모양이다. 이게 나라인가?"라고 주장했다. 1년이 넘도록 정무위에서 단 한 번 논의조차 되지 못한 국립묘지법 개정안에 대해 권 의원은 “현행법에서 국립묘지는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한 이의 충의(忠義)와 위훈(偉勳) 정신을 기리고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국회가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국민께서 관심 갖고 힘을 모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장에 관한 논의가 공전하자 일각에서는 묘 주변에 조형물을 세워서라도 해당 인사들의 친일 행적을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4월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으로 결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묘 주변에) 그 행적에 관한 조형물을 설치하는 방안을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서울현충원과 대전현충원은 홈페이지에 게재한 각 안장자에 대한 설명에서 위원회가 지목한 11인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됐다’고 표시하고 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장도 문제지만 향후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추가 안장 대상자의 안장 금지를 위해서라도 관련 개정안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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