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준의 와이드엔터] 우리가 몰랐던, 기억해야 할 고(故) 남기남 감독과 룻거 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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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의 와이드엔터] 우리가 몰랐던, 기억해야 할 고(故) 남기남 감독과 룻거 하우어

입력
2019.07.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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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별세한 고(故) 남기남 감독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한국일보DB

주로 영화광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던 국내외 영화인들의 부고 소식이 공교롭게도 함께 전해졌다. ‘영구와 땡칠이’로 친근한 ‘빨리 찍기의 대명사’ 남기남 감독이 지난 24일 별세했고, 네덜란드 출신 전천후 연기파 배우 룻거 하우어가 얼마전 숨진 사실도 이날 알려졌다.

남기남 감독은 40여년동안 활동하며 100여편의 연출작을 남겼다. 시대극 현대극을 불문했으며, 손댔던 장르도 다양했다. 주 전공인 코미디 말고도 액션 호러 멜로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대부분 고인의 대표작을 ‘영구와 땡칠이’로 기억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 주연의 1980년작 ‘평양 맨발’이다. 고백하자면 부모 몰래 초등학교 시절, 지금은 자취를 감춘 재개봉관에서 관람했었다.

극중 이주일이 괴력의 맨발로 달리는 기차를 따라잡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훗날 저우싱츠(주성치) 주연의 ‘쿵푸허슬’을 볼 때, 영화속 저우싱츠와 돼지촌 안방마님이 달리기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 오래 전 ‘평양 맨발’의 기시감이 떠 올라 박장대소했었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해 속도감 넘치고 알뜰했던 특유의 연출 스타일과 관련해선 숱한 에피소드들이 마치 구전동화처럼 전해 내려온다. 믿거나 말거나, “그럼, 필름을 남기남?”을 외치며 가래떡 뽑아내듯 한 편의 제작비와 같은 배우들로 전혀 다른 두 세편의 영화를 뚝딱 만들어 냈다는 일화가 있다.

룻거 하우어가 2011년작 ‘하이네켄 유괴사건’에서 주인공 알프레드 하이네켄을 연기하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룻거 하우어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SF의 교과서 ‘블레이드 러너’로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하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복제인간 ‘로이’를 열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로이’가 주인공 ‘데커드’(해리슨 포드)를 구해낸 뒤 수명이 다해 쏟아지는 빗속에서 눈을 감고 죽어가는 모습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IMDB에 등재된 출연작 편수가 무려 173편에 이르는 그의 별명은 ‘네덜란드의 폴 뉴먼’. 별명이 말해주듯 모국에서 폴 버호벤 감독과 손잡고 활동하던 젊은 시절에는 푸른 눈빛과 핸섬한 외모가 돋보이는 로맨틱 가이였다.

그러나 할리우드로 건너가면서부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히치하이커를 가장한 연쇄살인범으로 출연했던 1986년작 ‘힛쳐’에서처럼 악역을 끝내주게 소화한 덕분이다. 여기에 잘생기고 연기력 뛰어난 남의 나라 배우를 데려와 악당으로 막 굴리는 할리우드의 못된 버릇도 한몫 거들었다. 하우어란 배우를 설명하며 악역 전문이란 틀 안에 가두자니 아쉬움이 드는 이유다.

남기남 감독과 하우어 모두 예산의 많고 적음, 배역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어느 자리 어느 조건에서든 최선을 다했던 영화인들이다. 혹자는 넘버3로 평가 절하할 지 몰라도, 영화 연출에 대한 열정과 연기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승수(勝數) 이상으로 패수(敗數)도 소중히 여기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묵묵히 한 우물만 팠던 이들의 명복을 빈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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