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알바레즈(1965~2019)

※ 세상을 뜬 이들을 추억합니다. 동시대를 살아 든든했고 또 내내 고마울 이들에게 주목합니다. ‘가만한’은 ‘움직임 따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은은하다’는 뜻입니다. ‘가만한 당신’은 격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루이스 알바레즈(왼쪽)는2001년 세계무역센터 테러 당시 뉴욕 경찰(NYPD)로서 첫 석 달간 현장서 생존자 구조 활동을 벌였고, 2016년 결장암 진단을 받은 뒤 자신과 같은 9/11 중장기 피해자 보상 등을 위한 권리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지난 6월, 68차례 화학치료를 받은 쇠한 모습으로 미 하원 법사위 청문회에 참석, '우리를 잊지 않겠다던 당신들의 약속'을 환기했다. 오른쪽은 '더 데일리 쇼'의 전 진행자 존 스튜어트. EPA 연합뉴스

2001년 9ㆍ11 테러 현장의 구조-수습-정리 작업은 이듬해 5월까지 이어졌다. 그 작업에 뉴욕 소방, 경찰, 응급의료 요원과 민간도급업체 인부들, 자원봉사자 등 연인원 8만여 명이 매달렸다. 추가 폭발과 구조물 붕괴 위험 속에 시간에 쫓기며 생존자 구조활동에 임한 초기 대응팀의 헌신은 가히 빛났다.

참사 9일 뒤, 미국의 저명 방송인이자 정치 비평가인 존 스튜어트(Jon Stewart)는 자신이 진행하던 정치 토크쇼 ‘더 데일리 쇼(The Daily Show)’에서, 격정으로 갈라지는 목소리를 애써 엉구며 이렇게 말했다. “멍청이들도 뭔가를 망칠 줄은 알고, 파괴할 줄도 안다. 하지만 저들, 소방관과 경찰관, 미국 전역에서 소매 걷어붙이고 달려온 시민들을 보시라. 줄지어 양동이 옮겨가며 불을 끄겠다고 나선(buckets rebuilding) 사람들,(…)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저게 빛이고, 저게 민주주의다.(…) 테러리스트들도 저들을 멈춰 세울 수는 없다.” 그는 빛과 민주주의를 말했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국가(정부) 재난대응 시스템이었고, 공동체적 신뢰였다. 그의 말에 감동해 자원봉사에 동참한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부시 정부와 의회 정치인들도 경쟁적으로 현장의 그들을 영웅이라 칭송했다.

하지만 그들이 유해 화학물질과 석면까지 포함된 분진을 마시며 장기간 작업해야 했다는 사실은, 미국 정부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면, 당시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일부 우려에 대해 참사 일주일 뒤인 9월 18일 미 연방 환경보호국(EPA) 크리스틴 위트먼(Christine T. Whitman, 1946~) 국장은 “뉴욕과 워싱턴DC 참사현장 주변의 공기와 물은 안전하다”고 공식 인터뷰를 통해 발표했다. 줄리아니 뉴욕 시장은 맨해튼 시민과 월가 직장인들의 조기 일상 복귀를 독려했다. 당시 EPA의 모든 논평은 부통령 딕 체니가 주도한 국가안보위원회(NSC)의 통제 하에 발표됐다.

2년 뒤인 2003년 미 감사원은 EPA의 2001년 9월 발표가 충분한 데이터에 근거한 게 아니었다고 밝혔다. 실제 당시 대기 중에는 발암물질인 석면과 납, 규폐증의 직접적인 원인인 콘크리트 미세 분진 등이 고농도로 포함돼 있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현장 인력과 시민 등 약 40만 명이 9ㆍ11 유해 공기에 노출됐다고 추정했다.(bbc.com)

9ㆍ11 테러의 직접적 영향으로 2,900여 명이 숨졌고, 6,000여 명이 부상 당했다. CDC의 9ㆍ11 테러보건프로그램에 따르면, 호흡기와 소화기 질환과 각종 암 등 이른바 ‘9ㆍ11 질환’으로 숨진 이는 2018년 9월 기준 2,000명을 넘어섰다. 2019년 5월 현재 암 진단을 받은 이만 1만 2,500여 명이다.(CNN) 9ㆍ11 중장기 희생자 숫자가 테러의 직접 희생자보다 이미 많다는 분석도 있다.(BBC) 위트먼은 2006년 9월에야 2001년 발표의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뉴욕 9.11 초기대응팀 요원들이 구조물 잔해 속에서 부상자 수색작업을 벌이는 모습이다. 당시 현장 주변 공기는 유해 화학물질과 석면을 포함한 분진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였으나, 연방 환경보호국(EPA)은 참사 일주일 여 뒤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안전하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미 의회와 정부는 9ㆍ11 희생자보상법을 제정, 70억 달러 규모의‘9ㆍ11 희생자 보상기금’으로 2001~04년 유족(60억 달러)과 부상자(10억 달러)에게 보상금과 의료비를 지급했다. 2011년 ‘9ㆍ11 건강보상법’으로 73억 7,500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중장기 질환자 및 사망자 보상절차를 진행했고, 2015년 보상 신청 시한을 2020년까지 연장했다. 2019년 5월 말 기준, 2만 2.500여 명(사망자 850명 포함)에게 50억 달러가 집행됐고, 1만 9,000여 명에 대한 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기금 고갈사태에 직면한 기금위원회는 지난 2월, 심사가 진행중인 이들에게는 기존 보상금 기준액의 50%를 지급하고, 추후 신청자에게는 30%만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기금위원장 루파 바타챠리야(Rupa Bhattacharyya)는 “끔찍하리만치 불공평한 조치라는 걸 안다. 하지만 한정된 기금으로 최대한 공평하게 하려니 어쩔 수 없다.(…) 불행히도 법은 우리에게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았고, 현재로선 이 조치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방안이다”라고 말했다.(washingtonpost.com) 그러다 보니 신청자도 더 늘어, 위원회는 2016년 말까지 5년간 1만9,000명이 신청한 반면 지난해 말까지 2년 사이 2만 명이 늘었고, 올 상반기에만 7,700명이 추가 신청했다고 밝혔다. 위원회의 저 발표 이후 800여 명이 삭감된 보상금을 받았다.

9ㆍ11 관련 시민단체와 보상 신청 희망자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건설 노동자로 9ㆍ11 현장에서 한쪽 발을 잃고 ‘필굿재단’을 설립한 9ㆍ11 활동가 존 필(John Feal)은 “질병 발병에 시한이 어디 있나. 보상 신청 시한을 임의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비미국적(Un-American)이며, 반애국적이며, 비인간적이다”라고 말했다. 뉴욕 주 민주당 의원(Kristin Gillibard 등)들이 주도해 개정법안을 마련했다. 보상 시한을 2089년 말로 연장하는, 즉 종신 보상을 보장한 ‘Never Forget the Heroes Act’다.

원칙적으로 모든 국가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이들에 대한 응당한 대우와 보상을 약속하지만, 현실은 레토릭과 다르다. 유별나게 ‘영웅’을 챙기는 미국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사실 연방 정부가 2001년 기금을 집행한 데는 사고기 항공사와 안보 관련 국가기관 등에 대한 피해자 집단소송을 모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NYT) 2010년 말 중ㆍ장기 피해자 보상법을 제정할 때에도, 2015년 시한을 연장할 때에도 의회, 특히 공화당 상원은 필리버스터까지 감행하며 저항했다. 당시 공화당은 부시 집권기의 감세 기조를 위협하는, 군사ㆍ안보 이외의 거의 모든 연방 예산 지출 항목에 제동을 걸었다. 만성 재정적자 속에 공화당의 저 기조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니 종신 보상을 보장하는 새 법의 운명은 불투명했다. 세월도 흘렀고, 허위 신청 등 제도 악용 가능성에 대한 대중적 견제 심리도 없지 않았다.

그 국면을 획기적으로 돌파하며 9ㆍ11 커뮤니티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우호적 관심을 되살린 계기가 지난 6월 11일 미 하원 법사위 개정법 청문회였다.

그날 증언석의 루이스 알바레즈(Luis Alvarez)는 참사 첫 석 달간 그라운드 제로에서 일한 뉴욕경찰(NYPD)이었고, 2016년 결장암 진단을 받은 이래 무려 68차례 항암 화학치료를 받은 말기암 환자였다. 완연한 병색의 그는, 자신은 병이 일찌감치 발병해 기금 혜택을 누린 ‘행운아’지만, 보험도 없고 보상금도 못 받을 다른 동료들을 위해 나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 삶은 나보다 늦게 암 진단을 받을 이들보다 더 값질 게 없습니다.(…) 보상 기금은 결코 파라다이스 행 티켓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말해왔습니다. 그 약속을 확인하기 위해 제가 여기 왔습니다.” 방청석의 전원이 기립박수를 쳤고, 눈시울을 닦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WP)

알바레즈는 청문회 다음날 예정돼 있던 69번째 항암치료를 받지 못했다. 그리곤, 6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료진 판단에 따라 호스피스 병동에 와 있다”고 썼다. 그는 “숨이 멎을 때까지, 보상을 받아 마땅한 이들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 싸움의 불꽃을 지키기 위해 몇 차례 더 인터뷰를 해보려 노력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열흘 뒤인 6월 29일 별세했다. 향년 53세.

NYPD 폭발물처리반 소속 형사로 활동하던 30대의 루이스 알바레즈. facebook.com/matt.mccauley

루이스 G. 알바레즈(Luis Gustavo Alvarez)는 1965년 10월 쿠바 하바나에서 태어났다. 83년 뉴욕 퀸스의 한 고교를 졸업했고, 해병 제대 후 뉴욕 시티칼리지를 거쳐 1990년 뉴욕경찰아카데미에 입교했다. 알려진 그의 뉴욕 경찰 이력 중에 도드라진 건 별로 없다.

미국 경찰은 첫 발령지가 어디냐에 따라 이력이나 행로가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뉴욕의 경우 8개 지구별 특성이 워낙 뚜렷해 그런 경향이 특히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경찰 간부 출신 등 영향력 있는 부모의 자녀들이 주로 배치돼 ‘PBMS(Please Babysit My Son, 내 아이를 부탁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맨해튼 남부처럼 중범죄 거의 없는 곳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정복입고 지내며 승진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는 브루클린이나 브롱크스 같은 곳도 있다. 대개는 그런 지역의 정복 경관들이 5년 남짓 경력을 쌓은 뒤 본청 형사국이나 마약국, 특수작전국 같은 곳에 차출된다. 뉴욕경찰은, 특별한 야심이 있거나 예외적으로 편한 보직을 보장받은 경우가 아닌 한 정년(63세)을 채우는 예가 드물고 다수는 만 20년 연금 수령 시한을 채운 뒤 은퇴한다. 40대 초ㆍ중반의 그들 은퇴 경찰관은 이혼수당이나 양육비를 벌기 위해 사설 경비ㆍ경호업체 등에 취직하고, 사정이 나은 이들은 플로리다나 연금 생활이 가능한 시골로 이주한다. 뉴욕경찰의 6년차 연봉은 약 8만5,000달러(수당 포함하면 10만 달러 이상)이고, 연금은 퇴직 전 3년 평균 연봉의 절반 수준이다.

알바레즈의 첫 발령지는 퀸즈버러의 롱아일랜드 108지구대였다. 그는 93년 본청 마약국으로 옮겼고, 1급 형사로 승진한 뒤 2004년부터는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폭발물 처리반에서 2010년 은퇴할 때까지 일했다. 재직 중 그는 5차례 우수경찰 표창을 받았다.(NYT) 전업주부인 아내(Alaine Parker Alvarez)와 10대 세 아이를 둔 그는 은퇴 후 국토안보부(DHS)에 재취업했고, 암 발병 직후 퇴직해 숨질 때까지 9ㆍ11 피해자 권리운동에 가담했다. 세상이 그를 알게 된 것도 청문회를 통해서였다.

청문회에서 알바레즈 곁에 앉은 이가 존 스튜어트였다. ‘더 데일리 쇼’를 16년간(1999~2015) 진행하며 에미상 프라임타임 부문상을 무려 22개나 타낸 스타 방송인인 그는, 2001년 로우맨해튼 자신의 아파트에서 쌍둥이빌딩이 붕괴하는 장면을 직접 본 이래, 테러 피해자 권리운동에 열성적으로 가담해왔다. 2010년 말 보상법이 상원에서 무산될 위기에 빠지자 그는 자신의 쇼 한 회 분량을 털어 질병 고통과 치료비 부담에 시달리던 초기 대응팀 4명을 초대해 인터뷰했고, 공화당과 그 이슈에 대한 보도에 인색한 언론을 맹비난했다. 법안이 통과된 뒤 당시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스튜어트 덕에 법의 운명이 바뀌었다고 공언했다.(NYT)스튜어트의 청문회 발언은

시종 의회 성토로 이어졌다. 그는 9ㆍ11 관련자들로 가득 찬 방청석과 의원석의 빈 자리를 대비하며 “이 방의 풍경이야말로 9ㆍ11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겪어온 믿기 어려운 수난의 은유”라며 “숨이 멎어가는 이들이 병든 몸을 끌고 여기까지 와서 증언하는데, 정작 들어야 할 이들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고, 이 나라의 수치다”라고 말했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요령 없이 말해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무척 화가 나 있다”며 의원들의 “냉담한 무관심과 구역질 나는 위선”을 격렬하게 성토했다. 그 청문회를 미국 시민들이 TV와 유튜브로 지켜봤다. 법사위는 다음날 만장일치로 법안을 가결, 하원 총회에 상정했다.

미 상원은 8월 중 9ㆍ11 종신 보상법 개정안을 표결한다. 한 달 뒤인 9월 11일은 2001년 미국 정부가 정한 국가 기념일인 '애국자의 날(Patriot Day)'이다. 사진은 워싱턴D.C 유니언 역 광장의 '애국자의 날' 조기. en.wikipedia.org

하원의원 315명이 지지를 천명한 만큼 법안의 하원 통과는 무난할 듯 보이지만, 난관은 역시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이다. 앞서 스튜어트는 여러 인터뷰에서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맥코넬(Mitch McConnell)을 특정해 ‘장애물(impediment)’‘백경(white whale, 괴물의 의미)’이라며 비판했다. 뉴욕 주 예산으로 보상금을 충당하라는 공화당 일부의 주장에는 “알 카에다는 트라이베카(Tribeca, 뉴욕)의 죽음을 외치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을 공격했고, 초기 대응팀 남녀 요원들이 회복시킨 건 그렇게 당한 이 나라였다”고 했고, (CNN), “진주만 공격이 하와이 일이니까 워싱턴D.C는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냐”(FoxNews)고도 했다.

지역 편차는 있지만, 미국의 경우 공화당 지지자일수록 군과 경찰 등 공권력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9ㆍ11 피해자 단체 활동가 면담을 일절 거부해온 맥코넬 원내대표가 지난 달 말 필굿재단 관계자들을 만났다. 참석자들은 그가 “스튜어트가 왜 그렇게 비뚤어졌는지(all bent out of shape) 모르겠다. 우리는 그 이슈에 대해 제대로 숙의하지 않은 적이 없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CNN) 하지만 그는 그 법안을 다른 법안과 거래하지 않고 단독 표결해달라는 참석자 요구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상원은 8월 중 법안을 심리, 표결할 예정이다.

그 자리에서 존 필은 알바레즈의 요청에 따라 알바레즈의 NYPD 금장 배지를 맥코넬에게 전달했다. 필은 “뉴욕경찰이 배지를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장기 하나를 떼어주는 것과 맞먹는 의미를 지닌다. 루이스는 맥코넬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를,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알바레즈는 페이스북 글의 다짐대로, 6월 20일 호스피스 병상에서 폭스 뉴스와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9ㆍ11이 일어났고, 우리는 명령에 따라 현장에 출동했다. 위기에 대응하는 게 NYPD인 나의 일이었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소방관, 경찰관, 응급의료팀 대원 등 현장의 모든 이들이 그랬다. 나는 조금도 특별할 게 없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냈다. 이제 의회가 그들의 일을 할 차례다”라고 덧붙였다.(FoxNews)

가족은 그의 부고를 전하며 그가“각자 조심하고 서로를 잘 챙겨주라”는 말을 유언했다고 밝혔다. 그건 위험한 현장 작전을 앞둔 경찰들이 서로에게 늘 하는 말이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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