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ㆍ중 영공 침범에 “한일의 대응 모두 지지한다” 애매한 논평
미국 국방부는 23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주장하며 중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응 사격까지 비난한 상황에서 한일의 대응을 모두 지지한다는 애매한 논평을 낸 것이다. 이는 한일간 독도 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지만, 미국이 독도 영공의 주권국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독도를 국제사회에 영토 분쟁지역으로 인식시키려는 일본에 기우는 듯한 인상마저 보여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데이브 이스트번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ㆍ카디즈) 진입 및 러시아 군용기의 한국 영공 침범에 대해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강하게 지지하며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이들 동맹의 대응도 강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 국방부는 동맹인 한일과 이번 사안에 대해 긴밀히 조율을 하고 있다”며 “그들(한일)이 중국과 러시아 카운터파트와 외교채널로 후속 조치를 취함에 따라 관련 움직임들을 계속 모니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맹 방어를 위한 미국의 약속은 철통같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논평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하며 한국과 일본을 지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표명한 것이지만, 어느 나라 영공에 대한 침범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영공 침범'이라고만 표현해 한일간 갈등은 피해간 셈이다.
이는 미국이 그간 한일간 독도 분쟁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은 채 중립적 입장을 견지해온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제3국 영토 분쟁에는 관여하지 않는 데다, 한국과 일본 모두 동맹관계라는 점에서 역대 행정부마다 독도 분쟁에 거리를 둬왔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들어서도 독도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 나온 적은 없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독도 영공의 주권국을 명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기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미국의 침묵은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를 인정하는 것으로도 해석돼왔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군이 매년 독도 방어훈련을 실시할 때마다 일본이 강력 항의해왔으나 미국이 우리 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며 “미국은 한일간 독도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왔는데, 이는 한국 정부의 독도 지배를 인정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정부 기관인 미국 지명위원회는 독도를 중립적 명칭인 리앙쿠르암(Liancourt Rocks)으로 표기하면서 한국령으로 적시하고 있다. 미국 지명위원회는 1977년부터 독도 지명을 리앙쿠르암으로 바꿨으며 별칭으로 독도와 다케시마 등을 열거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해 큰 논란이 빚어졌다가 한국 정부의 대응으로 한국령으로 다시 표기됐다. 미국 지명위원회는 자국 및 외국 지명을 통일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로 모든 연방기구는 미국 지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도록 돼 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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