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진주성과 남가람 문화거리
촉석루(가운데 누각)와 논개의 충절로 널리 알려진 진주성 풍경. 남강 맞은편 남가람 문화거리 대나무 숲에서 본 모습이다. 진주성에는 촉석루 외에도 임진왜란과 관련한 유적과 추모시설, 박물관 등이 함께 있다. 진주=최흥수 기자

“경남에서는 지명에 ‘고을 주(州)’자가 붙은 곳이 진주밖에 없어요. 예부터 큰 고을이라는 뜻이지요. 진주를 본으로 하는 성씨가 2000년 기준 무려 80개입니다. 경주 다음으로 많아요. 그뿐인가요? 경상대학교, 진주교대, 경남과학기술대 등 국립대학도 도청 소재지인 창원보다 진주에 더 많습니다.” 장일영 문화관광해설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진주에 대한 자부심이 철철 넘친다. 그 자부심과 자존심의 중심에 진주성과 남강이 있다.

◇논개의 울분은 푸른 남강에 유유히 흐르고

덕유산과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 모인 강물은 남강댐 진양호에서 한 번 숨을 고른 후 진주 시내를 용틀임하듯 휘어 흐른다. 그 한가운데 높지 않은 언덕에 진주성이 있다.

지금의 진주성은 내성 구역에 해당한다. 1970년대에 정비했다.
공북문으로 들어가면 공원처럼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을 이룬 곳이다. 당시 진주는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를 지키는 길목이어서 왜와 다툼이 치열했다. 선조 25년(1592) 10월에 진주목사 김시민과 의병대장 곽재우가 3,800명의 수성군으로 왜장 나가오카 다다오키가 거느린 2만명의 왜군을 격퇴했다. 하지만 다음해 6월 왜군 9만3,000여명이 다시 진주성을 공격해 의병장 김천일과 경상우병사 최경회 등이 이끄는 민관군 7만명이 성을 지키다 끝내 죽임을 당한다. 쓰리고 참혹한 이 현장에서 진주성보다 후대에 더 붉고 깊게 새겨진 이름이 논개와 촉석루다. 진주 관기 논개는 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껴안고 촉석루 아래 남강에 몸을 던졌다.

둘레 1,760m 석성으로 축조된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곳이다. 본래 토성이던 것을 고려 우왕 5년(1379)에 석성으로 쌓았다. 조선시대 들어서도 여러 차례 고쳐 축성 방법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지금의 진주성은 내성(內城)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1970년대에 복원, 정비했다. 이에 앞서 1910년에는 일제가 성벽을 모두 허물고 ‘진주공원(촉석공원)’으로 조성하는 수난을 당했다. 지금 ‘임진대첩계사순의단’ 자리에는 신사가 있었다. 계사순의단은 계사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7만여명을 추모하기 위해 1987년 세운 제단이다.

진주성의 정문 격인 공북문.
진주성의 상징적 건물인 촉석루. 매주 토요일 진주 무형문화재 상설 공연이 열린다.

진주성 관광객은 보통 북측 공북문(拱北門)을 이용해 성안으로 입장한다.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는 뜻으로, 공경의 대상은 ‘북쪽에 계신 임금님’이다. 공북문은 남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뻗은 진주성의 가운데쯤이다. 때문에 성안을 고루 둘러보려면 양쪽으로 오가야 해서 번거롭다. 대신 동쪽 입구인 촉석문으로 들어가 서장대 쪽으로 나가면 일직선으로 성을 훑게 된다.

촉석문 앞에는 수필가 변영로의 ‘논개’ 시비가 묵직하게 남강을 바라보고 있다. ‘아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첫 발걸음부터 비장하다.

촉석문을 지나면 바로 촉석루다.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국내 3대 누각으로 꼽힌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처음 건축한 이래 8차례 고쳐 지었다. 평시에는 향시(鄕試)를 치르는 장소로, 전시에는 지휘본부로 활용됐다. 촉석루(矗石樓)라는 이름은 바위 벼랑에 ‘곧을 직(直)’ 자 3개가 우뚝 솟은 모양이다. 진주성 전투와 논개의 충절을 예견하고 지은 게 아닐 텐데, 전혀 관계없다 하기도 어렵다.

시민들이 촉석루 난간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논개의 충정이 서린 의암. 촉석루 바로 아래 남강에 반쯤 잠겨 있다.

남강의 푸른 물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누각 천장에는 당대의 문필가가 쓴 문장으로 가득하다. 이색, 안축, 김종직, 이황, 정약용 등 문장가의 비중으로만 따지면 단연 으뜸이다. 한낮의 땡볕과 지글거리는 열기도 촉석루 너른 마루에서는 한풀 꺾인다. 살랑 불어오는 강바람에 이마와 등줄기의 땀방울도 금세 사그라진다. 강물에는 구름이 흐르고 누각에는 풍류와 낭만이 흐른다. 그 멋을 아는 시민들이 기둥과 난간마다 등을 기대고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눈다.

논개 사당인 의기사에 그의 초상이 걸려 있다.
의암 바로 위에 의암사적비. ‘의기논개지문’이라 쓴 비각으로 보호하고 있다.

누각 아래에 강변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가 물에 반쯤 잠겨 있다. 삼복더위라도 촉석루까지 왔으면 꼭 내려가는 이유다. 인조 7년(1629) 정대륭이 바위 옆면에 새긴 ‘의암(義巖)’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당초 위험해 보여 위암(危巖)이라 했다가 논개가 순국한 뒤 이렇게 부르게 됐다고 한다. 바로 위에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의암사적비 비각이 있다. 수백 번도 모자랄 논개의 충정을 다시 한번 기리는 비석이다. 촉석루 옆에는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의기사(義妓祠)도 따로 있다. 한 여성을 위해 나라에서 지은 사당으로는 유일무이하다. 사당 안에는 윤여환 충남대 교수가 그린 논개 초상이 걸려 있고, 처마 아래에는 다산 정약용의 중수기, 매천 황현, 진주 기생 산홍의 시판이 걸려 있다.

◇촉석루는 일부…진주성 전체가 전쟁박물관

보통 촉석루 일대만 돌면 진주성을 다 본 것으로 생각하지만 범위로 따지면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촉석루에서 남북 측 성벽을 따라 걸으면 진주와 진주성의 역사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 심어진 나무가 적당히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무더위도 부담스럽지 않다.

진주성의 영남포정사 문루. 1925년 도청이 부산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경남도청 정문이었다.
진주성 북장대 부근.

진주성을 수호한 김시민 장군 동상 뒤편의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영 문루로 진주성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진주목 시대에는 내성의 관문이었고, 1896년부터 도청이 부산으로 옮겨 간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 도청의 정문이었다. ‘경남의 중심 도시’ 진주 시민의 자존심이 깊게 투영된 건물이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집무실인 운주헌과 경상남도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이 있었던 터에는 현재 청계서원와 경절사라는 사당이 들어서 있다. 각각 진주 정씨와 하씨 두 가문의 은근한 자존심이 밴 건물인데, 애초 진주성과는 상관이 없어 안내책자에는 아예 빠져 있다.

진주성 북장대. 내성에서 가장 높은 지점이다.
북장대 마루에 서면 아담한 진주의 옛 도심이 펼쳐진다.

영남포정사 뒤편 북장대 건물은 작지만 단아하다. 내성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누각 마루에 오르면 진주의 옛 도심 풍경이 아담하게 펼쳐진다. 청계서원 아래 나지막한 구릉에는 국립진주박물관이 삿갓을 쓴 것처럼 숨어 있다. 애초 가야문화 연구 기관으로 개관했는데, 1998년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전개뿐만 아니라 전쟁의 원인과 과정, 결과와 후대평가에 이르기까지 다각도에서 임진왜란을 조명하고 있다.

진주성 안의 국립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이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이순신 장군 우표와 포스터.
국립진주박물관 내의 휴게실. 운치있게 무더위를 식히기 좋은 곳이다.

사실 진주성 자체가 임진왜란 박물관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길은 호국사와 창렬사로 이어진다. 호국사는 고려 말 왜구의 빈번한 침입에 대비해 승병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처음에 내성사였으나 조선시대 숙종이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사찰 바로 옆의 창렬사(彰烈祠) 역시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39위의 신위를 안치하고 있다. 경제 전쟁으로 번진 작금의 한일 갈등이 중첩돼 절로 숙연해진다. 성벽의 서쪽 끝 서장대에 올랐다가 서문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진주성 기행은 마무리된다.

진주성 안의 호국사.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숨진 승병을 추모하는 사찰이다.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39위 지휘관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
◇남강 자락에 진주의 향기…남가람 문화거리

진주성 전체 윤곽을 제대로 보기에는 남강 맞은편 ‘남가람 문화거리’가 오히려 낫다. 문화거리라 이름했지만 남강 남측에 조성한 강변공원이라 생각하면 된다. 진양교~진주교~천수교에 이르는 약 3km 도심 구간 남강변에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남가람 문화거리에서 본 진주성과 남강.
남가람 문화거리의 대나무 숲 산책로.
도심 한가운데지만 깊은 산속에 들어 온 느낌을 받는다.

남강 주변에는 예부터 대나무가 많았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인근과 촉석루 맞은편 등 일부 구간에는 여전히 대숲이 무성하다. 대나무 사이에 자란 아름드리 팽나무를 넝쿨식물이 휘감고 있어 도심이면서도 깊은 숲에 들어온 듯 선선한 기운을 풍긴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앞 형평사 조형물은 진주 지식인층의 저력을 보여 준다. 형평사는 일제강점기 천민 계급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한 결사다. 1923년 지역 양반들이 주도한 사회 평등 운동으로 일본의 관헌뿐만 아니라 지역 유지로부터도 탄압을 받아 1936년 대동사로 명칭을 변경했다.

남가람 문화거리의 형평 조형물.
경남문화예술회관 건물. 독특한 모양의 기둥으로 웅장한 멋을 살렸다.
남가람 문화거리의 조형물.

진주 사람들은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로 진주의 위상을 평양에 비유한다. 촉석루와 부벽루가 쌍벽이고, 남강과 대동강이 또 그렇다. 논개와 계월향의 애국충정도 빠지지 않는다. 진주교 교각마다 가락지 장식이 있는데, 대놓고 자랑하지는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논개가 한 수 위라는 은근한 자부심이다.

촉석루에서 무형문화재 ‘진주 검무’ 공연이 열리고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촉석루와 국립진주박물관 앞 야외공연장에서 진주 무형문화재 공연이 열린다.
진주성과 남가람 문화거리 일대. 그래픽=송정근 기자
◇진주 여행 메모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1시간30분간 진주성 야외공연장과 촉석루에서 진주시 무형문화재 토요상설공연이 열린다. 진주삼천포농악, 진주검무, 한량무, 진주포구락무, 신관용류 가야금산조, 진주오광대 중 2개 종목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남가람 문화거리는 걸어도 무난하지만 자전거로 다니면 더욱 좋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인근에 유료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2시간에 4,000원이다. 평거동(남강로 373번길 3)에 무료 자전거 대여소가 있지만, 진주성에서 멀어 여행객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다. ▦진주성 공북문 인근에 특색 있는 빵집이 2곳 있다. ‘진주빵’은 연 잎과 치자가루로 맛을 냈고, ‘운석빵’은 오징어 먹물로 색을 입혔다.

진주=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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