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문제는 신뢰의 문제” 선거 결과 상관없이 강경 태도 고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현재 한일 관계의 가장 큰 문제로 ‘신뢰’를 꺼내 들었다. 한국 대법원 징용배상 판결이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한일 청구권 협정을 위반하고 있음을 재차 주장하면서다. 또 대법원 판결과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별개 사안임을 강변하고, 다음 단계인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절차를 변함 없이 이어 갈 뜻을 시사했다.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했지만 개헌세력의 3분의 2 의석(개헌안 발의선)에는 못 미쳐 ‘절반의 승리’에 머물렀음에도, 한국을 향한 강경한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을 태세다.
아베 총리는 22일 도쿄(東京) 자민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문제는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느냐 여부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1965년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과 한일 청구권 협정,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을 거론하면서 “국제적인 약속을 한국이 일방적으로 깨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언급하면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항조치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수출관리 당국 간 3년 동안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등 수출관리의 토대가 되는 신뢰관계가 사라졌다”고 약속과 신뢰를 강조했다.
아베 정권은 2012년 중의원 선거 이후 열린 총 6차례의 중ㆍ참의원 선거를 모두 승리하면서 정권 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졌다는 평가가 많다. 때문에 일단 한국에 꺼내든 칼을 쉽사리 다시 집어넣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선거 이전 정부 차원에서 작성한 시간표 대로 한국에 타격을 주는 카드를 차례로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에서 기존 외교적 해결책이 아닌 경제 보복이란 충격 요법을 꺼냈음에도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은 것은 정부의 강경 대응을 지지하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손제용 릿교(立敎)대 법학부 준교수는 “현재 아베 정권에선 한일 관계 개선은 미국과의 무역협상, 호르무즈 연합체 참여, 북방영토 협상 등에 비해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며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는 기존에 작성한 매뉴얼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민당 등 개헌세력은 이번 선거에서 개헌안 발의선인 3분의 2 의석(164석)에 4석이 모자랐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개헌에 관심 있는 일부 야당 의원들과 협력해 개헌을 추진해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야당에 국회 헌법심사회 개최와 함께 개헌을 논의할 것을 호소한다”면서 “2020년 새 헌법 시행을 목표로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당장은 국회 내 개헌 논의를 진행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당세가 축소된 국민민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 개헌선에 도달하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 추진을 위해 중의원을 해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베 총리가 ‘전쟁 할 수 있는 정상 국가’를 위한 개헌 의지를 굳힐수록 국내 보수 여론 확보가 중요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각종 압박에도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구도이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이번 선거는 아베 총리가 개헌을 전면에 내세워 치른 첫 선거로 임기 내 개헌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개헌을 위해선 한국에 강경한 우파 세력과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헌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한국에 대한 강경한 자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