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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한일관계 파국은 막아야

입력
2019.07.23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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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부산 동구 일본 영사관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6명이 진입을 시도 했다가 경찰에 검거되자 반일투쟁선포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회원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영사관에 들어간 뒤 일본 경제보복에 항의하는 뜻으로 퍼포먼스를 하려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부산=뉴스1
22일 오후 부산 동구 일본 영사관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6명이 진입을 시도 했다가 경찰에 검거되자 반일투쟁선포 기자회견에 참가했던 회원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영사관에 들어간 뒤 일본 경제보복에 항의하는 뜻으로 퍼포먼스를 하려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부산=뉴스1

일본의 경제보복을 둘러싼 한일 갈등이 치킨게임이 돼버렸다.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2012년 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이 나온 게 출발점이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징용문제가 종결됐다는 기존 한일 정부 입장과 배치된 결정이 나온 것이다. 문제의 근원인 한일협정 체결 당시 논란의 핵심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왜 배상을 포기하고 청구권협정이란 애매한 협정을 맺었을까.

한국은 연합국과 일본의 강화조약인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전승국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일본과 전쟁을 벌인 당사자가 아닌 식민지였던 탓이다.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만들어 일본과 교전상태에 있었던 것과 다름없다고 동의한 일부 연합국이 있었지만 식민지를 보유한 미국과 영국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식민지배가 원래부터 불법이고 무효였다는 우리 입장과 달리 일본은 식민지 피해에 대한 배상개념이 애초에 없었다. 실제 일본인 상당수는 국제정치의 냉철한 현실이었다고 보고 있다. 식민지배 합법 논쟁은 결국 양국 모두를 충족시킬 외교적 창의력을 탄생시켰다. ‘이미 무효’라는 문구다. 영어로 ‘already’, 일본어로 ‘모하야’(이제와서는)로 표기해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간 조약 및 협정이 일본으로선 당시엔 합법이었으나 1965년 시점에서 무효라고 해석할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때 봉합한 긴장이 50년을 넘어 우리 대법원 판결로 폭발했다.

현재의 갈등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문재인 대통령이 이끄는 한일 정권의 정체성과 직접 연관돼 있다. 아베 정부는 ‘역사수정주의’ 세력의 연합정권 성격을 갖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전범을 심판한 도쿄극동재판과 평화헌법을 재검증하겠다는 집단이다. 2012년쯤부터 한일관계는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도쿄 근무를 시작한 2014년 일본은 혐한 분위기가 들끓는 상황이었다. 서점에 가면 한국 대통령을 모욕하는 낯 뜨거운 황색잡지가 가판대에 널려있었다. 2016년 가을 한국에서 촛불시위가 터지자 우익매체들은 “거리에서 정부를 무너뜨리는 일이 민주주의라고 자화자찬한다”며 왜곡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권을 조롱하던 일본 언론은 문재인 정권 출범을 ‘친북’ ‘반일’ 세력으로 폄하했다.

이제 한일협정과 대법원 판결의 모순을 푸는 게 양국간 근본 과제가 됐다. 그런 면에서 대법원 판결 이후 우리 정부는 외교적 노력을 사실상 방치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나온 후에야 뒤늦게 지난 15일 일본에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기 바란다”는 언급은 신뢰를 주기 힘들다. 올 1월에 양자협의, 5월엔 중재위 개최 요구를 한국이 모두 거부했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피해자지원 재단을 설립해 한일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안도 위안부 화해치유재단을 해체시킨 마당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장은 일본의 추가 보복조치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 총리가 하루속히 일본을 방문해야 한다.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배상에 참여토록 유도하는데 정부가 움직일 수 없다면 시민단체를 활용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이 존중된다. 우리 정부가 피해자 지원에 합류한다면 한일협정의 정신도 유지할 수 있다. 일본 민주당 정권시절 간 나오토 총리 담화(2010년)에서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를 언급해 식민지배의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점도 적극 공론화시켜야 할 것이다.

정작 여당에선 반일을 총선전략으로 치르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책임있는 당내인사가 사석에서 이번 총선을 반일(민주당) 대 친일(한국당) 프레임으로 돌파한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지금 반일을 부추길 처지인가. 일본으로부터 경제보복 같은 꼴을 당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고 국민의 자존심과 생존을 책임져야 할 집권당이 제 할 일은 못하고 반일정서로 묻어가겠다니…. 그 발상과 배포에 어이가 없다.

박석원 정치부 차장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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