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론에선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따른 한일 갈등이 연일 톱뉴스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지난 17일 NHK 간판뉴스 ‘뉴스워치 9’의 톱뉴스는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예기획사 자니스 사무소에 관한 소식이었다. 자니스가 회사를 떠난 스맙(SMAP)의 전 멤버 3명의 민영방송사 출연을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한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주의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2016년 12월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일본 국민 아이돌 그룹 ‘스맙(SMAP)’의 해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니스에 남은 리더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廣)와 기무라 다쿠야(木村拓也)는 여전히 TV에서 프로그램 진행과 드라마 출연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반면 자니스를 떠난 이나가키 고로(稲垣吾郎) 등 3명은 그간 출연하던 민영방송사의 고정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폐지됐다. 이들은 TV보다 영화와 광고, 인터넷방송 등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왔다. 이에 “자니스가 민영방송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심증이 이번 보도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회사를 떠난 연예인의 방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는 독점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게 일본 공정위의 판단이다. 그러나 자니스 측은 “스맙 전 맴버들의 방송 출연과 관련해 방송사에 압력을 행사한 적도 공정위로부터 행정처분이나 경고를 받은 적도 없다”며 “행정당국의 조사를 받은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향후 오해를 사지 않도록 유의하겠다”고만 밝혔다. 이에 NHK는 다음날인 18일 “자니스 소속 연예인을 섭외할 때, 자니스 간부가 ‘전 스맙 멤버 3명이 참여하는 경우 소속 탤런트들을 출연시킬 수 없다’고 압력을 가했다”는 민영 방송사 간부의 공정위 증언을 보도했다.
자니스로부터 “전 스맙 멤버 3명을 출연시키지 말라”는 명확한 발언이 없었을지라도 민영방송사로선 압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니스에는 아라시(嵐), V6 등 인기 연예인들이 다수 소속돼 있으며 민영방송국에선 “자니스 소속 연예인들이 없으면 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렵다”는 말들이 나올 정도이기 때문이다. 전 스맙 멤버 3명을 출연시켜 자니스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민영방송사의 ‘손타쿠(忖度ㆍ알아서 행동함)’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2009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동방신기의 전 멤버 3명이 소송 끝에 독립, JYJ를 결성했으나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자취를 감춘 바 있다.
민영방송사의 손타쿠는 지난 9일 별세한 자니스의 창업자인 자니 기타가와 소식을 온종일 방송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연예계에 남긴 족적을 집중 조명하면서도 주간지 등에서 제기했던 소속 연예인에 대한 성추행 의혹 등은 일절 다루지 않았다. 공정위의 주의 소식이 자니 기타가와의 사후에 공영방송사인 NHK를 통해 보도된 것도 우연으로 몰아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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