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혀요(I can’t breathe)”
2014년 7월 17일 경찰에게 목이 졸려 사망한 미국 국적의 흑인 에릭 가너의 ‘유언’이다. 가너의 마지막 외침은 5년이 지난 2019년에도 미국 거리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5년 전 경찰관 대니얼 판탈레오는 위협 행위를 일절 하지 않은 가너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목 조르기(Chokehold)’ 기술로 제압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사망사건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16일(현지시간) 연방 검찰은 판탈레오에게 최종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시민들은 가너의 마지막 말을 외치며 뉴욕 거리를 메웠다.
가너의 죽음은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과도한 공권력 행사가 섞여 터진 사건의 정수였다. 당시 사복 근무 중이었던 뉴욕시 경찰청(NYPD) 소속 경찰관 저스틴 다미코는 가너를 불법으로 가치담배를 판매한 혐의로 체포하려 했다. 가너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다미코에게 항의하던 중 판탈레오가 가너를 뒤에서 덮치며 목을 졸랐다. 동료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가너를 길바닥에 눕힌 판탈레오의 목 조르기는 15초 동안 지속됐다. 진압 과정 중 “숨이 막힌다”며 헐떡인 가너는 끝내 의식을 잃었고, 같은 날 인근 병원에서 사망 판정을 받았다.
사건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 공개되자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경찰이 법으로 금지된 진압 기술까지 쓰며 가너를 제압했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과잉진압에 의한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이 언급하는 ‘총기를 꺼내려는 듯한 모습’ ‘신체적 위협이 느껴지는 행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선진국보다 공권력에 관대한 미국 사회조차 구두로 항의할 뿐이었던 가너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다.
시민들은 가너의 사망이 그동안 미국 경찰이 백인보다 흑인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과잉대응을 해 왔던 것을 묵과한 결과라고 봤다. 가너의 사망은 2014년 전까지 온라인 중심으로 진행되던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거리로 끌어낸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가너 사건은 조직범죄·흉악범죄·기업범죄보다 생계형 경범죄 수사에 치중하는 경찰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계기이기도 했다. 주에 따라 담배 가격이 다른 미국에서는 담뱃세가 저렴한 주에서 담배를 들여와 뉴욕처럼 담뱃세가 비싼 곳에서 개비 단위로 되파는 ‘가치담배 보부상’이 성행한다. 가너 역시 가치담배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던 보부상이었다. 이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경범죄에 해당한다. 당시 미국 주요 언론들은 사복경찰까지 동원해 담배 판매상이나 검거하는 경찰의 모습을 일제히 비판했다.
판탈레오에 대한 불기소 처분은 본래 2014년 12월 처음 내려졌다. 미국은 기소배심원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중범죄에 대한 연방 정부의 기소 여부는 기본적으로 대배심에서 판단한다. 대배심에서 판탈레오를 기소하지 않기로 하자 미 전역에서 연이은 시위가 발생했고, 연방 검찰은 이듬해 재수사를 하기로 발표했다. 2015년 1월 시작된 검찰 수사가 불기소 처분으로 끝나고, 공소시효 역시 만료됨에 따라 판탈레오가 가너 사건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사라졌다.
검찰이 발표한 불기소 처분의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었다. 판탈레오가 필요 이상의 무력을 ‘고의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고인의 어머니인 그웬 가너는 검찰의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5년 전 내 아들은 ‘숨이 막힌다’고 11번이나 외쳤다. 오늘은 법무부(검찰)의 결정에 우리의 숨이 막힌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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