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이런 건 어떨까요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은 일회성 사건이 아닌 구조적 문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결혼이주민은 가정폭력 등 여러 인권침해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못 박았다. 한국에서 신분을 안정적으로 보장받고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배우자, 즉 남편의 도움과 협조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거금을 들여 국제결혼중개업소를 거쳐 해외의 결혼이주여성을 국내로 초청하는 현행 국제결혼 구조는 남편이 아내를 소유물처럼 여기게 만들기 쉬운데 여기에 아내의 체류 자격까지 남편이 좌지우지하는 구조이니 폭행이나 폭언을 당해도 아내로서는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결혼이주여성 권익옹호 단체들은 체류 자격 연장 절차와 기준만이라도 완화해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법무부는 남편이 처음 결혼이주여성을 한국으로 초청할 때만 남편이 신원보증서를 제출하게 돼 있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의 영향력이 강하다. 출입국사무소가 요구하는 각종 행정서류를 남편의 도움 없이 아내 스스로 발급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결혼이민비자(F-6)의 체류 자격을 연장하려는 결혼이주여성은 출입국사무소에 거주지를 입증하는 임대차계약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가구 소득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라는 경우도 많다. 임대차계약서 등 일부 서류는 남편이 직접 발급받아야 하는데다, 결혼이주여성이 발급받을 수 있는 서류도, 한국 사정에 어둡고 한국말이 서툰 경우에는 남편 도움 없이 떼기가 어렵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장은 “남편에게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살면서도 아무 말 못하는 이유는 남편이 나쁜 마음을 먹고 체류 자격 연장에 협조하지 않으면 언제든 한국에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어렵게 체류 자격 연장 서류를 준비해도 법무부가 최대 체류 연장기간 3년을 그대로 승인해 주는 경우는 드물다. 기자가 만난 결혼이주여성들은 “연장기간을 길게 해 주면 이주여성들이 남편으로부터 도망갈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연내 체류자격 연장 기준과 절차를 완화하는 등의 내용을 법무부에 권고할 계획이다. 이 권고의 토대가 되는 보고서를 작성한 김은정 한양여대 사회복지보육과 교수는 “일부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더라도 결혼이주여성은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정주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인 점을 인정해야 한다”라면서 “체류 기간이 불안정한 초기에는 폭력 등을 당할 우려가 높은 만큼 정부가 권고를 받아들여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고 가족을 제대로 꾸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도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민호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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