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여성출마프로젝트. 녹색당 2020 여성출마프로젝트 캡처

최근 몇 차례 강연의 기회가 있었다. 보통 내게는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법이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관련된 내용으로 강연 요청이 온다. 크게 보자면 ‘프리랜서의 일과 삶’과 ‘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라는 주제다. 하지만 일주일 전 대전에서의 강연은 조금 달랐다. 만 19세에서 39세까지, 2030세대로 분류될 청년들이 자신의 삶에 필요한 정책을 직접 만들고 제안하는 플랫폼의 연사로 초청되면서 주제를 스스로 결정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면서 나는 나의 이야기를 듣게 될, 그리고 나 또한 포함되어 있는 ‘2030 세대’를 호명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를 연사로 초청한 주최 측을 비롯한 대부분의 경우 2030 세대를 청년이라고 부른다. 특히 정치권이 우리 세대를 청년이라고 호명하는 일을 즐기는데, 선거철 1표를 동원하기 위해 젊고 새로운 감각을 이식하고자 할 때 자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청춘이라는 단어는 대중문화, 특히 문학의 언어로 자주 쓰인다. 정치나 경제의 주체라는 느낌이 희석된 듯해 나는 즐겨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글로벌한 호명인 밀레니얼 세대라는 단어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우리 세대는 과연 스스로를 어떻게 감각하고 있을까? 우리 삶을 직접 바꿀 수 있다고,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고 주어져야 하고 주어지도록 우리가 싸우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한끝에, 나는 강연의 제목을 ‘2030 나로서 세상보기’라고 정했다. 바로 이 지면의 이름에 ‘나로서’라는 단어를 집어넣은 것이다.

2030 세대를 위한 지면이 따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일차적으로는 시선으로 본 세상,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관심사가, 청년들의 고민이, 세상에 대한 관점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한 이들은 누구인가? 적어도 그들은 청년은 아닐 것이다. 나는 가끔 2030 세대의 몫으로 따로 떼어내진 자리가 여기서만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하라는 선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청년은 1표가 아까운 순간이나 혹은 새로운 소비의 주체로서 소비자로 여겨질 때는 자주 불려 나오지만, 현실 정치와 권력과 경제의 주체가 된 적은 없기에 열외의 자리를 배정받는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기성세대가 청년이었을 때와는 다르게, 현재의 청년들에게는 주체가 되어갈 미래가 주어질 확률도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는 ‘2030 세대로서 세상을 보는 방법’은 하나다. 윗 세대가 청년의 시선을 따로 떼어내서 읽고,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시대를 과거의 유산으로 흘려보내 버리는 것이다. 기성 세대가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청년을 위한 지면을 내어주고, 청년을 위한 자리를 주는 그런 시대는 끝나야 한다. 내가 청년이 직접 정책을 만들기 위한 준비 자리에서 이 지면의 이름을 빌려온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 세대에게는 청년을 위해 떼어내 준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든 자리가 필요하다.

그걸 위해 나는 청년이, 그리고 더 많은 여성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50대 남성 중심의 정치 구조와 경제 구조가 바뀌고, 그 자리를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대체하는 것만이 한국 사회가 새로워질 방법이다. 더 많은 2030 세대가, 특히 여성이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고, 국회로 가고, 중앙 정치와 지역 살림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더 많은 여성 청년이 결정권자의 자리로 가야 한다. 정책을 만들고, 발의하고, 미디어를 만들고, 개인의 채널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어야 한다. 나는 우리가 세상을 직접 바꾸기를 원한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부터.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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