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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외교전’ 한국은 총력, 일본은 로키… 미국은 신중 모드

입력
2019.07.11 17:52
수정
2019.07.12 01:23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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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종 방미… 일본은 조용한 외교… 미국은 “한일이 해결” 뒷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0일(현지시각)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10일(현지시각)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가 청와대•외무부•통상교섭본부 등 각 라인을 총동원해 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 조치의 부당함을 미국에 알리는 전방위 외교전에 나섰다. 일본의 조치가 미국 기업을 비롯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집중 부각시키는 논리로 미국을 움직이는 데 힘을 쏟는 모습이다. 하지만 산업 피해가 현실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당장 한일 중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려워 적극적 중재 행보에 나설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통화를 갖고 한일 관계 문제를 논의한 데 이어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이날 백악관 관계자 등과의 협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했다. 방미 첫날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과 상원의원들을 만난 김 차장은 이틀째인 11일 오전(현지시간) 숙소인 워싱턴의 한 호텔 앞에서 취재진에게 “한미일 3국의 고위급 협의를 하려고 하는데 한국과 미국은 매우 적극적”이라면서도 “일본 측은 아직 답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김 차장은 한일 갈등을 둘러싼 미국 측의 중재나 조정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냐는 물음에는 “그건 노코멘트”라며 말을 아꼈다.

김 차장은 또한 미국 측 인사들의 반응에 대해 “미국은 두 동맹국(한국·일본)이 협조하면서 건설적으로 잘 해결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차장은 이날 오후에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그 다음날(12일)에는 카운터파트인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워싱턴에 도착한 김희상 외교부 양자 경제외교 국장은 11일 열린 고위경제대화 국장급 협의에서 롤런드 드 마셀러스 국무부 국제금융개발국장,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와 회동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방미를 추진하고 있는데, 카운터파트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회동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시기는 유동적이다. 김 국장은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문제와 관련해 외교부와 산업부가 하나의 팀으로 조율하고 있으며 유 통상교섭본부장은 경제 부처, 김 국장 본인은 국무부와 안보 부처 위주로 활동하는 쪽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미국 설득 논리로 내세우는 것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조치로 미국 기업도 피해를 볼 수 있고 한미일 3국 협력도 훼손시킨다는 점이다. 에티오피아를 방문 중인 강경화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과의 통화에서 “일본의 무역 제한조치가 한국 기업에 피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체계를 교란시킴으로써 미국 기업은 물론 세계 무역질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한미일 3국 협력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일본과의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말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이에 폼페이오 장관은 이해를 표명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이를 공급받는 미국 정보통신(IT) 기업들도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 것이다. 김희상 국장도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미국 측에) 조목조목 지적할 것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의 근거로 내세우는 에칭가스 등 전략 물자의 북한 유입 의혹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도 전달해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고위 인사를 대거 워싱턴으로 급파하는 데 비해 일본은 워싱턴 주재 대사관을 중심으로 한 상시적 외교 채널을 통해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절제된(low-key) 대미 외교전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소식통은 “일본은 이번 조치가 전면적 수출 금지 조치가 아니며 미국 기업에 대한 피해도 없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미국 개입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되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선에서 수출 규제 카드를 활용할 것이란 얘기다.

한일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다 보니 미국 정부 입장에선 산업 피해가 현실화하지 않은 단계에서 섣불리 개입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의 조치가 미국의 통상 압박을 모방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통상 규제를 마다하지 않았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을 제어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정부로선 어느 한쪽을 편드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이번 사태가 한일간 역사 갈등까지 얽혀 있어 최대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는 분위기이다. 워싱턴 씽크탱크의 한 관계자는 “워싱턴 조야에선 일본의 조치가 너무 나갔다고 보면서도 한국 정부가 강제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잘못 다뤄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기류다”라며 “그 때문에 미국이 어느 한쪽을 편들기 쉽지 않고 한일 양국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도 미국이 나서기 앞서 한일이 스스로 갈등을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인 제임스 리시 상원 외교위원장은 “한일 양국이 스스로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일 모두 성숙한 사회이고 많은 일들을 겪어왔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도 “이 문제가 한일 양국 사이에서 책임 있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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