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이 지난해 10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탈원전 정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밀양 할머니들은 후손들을 위해서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김주성 기자

“판사님. 나는 피땀 흘려 가꾼 이 논밭과 우리 목숨을 철탑과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상도 필요 없고, 옛날처럼 밭에 채소 일구면서 지금 이대로만 살게 해주세요. 제발 이 늙은이를 살려주세요.”

2012년 경남 밀양시 부북면 평밭마을 구화자 할머니는 창원지법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에서 송전탑 건설 공사를 멈춰 달라고 절규했다. 하지만 ‘국책사업’이란 명분 앞에서 구 할머니의 호소는 간단히 무시됐다. 할머니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산 속으로 들어가 천막 농성도 벌였지만 돌아온 것은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10년 넘는 투쟁 기간 동안 383명이 민ㆍ형사 소송을 당했고, 381명이 입건됐으며, 두 사람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가 청구한 벌금은 2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4년 765㎸ 초고압 송전탑은 밀양 마을 한복판에 들어섰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밀양 송전탑 사건의 전말이다. 이제 밀양은 잊혀진 이름이 됐다. 사람들은 “진 싸움”이라고 “끝난 싸움”이라고 했다. 하지만 ‘밀양 할매’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4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129번 송전탑 공사 현장에서 움막 철거 행정대집행이 진행되자 주민과 수녀들이 움막 앞에 드러누워 저항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밀양을 듣다’는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구술집이다. 활동가들의 집단 인터뷰와 주민들이 직접 쓴 신문 기고문, 탄원서, 법정 최후진술,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 등을 엮었다.

우리 기억 속에서 밀양은 지워졌지만, 여전히 계속된 할머니들의 싸움이 책에 있다. 할머니들은 송전탑 철거 요구에서 멈추지 않고 근본적 문제인 탈핵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꾸린 공론화위원회는 희망이었다.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 송전탑도 뽑히지 않을까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끝내 할머니들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론화위는 ‘더 이상 새로운 원전을 지어서는 안되지만, 짓고 있던 원전은 건설을 마무리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던 밀양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은 좌절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기에 억울함은 더했다. 처음부터 끼워주지 않았다. 전문가가 아니고, 당사자도 아니고,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할머니들은 타자화되고 배제 당했다. 탈핵 이슈를 최초로 제기한 할머니들이지만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공론화위는 경제 담론으로만 움직였다. 이미 진행된 원전 건설공사를 중단했을 때 드는 비용에 주로 논의가 집중됐다. 뛰는 선수도, 경기 룰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지만 항의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숙의 민주주의’라는 근엄한 미명을 거스르지 말라 경고했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제약되는 형식적 담론장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할머니들에게 공론화위는 공권력만큼이나 폭력적이었다.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밀양 할매들이 그린 그림. 송전탑은 파괴적인 거대 로봇이나 괴물처럼 묘사됐다. 할매들에게 송전탑은 생명의 평화를 깨뜨린 주범이었다. 오월의봄 제공

책은 묻는다. 당사자는 누구인가. 전문가의 자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할머니들은 누구보다 탈핵 문제와 에너지 개발의 불균형성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경제적 이익을 노리고 투쟁한 게 아니다. 후손들을 위해서, 이 땅에 살아갈 모두를 위해서 싸워 온 것이다. 사실 원전 문제에 있어 당사자는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이기도 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나는 당사자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들은 말한다. 원자력 발전의 문제는 누군가의 재산과 건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말이다.

 밀양을 듣다 
 김영희 기획ㆍ엮음 
 오월의 봄 발행ㆍ656쪽ㆍ3만2,000원 

구술 채록 작업을 기획 총괄한 김영희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밀양의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낼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밀양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적 밀양이냐’고 피로감을 느끼고 반감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를 어설프게 덮고 간다면 그와 연결된 더 큰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밀양 할매들의 이야기를 다시, 제대로 들어야 하는 이유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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