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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자폐 도우미 다들 기피 “가족에게 활동지원사 자격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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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자폐 도우미 다들 기피 “가족에게 활동지원사 자격 주세요”

입력
2019.07.15 04:40
수정
2019.07.15 07:4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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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에 세살 지능 열살 다울이, 할머니까지 생업 놓고 돌보지만 수당 못 받아

중증 자폐성장애아동 다울이는 겨우 열 살이지만 키 147㎝, 몸무게 73㎏의 우량아다. 의사는 아버지 윤지성(41)씨에게 100명 중 첫 손가락에 꼽힐 체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능은 3세 수준이라서 의사소통이 어렵다. 급하면 아무데서나 볼일을 해결해버리기 일쑤다. 윤씨 부부의 힘만으로는 이미 온전히 돌보기가 어려워진 상황. 정부가 보내주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려 해봤지만 허사였다. 답답하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는 아이를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활동지원사 이용자격은 2년간 장롱 속에서 썩다가 사라졌고 장모가 생업을 그만두고 엄마와 함께 아이를 돌본다. 지난달 28일 지성씨가 “직계 가족에게 활동지원사 자격을 허락해달라”는 내용의 국민청원을 청와대에 제출한 까닭이다.

다울이의 최근 모습. 아버지 윤지성씨는 다울이가 기운이 넘쳐서 뛰어다니는 통에 아파트 주민들과 다툼이 벌어져서 다울이가 태어나고 3번이나 이사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윤지성씨 제공
다울이의 최근 모습. 아버지 윤지성씨는 다울이가 기운이 넘쳐서 뛰어다니는 통에 아파트 주민들과 다툼이 벌어져서 다울이가 태어나고 3번이나 이사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윤지성씨 제공

장애인 곁에서 일상생활을 돕는 활동지원사 자격을 직계가족에게도 허락해 달라는 중증 자폐성 장애인 가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4일 오전까지 지성씨의 청원에는 1,300여명이 동참했다. 다른 장애인 부모가 올린 비슷한 청원도 여럿이다. 신상진 자유한국당 의원실은 장애인단체가 수집한 1만명의 서명을 전달받고, 지난달 자폐성장애인에 한해 그 가족도 활동보조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장애인활동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주무부처는 미온적이다.

활동지원 제도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시간을 매달 바우처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다. 활동지원사는 대중교통 이용 시 휠체어 조작부터 식사보조, 배변활동까지 다양한 장애인의 다양한 활동을 돕는다. 과거 가족이 떠맡았던 장애인 부양 부담을 국가가 나눠진다는 제도 취지 때문에 현행법은 장애인의 직계가족은 원칙적으로 활동지원사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도서지역 거주 장애인 등 특수한 상황에 한해 가족에게 자격을 열어뒀을 뿐이다.

그러나 중증 자폐성장애인과 일부 중증 장애인의 가족들은 활동지원사 자격을 직계가족에게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폐성장애인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자해나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활동지원사들은 장애인의 중증도와 상관 없이 시간당 1만원 정도의 수가를 동일하게 지급받는다. 고된 일인 만큼 이왕이면 덜 힘든 이용자를 찾게 된다.

23세 자폐성 장애인 아들을 둔 김희주(50)씨는 “우리 아이처럼 자해행동, 도전적 행동이 있는 아이는 어차피 활동지원사를 구하기가 힘들다”면서 “처음 활동보조인을 구했다가 거절당했을 때 얼마나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화기 너머로 ‘아, 그럼 어렵겠네요’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 최소한 한번은 아이를 보러 오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고교생 자폐성 장애인 아들을 둔 민자영(44)씨는 “매번 아는 사람에게 활동지원사 교육을 이수하고 아이를 맡아주길 부탁해야 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제도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재원 마련도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활동지원사 자격을 어디까지 확대할지 연구용역을 발주한 상태지만 단기간에 직계가족에게 허용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성재경 장애인서비스과장은 “직계가족에게 활동지원사 자격을 허용하면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제도로 성격이 변질돼 버린다”라면서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가족에게 활동지원사 자격을 허용하면 또다시 장애인 부양 부담을 가족에게 지우는 꼴”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장애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저작권 한국일보] 자폐성장에 등록장애인 수.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자폐성장에 등록장애인 수. 송정근 기자

자폐성 장애인의 부모는 현실을 봐 달라고 호소한다. 자폐성장애인 지원단체인 사단법인 밀알천사의 김전승 사회복지사는 “장애아 부모가 복지부에 문의했더니 공무원이 장애아 부모들끼리 만나서 서로 아이를 맡아주는 방식을 귀띔할 정도로 자폐성장애인은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렵다”며 ”중증 자폐성 장애인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최복천 전주대 재활학과 교수는 “치매 환자 가족에게 요양보호사 활동을 허용하는 장기요양보험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중증 장애인 가족에게도 활동지원사가 될 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일부 악성 부정수급자를 우려해서 전체 중증 장애인 가족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기회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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