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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느낌의 쟁투와 평화

입력
2019.07.1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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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효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경기 파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자유의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효진 기자

냄새는 도처에 있다. 의지와 무관하게, 몸은 그들을 맡아야 한다. 몸도 냄새를 만든다. 냄새의 소름을 언어로 만든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인간의 냄새는 “대체로 땀과 기름, 그리고 시큼한 치즈가 섞인 것”이다. 악취로도 불리는 인간적인 냄새일 게다. 인간은 그 냄새와 더불어 “개인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체취”를 가지고 있다. 인간을 개인으로 만드는 암호가 이 체취다. 냄새를 맡을 때, 인간은 그 대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 ‘향수’에는 개별 암호를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몸 밖에서 주입되는 인공 냄새로 가리는데 “급급”한 인간 군상이 그려진다. 안 보고 안 듣고 맛을 안 볼 수 있지만, 안 맡기가 어려운 냄새는,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 원초적 느낌에 가깝다.

인간의 냄새를 덮는 인공 냄새는 좋고 싫고의 느낌을 만들어 낸다. 스스로 뿌리는 향수와 달리 의지와 무관하게 스며드는 비하의 말 냄새는 때론 인간 집단을 구성하는 공통분모가 된다.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의 냄새를 풍기는 우리 또는 그들을 영상으로 잡아낸다. 물론 냄새의 계급투쟁은 부차적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순간에도 반지하보다 아래인 지하의 냄새에 불쾌해하는 그에게 극단적 폭력을 가한 후 반지하의 인간이 가는 길은 스스로 지하로의 유폐다. 반지하의 냄새를 공유하는 가족이 돈을 벌어 그 집을 사는 환상의 장면에서, 그가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하는 이야기인 정치경제학이 사라진 자리를 냄새의 계급투쟁이 지배한다. 사실 불편하면서도 절망적인 영화 ‘기생충’의 골간은, 거기서 거기의 냄새를 가진 반지하 대 지하의 싸움이다. 계급 내 투쟁이라 부를 만한 이 설정은, 잃어버릴 것 없어 같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저 도저한 이야기를 믿는 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강자가 주는 낙수에 의존해야 하는 ‘기생충’의 낙수를 둘러싼 참담한 싸움의 연속이다. 영화 ‘기생충’은 부자와 빈자, 빈자와 빈자가 아니라 서로의 체취를 함께 맡는 평화공존이 어떻게 (불)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바우만이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서 쓴 것처럼, 계급투쟁은 정상이라 생각했던 것들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했을 때 일어나곤 했다. 자신의 배고픔보다 상대에 대한 배아픔이, 지하가 반지하에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불평등을 그 안에 장착한 정상이 비정상이 되는 부정의하다고 느끼는 상황의 도래가,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는 싸움을 격화시키곤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싸움은 불평등 내에서 불평등의 확산을 막는 효과도 발휘했다. 반지하의 냄새를 가졌어도 경쟁에서 승리하면 명품의 향기를 풍길 수 있다는 그 불가능한 믿음이, 불평등을 영구기관으로 만든다는 현재적 해석이 더 울림을 만든다. 냄새와 같은 느낌이야말로 인간을 행동하게 하고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과학이란 허울을 단 고상한 서사를 만드는 실마리임을 느끼게 한다.

2019년 6월 30일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 즈음에서 남북미의 최고지도자가 만나는 순간 바로 전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맞아 보수의 친미와 진보 일부의 반미라는 축적된 기억의 행동을 보면서, 냄새란 느낌을 복기했다. 인조인간으로 간주되는 국가는 전쟁이 발산하는 피의 냄새를 발생부터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더 단순한 냄새를 가진 집합적 행위자다. 따라서 ‘기생충’을 보며 반전의 상상력을 가지려 하는 것 자체가 이론적으로 오류일 수 있다. 국제관계는 인간사회의 불평등보다 더한 위계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평화과정의 한 산물인 작은 국가 남북의 군사분야 합의에 따라 피의 냄새가 가신 공동경비구역이란 공간이 만들어졌기에 가능했던 그날의 연극이, ‘기생충’을 보며 느낀 절망적 미래 속에서도 실낱보다 가는 평화공존의 신호를 발신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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