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심에는 건물마다 커피전문점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하루 한두 번은 커피전문점을 찾게 된다. 그런데 커피전문점이 아무리 늘어도 문득 ‘다방 커피’ 생각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콕 집어 표현하기 쉽지 않지만, 인스턴트 커피만의 독특한 매력이 분명 있다. 커피와 크리머가 미세한 알갱이가 돼 하나하나 물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기까지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수없이 많이 바뀐다. 인스턴트 커피만의 매력은 커피와 크리머의 다양한 특성들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다.

인천 부평구 동서식품 기술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인스턴트 커피 제품의 맛과 향을 테스트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인천=홍윤기 인턴기자
◇로스팅으로 생기는 향 성분 수백가지

대량 생산하는 인스턴트 커피나 소량씩 만들어내는 전문점 커피 모두 처음엔 갓 생산된 커피 원두(생두)에 열을 가해 볶은(로스팅) 다음 잘게 갈아내는(분쇄) 과정을 거친다. 다만 인스턴트 커피를 제조하는 대규모 공장에선 로스팅 방식을 시간이 덜 걸리는 ‘대류식’으로 선택한다. 소규모 전문점이 많이 쓰는 ‘전도식’ 로스팅이 생두의 겉과 속을 균일하게 익히는 것과 달리 대류식으로 로스팅하면 생두의 겉 부분이 안쪽보다 상대적으로 더 익는다. 그래서 대류식으로 로스팅한 원두의 향이 더 다양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생두는 원래 향이 거의 없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커피 향은 로스팅 중에 만들어진다. 생두에 들어 있는 향 전구체 물질들과 다양한 당, 아미노산이 열을 받으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수많은 향 성분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전구체는 잇따라 일어나는 화학반응에서 생성물이 만들어지기 위해 필요한 전 단계 물질을 뜻한다. 커피에서 만들어지는 향 성분은 간단한 분석기기로 측정되는 것만 꼽아도 300~400가지에 이른다. 워낙 양이 적어 기기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예민한 사람 코로는 감지되는 향 성분도 적지 않다.

로스팅을 마친 원두는 분쇄기에 들어간다. 마치 연필깎기 내부처럼 칼날이 달린 채 돌아가는 롤이 양쪽에 맞물려 있고 그 사이로 원두가 들어가 갈린다. 롤을 몇 단계 거치느냐에 따라 갈려 나오는 입자의 크기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커피전문점에서 쓰는 에스프레소 기계에 들어가는 원두커피 가루 입자의 직경은 0.3~0.4㎜ 정도다. 커피 메이커에 넣고 직접 내려 마시는 가루는 0.7~0.8㎜다. 인스턴트 커피는 이보다 크다. 입자 크기만큼 얼마나 균일하게 분쇄하느냐도 중요하다. 입자 크기가 들쭉날쭉하면 이후 추출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주 미세한 입자(미분)가 많아도 문제다. 미분은 추출기 내부 압력을 상승시켜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후 가루로 만든 원두를 커다란 추출기에 넣고 물을 부어 커피액을 뽑아낸다. 이때 추출기 내부에 보통 10기압 정도 압력을 걸어준다. 이렇게 압력을 받은 추출기 내부에선 물 온도가 100도 이상 올라간다. 추출액을 대량으로 얻을 필요가 없는 소규모 전문점에선 추출 압력과 온도가 대개 이보다 낮다.

추출하는 온도와 시간은 수율을 좌우하고, 수율은 인스턴트 커피의 용해도에 영향을 미친다. 고온으로 한번에 다량을 추출할수록 저온으로 소량 추출할 때보다 원두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 성분이 더 많이 분해돼 나온다. 여러 가지 당 분자가 마치 사슬처럼 길게 연결돼 있는 구조인 탄수화물은 온도가 높아지면 사슬의 중간중간이 끊어진다. 그러면 추출액의 양이 많아지지만, 탄수화물이 이리저리 쪼개지면서 불필요한 성분이 만들어져 커피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추출할 때 넣는 물도 커피 맛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pH(수소이온농도지수)가 높은 알칼리성 물로 추출하면 커피에 있던 신맛이 줄어든다. 산성이 중화되는 것이다. 원두에는 유기산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서 추출 후 커피액은 pH가 대개 5 정도인 산성이다. 인스턴트 커피를 제조하기 위해 추출액을 대량 만들어야 하는 공정에선 이온 성분이 적은 물을 넣는다. 물에 이온이 많으면 공정 운영이 까다롭고 추출 수율도 떨어질 수 있다.

커피 원두에 열을 가해 볶는 로스팅 과정. 동서식품 제공
◇원액의 향 보존이 품질의 관건

커피 추출액을 얻은 다음엔 열을 가해 농축해야 한다. 이때부터 커피의 향 성분을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가 최종 품질을 좌우한다.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가열하더라도 일단 열을 가하기 시작하면 향 성분은 쉽게 날아갈 수 있다. 이에 인스턴트 커피 제조사들은 농축 과정 중 향 성분을 보존하기 위한 자체 기술을 개발해왔다.

예를 들어 동서식품은 가열해 농축하는 방식 이외에 얼려 농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추출액의 온도를 0도보다 낮게 내리는 것이다. 그러면 추출액 속 물은 얼지만 커피 성분은 얼지 않는다. 이때 얼음만 선별해 제거하면 다른 부분은 농축된 채로 남게 된다. 이 같은 동결 농축 기술은 끓여서 농축하는 일반적인 방법보다 공정 운영도 어렵고 전기와 시간 소모도 많지만, 커피 원액의 향을 거의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고 동서식품 측은 설명했다.

다음 단계로 농축액을 건조시킬 때는 냉동과 분무 방식이 쓰인다. 농축액을 단계적으로 얼린 다음 커피믹스에 들어 있는 커피 알갱이만한 크기로 잘라 진공을 걸어주는 방법이 냉동 건조다. 얼어 있는 커피 알갱이가 진공 환경에 놓이면 그 안에 들어 있던 물이 승화한다. 고체였던 물이 순간적으로 기체로 변해 날아간다는 얘기다. 그럼 커피 알갱이 내부에 물이 차지하고 있던 공간은 남은 채 전체적인 형태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 공간은 커피 알갱이에 물을 탔을 때 더 잘 녹게 도와준다. 이와 달리 분무 건조는 커피 농축액을 가는 노즐로 통과시켜 스프레이처럼 분사하면서 동시에 200도에 가까운 뜨거운 바람을 가하는 방식이다. 이때 순간적으로 수분은 사라지고 고형분만 남는다.

인스턴트 커피 제조 공정에선 보통 건조하기 직전 커피 농축액에 가스(이산화탄소)를 주입한다. 이렇게 내부에 빈 공간을 만들어 밀도를 낮추면 물에 훨씬 잘 녹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 제조사들이 제품 안에 공기를 넣어 부피를 키우고 밀도를 낮추는 것과 비슷하다. 건조 후 얻은 커피 알갱이들을 크리머, 설탕과 함께 포장재에 넣고 밀봉한 게 흔히 우리가 보는 커피믹스 제품이다.

인천 부평구 동서식품 공장에서 한 직원이 냉동 중인 커피 추출액을 살펴보고 있다. 동서식품 제공
인천 부평구 동서식품 공장에서 커피믹스 스틱 봉지가 밀봉되고 있다. 동서식품 제공
인천 부평구 동서식품 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인스턴트 커피 제품의 맛과 향을 테스트하고 있다. 인천=홍윤기 인턴기자
◇크리머와 포장재도 기술 집약

커피믹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크리머에도 인스턴트 커피 제조사들의 기술이 집약돼 있다. 크리머의 주요 성분은 대개 코코넛오일, 올리고당 또는 물엿, 우유단백질이다. 이들 세 가지 성분이 크리머의 약 95%를 차지한다. 우유단백질은 지방과 당 성분을 서로 잘 섞이게 만드는 유화제 역할을 하고, 커피의 pH도 중화시키며 맛을 부드럽게 만든다. pH가 대개 5 전후의 약산성인 인스턴트 커피에 크리머를 섞으면 pH 6~7의 중성이 된다.

찬물에도 잘 녹는 인스턴트 커피에 들어가는 크리머는 좀 다르다. 코코넛오일 대신 해바라기유나 포도씨유, 카놀라유 등을 사용해 만든다. 이들 원료의 차이는 상온에서 고체로 존재하느냐, 액체로 존재하느냐다. 상온에서 고체로 존재하는 코코넛오일로 만든 크리머는 찬물에 잘 녹지 않는다.

오랫동안 품질 변화 없이 보존해야 하는 인스턴트 커피는 포장재 역시 중요하다. 커피믹스 스틱 봉지는 얇아 보여도 실은 여러 겹이다. 내용물과 접촉하는 가장 안쪽 층은 공기가 새어 들어가는 부분 없이 제대로 밀봉되도록 하는 특수 소재로 만든다. 중간 층은 외부의 산소나 수분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차단해 품질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가장 바깥 층은 제품을 보호하면서도 디자인을 자유롭게 인쇄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한다. 이렇게 겹쳐 만든 포장재 일부분에 레이저로 살짝 흠을 내주면 가위로 자르는 듯 깔끔하고 편하게 봉지를 뜯을 수 있다.

김태환 동서식품 연구소 차장은 “커피는 기호식품이라 마시는 사람마다 선호도가 천차만별”이라며 “인스턴트 커피 제조 기술은 대중적인 맛을 구현하면서도 커피 본연의 향과 높은 품질을 잃지 않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설명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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