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와 전북 남원을 있는 4㎞의 천마터널. 졸음방지를 위한 3개의 무지개 빛 조명이 설치돼 있다. 류효진 기자

내가 결혼하던 시절만 해도 봄과 가을이 되면 ‘청첩장 때문에 못살겠다’는 기사가 난무했다. 나는 청첩장을 돌리면서 ‘언젠가는 내게도 축의금 때문에 힘든 날이 오겠구나’라고 지레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오지 않았다. 청첩장을 가져오면 정말로 축하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돌 반지 마련하느라 등골 휜다는 말도 있었다. 웬걸 지난 20년간 돌잔치 초대 받아본 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대신 나이가 들수록 부고 받는 횟수가 늘어난다. 부모상뿐만 아니라 본인상도 많다. 문상을 가면 어떤 이유로 돌아가셨는지 예의상 묻는다. 굳이 통계를 동원하지 않아도 한국인의 사망원인 부동의 1위는 암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진국과 비교하면 암 사망률은 가장 낮은 수준이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보다 암 사망률이 낮은 나라는 멕시코뿐이다.

반면 교통사고 사망률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 훨씬 높다. 1991년에는 1만3,429명이었던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2018년에는 3,781명으로 줄어드는 엄청난 변화가 생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동차 사고라고 하면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의외로 40%는 보행자며, 오토바이 운전자가 20%, 자전거 탑승자가 6%였다.

물론 대부분의 사고는 자동차가 낸다. 운전자는 어쩌다가 사망 사고를 낼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음주운전이다. 하지만 2018년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에 이른 사람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9%에 불과한 346명이었다. 하루에 한 명 정도다. 지난 6월 25일 일명 ‘제2 윤창호법’이 시행됨에 따라 이젠 술을 한 잔만 마셔도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는 의식이 널리 퍼지면서 음주운전 사고는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젠 나머지 91%의 교통사고 사망원인을 잡을 때다. 그게 뭘까? 미국 통계에 따르면 졸음운전으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가 음주와 약물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수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졸음운전이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

운전하다가 완전히 잠드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미세수면에 빠진다. 미세수면은 겨우 몇 초간 지속되는 졸음형태로 자연에서는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모든 동물은 잠을 잔다. 새들도 잠을 잔다. 그런데 대양을 건너야 하는 철새들이 푹 잠이 들면 추락사한다. 새들은 고래처럼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교대로 잠을 자면서 대양을 건넌다. 비행할 때 몇 초간 지속되는 짧은 잠에 빠지기도 한다. 괜찮다. 하늘에는 충돌할 대상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운전자가 미세수면에 빠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눈꺼풀이 감긴다. 이제 졸음운전은 음주운전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음주운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첫째,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것이고 둘째, 반응이 느리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늦게 밟는다. 회피운전을 하는 데도 늦다. 음주운전자는 흐린 판단으로 늦게 반응하지만 뭔가를 한다. 그런데 졸음운전자는 다르다. 느린 게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판단을 하지 않고 반응을 멈춘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핸들을 돌리지 않는다.

졸음운전자의 뇌는 바깥 세계와 단절된다. 그 단절이 단 2초만 지속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굽은 도로에서 시속 50㎞로 달리고 있었다면 2초면 옆 차선으로 완전히 넘어간다. 넘어간 차선이 반대 방향 차선일 수도 있다. 시속 100㎞로 달리다가 2초간 미세수면에 빠진다면 아마 그의 마지막 운전이 될 것이다.

버스와 트럭 운전사는 최고의 운전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등록 자동차 가운데 버스와 트럭은 16%. 그런데 버스와 트럭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738명으로 20%에 이른다. 이건 뭘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피곤하다. 잠이 부족하다.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운전하다가 졸음이 오면 우리는 온갖 근거 불명의 방법을 동원한다. 창문을 열고 찬바람을 쐰다. 전화 통화를 하고, 껌이나 오징어를 씹는다. 허벅지를 꼬집고 뺨을 때린다. 캔 커피를 마신다.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운전을 멈추고 잠을 자야 한다. 고속도로에 졸음쉼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음주운전을 얕잡아 볼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음주운전이 박격포라면 졸음운전은 미사일이다. 고속도로에서 졸면서 운전한다는 것은 1톤짜리 미사일이 시속 100㎞로 날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운전하는 차가 미사일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차가 정면에서 내게로 미사일이 되어 날아올 수도 있다.

나는 자연사하고 싶지 않다. 야생동물처럼 굶어죽거나 잡아먹혀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사고로 죽고 싶지도 않다. 나는 병으로 죽고 싶다. 그게 남은 가족과 친구에게 심리적인 부담을 지우지 않고 우리가 죽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다.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서도 문재인 케어는 더욱 확대 되어야 한다.

졸음운전을 막는 유일한 처방은 잠뿐이다. 운전하다 졸리면 제발 자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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