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10> 남양주 니코틴 살인사건
1세대 법의학자 이정빈 교수가 밝혀내
2016년 발생한 ‘남양주 니코틴 살인사건’은 무척 까다로운 사건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망원인을 ‘니코틴 중독’이라 밝혔지만, 니코틴과 관련된 직접 증거는 나온 게 없었다. 법조계에선 ‘무죄 확률 50%’란 말이 나돌았다. 여기에다 그 역한 니코틴을 원액 그대로 들이 마셨다면 다 토해내거나 해야 하는데, 그런 흔적도 없었다는 게 피고인측 변호인의 주장 중 하나였다.
이 때 이 사건 입증을 도와달라고 부탁받은 사람이 이정빈(73)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였다. 이한열 사건, 5ㆍ18민주화운동 사망자 사건 등에 참여했던 이 교수는 대한법의학학회장을 역임한 1세대 법의학자다. 니코틴이니까 몸에 해롭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얘기가 아니라, 니코틴 원액의 정말 살인도구로 쓰였는지 밝혀야 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개를 대상으로 니코틴의 유독성을 검증했다. 저농도의 니코틴을 먹었을 때는 개도 단지 구토 증세만 보였다. 하지만 고농도의 니코틴을 투입하자 개는 2~3분 새 경련을 일으키며 바로 사망했다. 고농도의 니코틴을 먹였을 경우 구토 같은 거부 증상 없이도 바로 사망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어 사망 후 시간 경과에 따라 니코틴 농도가 달라진다는 ‘재분포 현상’을 관찰, 이를 근거로 역산해보면 사망 당시 피해자의 혈액 내 니코틴 농도가 ℓ당 7.58㎎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했다. 이는 니코틴 치사농도로 학계에 보고된 ℓ당 3.7~5800㎎ 범위 안에 포함되는 수치다. 2심 재판부는 이러한 이 교수의 분석을 받아들여 “부검감정서상 부검의의 판단이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는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니코틴 원액이 정말 구토를 유발할 정도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물 1ℓ에다 니코틴 원액 13㎖를 탄 뒤 이쑤시개 끝에 ‘콕’ 찍어다 혀에 갖다 댔다. 살짝 갖다 댔을 뿐인데도 강한 자극이 느껴졌다. 니코틴에 닿은 혀는 타는 듯 했고 침이 줄줄 흐르며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감정 결과에 대해 “니코틴 원액은 구토 현상 때문에 살인 도구가 될 수 없다는 통념을 바꿨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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