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508 GT와 함께 제주 항몽유적지를 찾았

푸조 508 GT와 함께 제주도의 자연과 도로를 즐기기는 와중 문득 ‘가봐야 할 곳’이 떠올랐다.

바로 애월 고성리에 위치한 ‘항몽유적지’가 바로 그 곳이다. 과거부터 몇 차례 제주도를 방문하고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가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정이 허락된 만큼 곧바로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설정하고, 항몽유적지로 달리기 시작했다.

매력적인 달리기 성능, 푸조 508 GT

푸조 508 GT의 매력은 바로 달리기 성능에 있다. 177마력과 40.8kg.m의 토크를 내는 2.0L블루HDi 디젤 엔진은 물론이고 다단화된 변속기, 그리고 전륜구동의 레이아웃을 지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드라이빙을 연출하는 핸들링 재미와 서스펜션의 셋업을 통해 더욱 높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푸조의 달리기 성능이 더욱 돋보이는 건 역시 푸조 508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에 있을 것이다. 실제 푸조 508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도로 환경이, 제주도와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푸조 508 GT의 스티어링 휠과 핸들링에 대한 셋업, 서스펜션의 조율 능력 등 다양한 부분에 있어서 마치 제주도의 도로를 감안해 개발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푸조 508 GT로 제주도를 달리는 것이 그 만큼 즐거울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푸조 508 GT의 매력 중 하나는 역시 패스트백 레이아웃에서 나오는 넉넉한 공간에 있다. 실제 푸조 508 GT의 해치를 열면 약 487L의 적재 공간을 갖췄고, 또 2열 시트를 접었을 때에는 1,537L에 이르는 공간을 갖췄으니 그 만족감이 더욱 높을 수 밖에 없다.

실제 이번 제주 일정에서 여행용 캐리어 하나와 큼직한 백팩을 적재하고도 아주 넉넉한 여유를 확인할 수 있어 그 만족감이 상당했다.

많은 이들이 찾는 제주 항몽유적지

그렇게 한참을 달린 후 제주 항몽유적지에 도착하게 됐다. 유적지 앞에 마련된 주차장에는 휴게소까지 마련되어 있어 이 곳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푸조 508 GT를 한켠에 주차한 후 카메라를 들고 제주 항몽유적지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삼별초, 그리고 고려의 혼을 담은 공간

시간을 돌려, 1231년을 되돌아 보면 30년에 걸쳐 몽고의 일곱 번의 고려 침공이 이어진다. 그로 인해 고려, 즉 한반도는 말 그대로 초토화 되었으며 과거부터 쌓아 올려진 화려하고, 그리고 독특한 문화와 문화재들이 대거 파괴, 소실되는 악몽과 같은 일을 겪게 됐다.

몽고의 침략이 계속 이어지자 고려 원종은 원종 11년 2월(1270년)에 몽고와의 강화를 맺지만 원과의 강화를 거부하고, 저항한 세력이 있었다. 승화후온을 임금으로 추대한 삼별초는 배중손의 지휘로 전라도에서 저항하고, 그리고 배중손의 전사와 승화후온의 피살 후에는 김통정이 삼별초를 이끌고 제주로 거점을 옮겨 새로운 전투를 준비하게 됐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거점이자 몽고에 대한 저항의 보루가 바로 항몽유적지가 자리한 ‘항파두리 토성’이다.

참고로 항파두리 토성은 길이 6km에 이르며 김통정의 지휘 아래 몽고에 대한 꾸준한 기습 공격을 통해 저항을 이어갔다. 그러나 원종 14년 4월 고려의 김방경 장군과 몽고의 원수 혼도를 총수로 한 13,000여명의 여몽 연합군이 함덕포와 비양도에 상륙해 전투를 치렀고, 삼별초의 10배에 달하는 상륙부대를 감당하지 못하고 항파두성의 빗장이 열렸다.

항파두성은 토성으로서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다고 한다. 성 상단 높이는 4~5m, 성너비 는 ~ 4m로서 성 안쪽은 계단식으로 마련해 방어를 용이하도록 했으며 돌로 만들어진 기반 위에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다짐 기법으로 견고한 성벽을 구성했다.

한편 유적지 안에는 몽고에 저항하고, 고려를 지키고자 했던 삼별초군을 기리기 위해서 항몽순의비가 자리한다.

또한 유적지 내에서 발굴된 다양한 흔적들을 전시해둔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유적지를 찾은 이들에게 고려와 삼별초의 저항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삼별초군이 궁술 연습시 과녁으로 사용했던 '살맞은 돌'과 '돌쩌귀', '김통정장군이 성에서 뛰어내린 발자욱이 패여서 사시사철 샘이 솟는 장수물' 등이 당시의 모습을 더욱 생생히 전달한다.

참고로 항파두성이 함락된 후 삼별초의 잔여 병사 70여명이 인근에 있는 '붉은 오름’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마지막 혈전을 벌였고 그 자리에서 모두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으며 김통정 또한 도주 후 한라산 숲 속에서 자결을 택했다.

빠지지 않는 관광지

제주 항몽유적지는 역사적인 의미,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지만 이제 제주를 찾는 관람객들에게는 빠지지 않는 관광지가 됐다. 항몽유적지라는 특별함도 있겠지만 꽃들이 한껏 피어난 공원과 같은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의 일정에서도 많은 연인들과 가족들이 현장을 찾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한편 항몽유적지에서는 역사탐방을 비롯해 역사문화장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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