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4일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노력 의무와 관련한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앞서 EU는 지난해 말 한국 정부가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ILO 핵심협약 비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 간 협의를 요청했다. 이후 3개월에 걸쳐 협상이 진행됐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EU가 다음 단계인 분쟁 해소 절차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 패널은 90일 간 양쪽 정부와 국제기구 등의 의견을 들어 권고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다.
보고서는 오래전부터 노동의 국제 기준인 ILO 핵심협약을 한국이 서둘러 비준하고 이에 맞추어 관련 국내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을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가 나오더라도 이를 근거로 EU가 직접적인 무역 제재에 나설 수는 없지만 통관 강화 등 비관세 제재를 발동할 수는 있다. EU가 FTA를 체결한 70여개 국가 가운데 노동 조항 미이행을 이유로 전문가 패널까지 소집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국격에 걸맞지 않은 ‘노동 후진국’의 불명예와 치욕을 안게 될 상황인 셈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에 소극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 대화를 거쳐 비준한다는 원칙에 따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협의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해 국회로 논의가 넘어간 상태다. 경사노위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 대표와 공익위원은 비준이 당연하다는 의견이었으나 사용자 측이 적지 않은 거부감을 표시해 난항을 겪었다.
문제는 해결의 열쇠를 쥔 국회에서 비준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여야 정쟁으로 국회 일정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데다 이 사안에 대해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매우 부정적이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와 관련법 개정 작업에 적극 나서겠다고 발표하자 한국당은 경사노위 미합의 등의 이유를 대며 정부를 비난했다. 게다가 국회 비준을 위한 첫 관문인 환경노동위원장은 한국당이 맡고 있다. ILO 핵심협약 국회 비준 동의에 비관적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미중 무역 갈등에다 일본의 경제보복 등으로 가뜩이나 대외 경제 환경이 어려운데 EU와 통상 갈등까지 자초해서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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