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버블경제의 광기: 튤립 버블과 비트코인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얀 브뤼헐 ‘튤립 광풍의 풍자화’(1640년경), 네덜란드 프란스할스미술관, 31㎝×49㎝

최근 비트코인 가격 동향이 심상치 않다. 2017년 초만 해도 100만원을 넘지 않던 비트코인 가격은 불과 1년 만에 2,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은 비트코인은 일확천금의 투자 기회로 여기게 되었다. 당국이 제재를 가할 조짐을 보이자 시장가격은 급락하더니 1년 후에는 3분의 1 토막이 났는데 최근에 다시 1,300만원대를 회복한 것이다.

◇쉼없이 되풀이되는 버블경제

2009년 탄생한 비트코인은 그 이듬해인 2010년에는 1비트코인이 단돈 5센트밖에 값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18년 초에는 무려 2만달러에 달할 정도가 되자 너도나도 비트코인 투자에 열광하게 되었다. 그 후 거품이 꺼지면서 가격이 폭락하였는데 지금은 점차 회복하여 현재는 1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불과 9년 전인 2010년에 5센트짜리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가격이 무려 20만 배나 뛰었으니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가격이 폭등한 셈이다.

20세기 최악의 거품은 1980년대 중후반 일본의 자산 버블이다. 1989년 일본 자산 거품이 절정에 달했을 때 도쿄의 부동산 가치는 미국 전체 부동산 가격보다 높아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1991년 거품이 붕괴될 때 무려 1,500조엔의 자산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소비 심리가 위축됐고 결국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으로 통칭되는 급격한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그런데 이런 버블경제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서 언급되는 역사적 경험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위 ‘튤립 버블’이라고 불리는 사례다. 1630년대 중반에는 네덜란드에서 튤립 한 뿌리의 가격은 약 3,000길더까지 뛰었는데 지금 가격으로 환산해 보면 대략 9만유로 정도, 한화로는 1억2,000만원에 달한다. 당시 네덜란드 가정의 1년 생활비가 300길더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튤립 버블이 얼마나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는지 짐작이 된다.

1636년 말까지 튤립가격은 급등하였는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를 때는 한 달 만에도 20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637년 초에 접어들면서 불과 3개월 만에 시세가 100분의 1로 추락하였다. 이것이 바로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사실상 세계 최초의 거품경제 현상이다.

◇무분별한 소비와 대출이 빚은 거품

17세기에 접어들면서 플랑드르 지방은 유럽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상업과 물류가 활발하게 늘어나게 되고 상인들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초상화를 주문하거나 정원을 가꾸어 그들의 부를 과시하려고 했다. 튤립에 대한 수요도 처음에는 이러한 과시적 소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튤립은 귀한 꽃이자 부의 상징이었고, 희귀한 튤립을 보유한 사람일수록 부자로 인식됐다.

1630년대에 들어서자 줄무늬 튤립의 가격은 치솟기 시작했다. 왜 가격이 급등했던 것일까? 시장의 논리로 말하자면 공급은 적은데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시장에 팽배하게 되자 부유한 상인계급은 물론 일반 서민들까지 튤립 구입에 열을 올리고 시장은 튤립 열기로 가득차게 되었다. 상업이 번성했던 네덜란드에서는 대부업과 같은 금융거래가 활발했기 때문에 이 또한 튤립 버블이 커지는데 일조하였다. 그 당시에도 투자에는 이러한 대부업체들의 대출 권유가 있게 마련이고 이를 통해서 사채업자들은 뒷돈을 엄청나게 챙겼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튤립 가격은 폭락했고 시장에서는 투매가 일어나면서 또 다른 광풍에 시달리게 되었다. 튤립을 키우던 사람들은 더 이상 재배를 하지 않게 되고 튤립은 땅에서 썩어갔다. 또한 너도나도 뒤늦게 튤립 열풍에 동참했던 투자가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고 말았다. 오늘날 주식시장에서도 개미군단이 몰려올 때는 이미 시장이 과열되어 버블이 꺼지기 직전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튤립 버블을 본격적인 주제로 다룬 영화가 2017년에 출시된 것이 바로 ‘튤립 피버(Tulip Fever)’다. 이 영화에는 부유한 상인의 아내와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가난한 화가 얀(Jan)이 등장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튤립 버블의 광기 속에서 일확천금을 꿈꾸게 되고 이를 이용해서 그들만의 행운과 자유를 누리려다가 가격 폭락으로 실패하고 만다. 튤립의 구근(球根)의 모양은 양파와 비슷하게 생겨서 혼동하기 쉬운데 영화엔 주인공이 애지중지하는 튤립 구근을 술에 취한 하인이 양파로 착각하여 먹어버리는 황당하고도 재밌는 장면이 들어있다. 실제 당시에도 양파를 튤립 구근으로 속여 소비자들에게 파는 몰염치한 상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화가는 바로 얀 반 호이엔(Jan Van Goyen)인데, 그는 튤립 열풍이 불자 본업인 그림보다 튤립 투기에 열중했는데 가격 거품이 빠지자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호이엔은 그림과 데생을 2,000여 점 그려서 겨우 갚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튤립에 안달복달하는 원숭이들

튤립 열기에 휩싸인 세태를 적나라하게 풍자한 그림은 플랑드르 화파의 대표적인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아들인 얀 브뤼헐(Jan Brueghel the Younger, 1601~1678)이 1640년경에 그린 ‘튤립 광풍의 풍자화’(A Satire of Tulip Mania)이다.

그림은 튤립 광풍 속에 비이성적 투기 행위를 한 사람들을 원숭이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왼쪽 부분에는 튤립 가격이 급등하면서 희희낙락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오른쪽 부분에는 버블이 꺼지면서 낭패를 본 사람들의 패닉 상황을 그리고 있다.

왼쪽 상단 저택의 발코니에는 부자가 된 원숭이들이 테이블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다. 앞쪽 하단의 한 원숭이는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족 신분으로 보이는데 튤립 가격의 목록이 적혀있을 듯한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다. 가운데 한 원숭이는 튤립 한 뿌리를 자랑스럽게 들고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반면에 그림 오른쪽에는 패닉 상태에 빠진 원숭이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맨 오른쪽 하단의 원숭이는 가격이 폭락한 붉은 줄무늬 튤립을 땅바닥에 버린 채 오줌을 깔기고 있다. 그 위에는 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고 있는 원숭이들이 보인다. 또한 그림 위쪽 멀리에는 검은 옷을 입은 무리도 있는데 아마도 투자에 실패하여 목숨을 끊은 원숭이의 장례 행렬처럼 보인다.

당시 튤립은 부유층으로 신분 상승하는 지름길이었다. 뒤늦게 높은 가격에 튤립을 사들이며 투기 대열에 동참했다가 가격 폭락에 좌절한 수많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투자자들은 장밋빛 전망에 가득차서 밝은 미래가 올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지금의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거품의 비극은 꺼져야만 안다는 것

2010년에 나온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는 2008년 월스트리트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는 자신을 찾아온 딸의 남자친구에게 금융시장에 대한 이야기로 튤립 버블의 예를 드는 장면이 나온다. 맨해튼 이스트리버가 내려다보이는 그의 고급 아파트 벽에는 튤립 가격의 그래프를 붙여놓았다. “버블 스토리의 시작은 1600년대의 네덜란드에서 비롯되었지. 튤립 한 뿌리의 가치가 암스테르담의 강변의 아름다운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정도였는데 이것이 바로 튤립마니아(tulipmania) 열풍이지. 그런 튤립 가격도 버블이 꺼지자 두 뿌리의 가격이 10달러로 하락해 버렸다네.”

오늘날에도 주가가 오르고 집값이 오를 때는 사회가 전반적으로 흥분 상태가 되는데 그 때는 이미 시장이 과열되어 버블이 꺼지기 직전인 셈이다. 영화에서 마이클 더글러스는 외친다. “인간의 탐욕은 좋은 것(Greed is good)”이라고. 거품의 형성과 몰락은 언제나 그러한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거품의 진짜 비극은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이 거품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18세기 초반 보물선을 인양하는 회사에 투자했다가 2만 파운드를 잃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고.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