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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조응하지 못하는 복지는 축복이 아닌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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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조응하지 못하는 복지는 축복이 아닌 불행”

입력
2019.07.02 17:44
수정
2019.07.02 18:2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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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 출간한 윤홍식 교수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을 펴낸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25일 서울 흑석동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윤주 기자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을 펴낸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25일 서울 흑석동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윤주 기자

한국에서 복지국가는 현실이 아닌 이상이다. 역대 정부마다 복지 확대를 내걸고 각종 정책을 쏟아냈지만 국민들의 체감도는 낮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정부는 ‘보편이냐, 선별이냐’를 따지고 ‘증세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줄다리기만 벌이고 있다. 복지국가에 대한 갈망은 갈수록 커지는데 왜 복지 담론은 제자리를 맴도는 것일까.

지난달 25일 서울 흑석동 자택에서 만난 윤홍식(52)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복지 제도와 시대상의 ‘불일치’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복지는 단순히 제도 하나 도입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 사회의 정치ㆍ경제 체제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해 몸에 맞는 옷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국은 서구에서 성공한 제도를 이식하는데 만 급급했다. 한국 복지 체계가 한국 사회의 취약함을 손대지 못하고 겉도는 이유다. 윤 교수가 7년의 작업 끝에 최근 출간한 ‘한국 복지국가의 기원과 궤적(3권)’은 한국의 복지 제도와 한국 사회의 불일치를 추적하고, 한국형 복지국가의 방향성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은 “한국 사회과학계에 기념비적 책 중에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연구의 시작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2010년 보편적 무상급식 논쟁이 불 붙었다. 진보 개혁 진영 입장에선 한국을 ‘복지국가’로 발돋움 시킬 다시 없는 기회였다. 윤 교수 역시 한 달에 30차례 강연을 돌아다니며 ‘왜 한국이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역설했다. 그러나 강연 내용은 죄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머물렀다. 14세기 영국의 노동자 조례까지 읊으면서 열변을 토했지만 정작 한국의 복지가 걸어온 길에 대해선 할말이 없었다. 한국도 각종 제도가 있었지만 ‘한국형 복지 정책’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윤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서구에서 들여온 복지 정책을 한국의 정치와 경제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복지는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했거나 오히려 역행했다. 김대중정부 시절의 복지정책이 대표적이다. 당시 복지 정책의 핵심은 사회보험 확대였다.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기여금으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지를 보장하는 데 최적화된 제도였다. 문제는 IMF 사태 이후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영세자영업자가 급속히 늘어났다는 점이다. 소득이 적고 불안정한 이들에게 국가의 사회안전망은 작동되지 않았다. 공적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오히려 소외되는 모순이 시작된 것이다. 윤 교수는 이를 “역진적 선별주의”라고 불렀다.

윤 교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복지 분야 사회 지출 중 70~80%가 사회보험에 할당된다. 20~30%는 아동수당, 기초연금이다. 취약계층에게 돌아가는 몫은 매우 미미하다. 그는 “복지를 확대하고 보편성을 넓혀 갈수록 사회보험에 가입한 ‘이너 서클’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더 커지는 역설적 상황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재인정부의 복지정책은 어떻게 보고 있나 물었다. 윤 교수는 “정치와 경제, 복지를 엮어 고민한 혁신적 포용국가는 방향을 잘 잡았다고 본다”면서도 최저임금 정책에 대해선 보완을 주문했다. 최저임금만 올리고, 구조조정이 되는 일자리와 사업체를 대체할 산업 구조 정책이 담보되지 못하니 부작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이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선 복지 제도 하나만 손 보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산업 구조 변화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을 육성해 소득과 고용이 보장된 안정된 일자리를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새롭게 부상하는 복지 수요에도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도 관건이다. 예컨대 스웨덴은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택배 노동자, 대리기사 등 임시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국가에서 국민보험료를 대신 내준다. “시대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복지는 축복이 아닌 불행입니다. 증세 논의보다 더 시급한 건 한국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복지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입니다.” 한국형 복지국가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란 설명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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