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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시진핑 주석의 카운터펀치

입력
2019.07.02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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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수사(修辭)의 커튼으로 가려진 외교무대에서 벌어지는 정상 간 담판의 승패를 단적으로 확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줄로 요약되는 성명에 의존한 보도문을 읽는 정도로 협상 테이블 아래에서 ‘누가 누구의 발을 밟았는지’ 단언하기는 때론 위험하고 혹은 경솔하다. 하지만 지난달 20일부터 30일까지 열흘 여 동안 평양, 오사카(大阪), 그리고 비무장지대(DMZ)에서 미국과 중국이 벌인 힘겨루기의 점수표를 읽어내기는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눈길을 끌려는 리얼리티 쇼란 평가를 받긴 했지만, 정전 이후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의 타이틀을 따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는 그야말로 괄목할 만했다. 정적들은 ‘역대급 쇼맨’이라며 눈을 흘겼지만, 부동자세를 유지해온 북미협상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성과다.

이에 반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이를 지렛대 삼아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 평양으로 달려갔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모양새는 주도적이거나 싸움꾼의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이래 남북미로 굳어진 한반도 비핵화 협상 구도를 깨고, 중국의 자리를 어떻게든 만들어 세계의 피스메이커로 서려는 시 주석은 경쟁자에 밀리는 모습이었다. 한반도 비핵화의 수레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에서 방향을 잡고, 시 주석의 이미지는 김 위원장의 의중을 미국에 전달하는 메신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6월 29일 오사카. 두 스트롱맨 중 누구의 발이 밟혔는지는 확실해진 듯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인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던 이날 오전, 세계는 무역전쟁의 향배를 놓고 접전을 벌일 오사카의 미중 정상을 지켜보던 중 별안간 터져 나온 트럼프 트위터발 뉴스에 눈길을 한반도로 일제히 돌렸다. 미국의 추가관세, 화웨이 제재에 맞서 어떻게든 G2의 위상을 지탱하려던 시 주석은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 난처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 주석은 분명 2년 3개월 전 트럼프 대통령을 플로리다주 마라라고에서 마주했을 당시를 떠올렸으리라. 2017년 4월 6일. 외손주들을 동원해 중국의 국민가요 ‘모리화’를 시 주석 부부에게 헌사하며 미소 지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리아를 향해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려 정상회담의 주도권을 낚아챘다. 국제사회는 2017년, 2019년 두 번의 만남에서 모두 시 주석보다 트럼프 대통령을 더 강하게 인지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간을 보낸 미중 정상의 2019년 6월 말에 대한 복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득점’으로 마무리해도 될까. 오사카 미중 정상회담을 치르고서 화웨이 제재 해소 없이 누구나 예상했던 미국의 추가관세 부과 중지만을 얻고 돌아선 시 주석은 과연 공격포인트를 따지 못한 것일까.

예단은 금물이다. 홍콩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담판을 벌이고 악수를 나누는 동안 남중국해에선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중국의 대규모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었다.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이 성과를 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정치보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 건넨 선물이 더 큰 위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시 주석이 2012년 최고 지도자 선출 후 첫 대외 행사에서 드러낸 ‘중국몽’의 핵심은 미국을 누르고 제1 패권국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야망이다. 중국몽 실현의 첫 번째 목표인 소강 사회 완성의 시한(2021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시 주석의 카운터펀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그것에 비해 약해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양홍주 국제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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