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에 둘러싸인 한국의 엄중한 현실
조선 말기처럼 국가는 무력하지 않아도
그때의 트라우마에 불안과 답답함 커져
도널드 트럼프(왼쪽부터)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8일 주요국 (G20) 정상회의장에 나란히 앉아 있다. 연합뉴스

‘19세기 말 유사 증후군’이라 부를 수 있는 심리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내부적으로 혼란이 심하고 강대국들에게 시달리던 당시 상황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며 답답함과 불안 등이 쌓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답답함에 시달리지만, 상대적으로 보수 쪽에서 더 정부 탓을 하며 위기론을 고조시키고 있다. 심지어 나라가 망하는 와중에 무능했던 고종을 대통령이 닮고 있다는 왜곡 또는 겁박도 나온다. 그것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부정적인 답답함이 기본적으로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스며든다. 정부가 매우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답답함을 덜 느낀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어쨌든 촛불 덕택에 출범한 정부가 기대만큼 잘 하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부분적으로 이 답답함에 기여했겠지만, 과거와 닮았다는 트라우마는 그것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에 스멀스멀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결코 그때와 같지 않다. 맹목적으로 유사성을 과장하면서 공포를 조장하는 말들은 허풍이거나 페이크 뉴스다. 과거처럼 강대국들 사이에 계속 꽉 끼어 있는 상황은 어떤 다른 나라도 겪지 않는 어려움이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현재 한국은 당시 근대화 과정에도 진입하지 못한 채 허둥댔던 조선 왕조처럼 무력하지 않다. 선진국의 민주주의 및 복지 시스템과 비교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답답함이 유발되기는 하지만, 그 답답함은 우리가 그래도 그들과 거의 엇비슷한 선에 서 있기 때문에 생기는 심리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후진적 풍경은 이 답답함을 유지시키는 기본적 원인이다. 한중일 관계는 EU 비슷한 협력관계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아질 기미도 크지 않다. 일본은 아직도 과거 역사를 충분히 반성하지 못하고 있고, 이 상황은 한동안 지속할 듯하다. 이 상태에서 중국에 대항한다며 미일 안보동맹은 한국을 포섭하려고 하니, 잘될 리가 없다.

일본과의 갈등이 기본적으로 과거와 관련된 것과 달리 중국과의 갈등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이 다시 강해지면서 19세기 말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점점 두드러지고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일본보다는 중국 걱정을 더 많이 한다. 이 와중에 보수 쪽에서는 정부가 미국과는 갈등을 빚으면서 중국에 밀착한다고 지나친 비난을 퍼붓는 경향이 있다. 비록 사드 배치와 미세먼지 등의 문제에서 정부가 중국에 대해 원칙에 따라 당당하게 행동하지 못한 면이 있기는 있지만, 지금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매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미중의 패권 경쟁은 앞으로 우리에게 계속 어려운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국내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한, 중국은 대외적으로 패권주의적 경향을 띠기 쉽다. 높은 무역 의존도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앞으로 중국에 대해 기본적인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고통스러운 과제가 될 것이다. 더욱이 그 대책을 둘러싸고 내부의 혼란이 심해질 터이다.

그렇지만 이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결국 복잡한 역사성 속에서 국가가 할 일이고, 개인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과거처럼 지사의 결기가 유교적으로 요구되지도 못하니, 어떤 개인도 자신의 답답함을 우국충정으로 포장하고 과장할 필요도 없다. 무슨 말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답답함이 공통되지만, 각자 겪는 무게와 경로는 다르다. 개인들은 때로는 자신의 무게가 국가의 그것보다 무겁다고 여기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등을 돌리기도 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답답증을 단순히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애착의 산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도대체 개인이 겪는 염려는 얼마나 실재하는 것인가? 당시처럼 국가가 무력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답답증은 견딜 만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우국지사는 아니고 또 될 수도 없으면서, 나라 걱정을 한다? 이상하다. 그 틈은 크진 않지만 아주 작지도 않다. 거기서 답답함은 새로 꿈틀거린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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