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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회도 뚫렸다... 시위대 분노로 가득찬 홍콩 반환 22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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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회도 뚫렸다... 시위대 분노로 가득찬 홍콩 반환 22주년

입력
2019.07.01 18:06
수정
2019.07.02 01:1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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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홍콩 입법회 건물 유리문을 시위대가 철제 카트로 들이받으며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유리문 너머로 진압 경찰의 모습도 보인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1일 오후 홍콩 입법회 건물 유리문을 시위대가 철제 카트로 들이받으며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유리문 너머로 진압 경찰의 모습도 보인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주권 반환’ 22주년을 맞은 1일 홍콩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재개된 가운데 일부 시위대가 홍콩 입법회 건물에 진입해 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달 200만여명의 홍콩시민을 거리로 불러낸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물결이 홍콩 정부의 ‘항복 선언’을 계기로 잠시 주춤하는가 싶었지만, 주권 반환 기념일을 계기로 반중(反中) 정서와 결합하면서 다시 불이 붙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날 시위는 이전과 달리 시위대가 입법회(의회에 해당하는 기구) 건물 강제 진입을 시도하는 등 격렬 양상을 띠었고, 홍콩 정부의 주권 반환 공식 기념식도 사실상 파행으로 치러졌다. 영국 BBC방송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홍콩은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로 하루 종일 몸살을 앓았다. 수십만명이 참여한 ‘송환법 반대’ 거리 행진은 대부분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시위대 수천명이 이른 오전부터 주요 도로 점거에 들어가 이를 해산하려는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은 탓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AFP통신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여성 시위자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 시위자는 영국 가디언에 “진압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액 스프레이를 뿌리고 곤봉으로 가격하기도 했다”며 “(나와 내 친구들은) 우산으로 몸을 보호해 큰 상처를 입지 않았는데 이는 정말로 행운”이라고 말했다.

부상자는 경찰 중에서도 속출했다. 홍콩 경찰은 이날 오후 성명을 내고 “시위대가 ‘미확인 액체’를 뿌려 경찰관 13명이 입원했다. 일부 경찰은 호흡 곤란을 겪기도 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시위대가 새벽 4시부터 도로 점거에 나섰고, 건설 현장에서 쇠파이프와 철제 카트 등을 가져가는 등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이날 시위의 하이라이트는 오후 내내 이어진 시위대의 입법회 건물 진입 시도였다. 오후 1시 40분(현지시간) 홍콩 애드미럴티 지역의 입법회 건물 정문 앞을 수백명의 시위대가 둘러싼 가운데, 일부 시위자들은 철제 카트로 건물 외벽의 유리문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쇠파이프로 유리문을 계속 가격한 시위대도 있었다. 삼엄한 경비와 출입 통제가 이뤄지고 있는 입법회 건물 내부로 들어가 ‘송환법 완전 철폐’를 요구하려 한 것이다.

30분 이상 시위대의 이런 행위가 반복됐음에도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이 문은 커다란 금을 내며 갈라지기만 할 뿐, 완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건물 밖’ 시위대와 ‘건물 안’ 전투경찰 부대의 살얼음판 같은 대치만 오후 내내 이어졌다. 시위대는 군데군데 뚫린 구멍으로 몰려들어 “(6월 12일 시위로 체포된) 정의로운 투사들을 석방하라” “악마의 법을 철회하라”고 외쳤고, 진압 경찰은 최루액을 시위대에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9시(현지시간)쯤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 강경 시위대가 결국 입법회 진입에 성공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위대는 바리케이드와 금속 재질 막대 등을 사용해 입법회 청사 건물 1층 바깥에 있는 유리 벽 여러 개를 파손시켰다. 시위되는 1층 외부에 둘러놓은 긴 금속 패널도 무더기로 떼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건물 밖에서 이들의 접근을 저지하려 시도했지만 입법회로 밀려드는 시위대가 늘어나면서 건물 안으로 1차로 밀려났다가 다시 여기서도 밀려났다. 입법회 건물 안의 시위대는 오후 10시 현재 최소 수백명 이상으로 불어났으며 입법회 건물 바깥에도 역시 수천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시위대가 머무르고 있는 상태라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앤드루 렁 입법회 의장은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시위대가 극단적 폭력을 쓰고 입법회에 몰려들어 청사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 것이 매우 슬프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폭력 행위를 규탄했다. 홍콩 정부도 성명을 내고 “홍콩은 법에 의한 통치를 존중하며 폭력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본격화하고 나서 공공 기관을 향한 직접적인 공격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 정부는 보안 문제를 우려해 내일 하루 정부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홍콩 경찰은 입법회를 장악한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물리력 사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즉각 밝혔다. 홍콩 경찰은 이날 밤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이른 시간 안에 입법회 건물 통제에 나설 것”이라며 “만약 저항이 있을 경우 적절한 물리력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시위대는 자정을 전후해 의사당을 빠져나갔지만 진압에 나선 경찰은 입법회 건물 외부에 있던 시위대들과 해산하는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선 장면이 포착됐다.

가디언과 BBC방송, 뉴욕타임스 등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은 일촉즉발의 이 상황을 실시간 영상과 함께 보도하기도 했다. 매년 7월 1일 주권 반환 기념일 때마다 홍콩에선 민주화 요구 시위가 열리지만, 과거보다 훨씬 더 거세진 올해 시위의 강도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진행하는 공식 기념식마저 이례적으로 실내 행사로 대체됐다. 그동안 주권 반환 기념식은 시민 참여 속에 야외 행사로 치러졌지만, 올해에는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조용히 거행됐다. 홍콩 정부는 “새벽에 내린 비 때문”이라고 설명했으나, 이미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예정됐던 터라 행사 장소를 변경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기념사를 통해 “이 사건(송환법 파문)으로 향후 정부 업무가 공동체의 의견과 감정에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했지만 자신에 대한 퇴진 요구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시위는 홍콩 시민들의 반(反)중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앞서 홍콩의 주권은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양됐지만, ‘50년간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원칙에 따라 2047년까지 사법 독립 등이 보장돼 있다. 그러나 람 장관 취임 이후 ‘중국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데다, 송환법이 시행되면 중국 체제를 비판했던 인사들이 중국에 끌려가는 일이 빈발할 것이라는 게 홍콩 시민들의 우려다. 람 행정장관은 지난달 15일 송환법 추진 중단을 발표했지만, ‘완전한 폐기’ 약속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홍콩 정부를 지지하는 시민들도 이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흔들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세력화에 나섰다. 5만3,000여명(경찰 추산)으로 파악된 이들 가운데 일부는 행진 도중 검은 옷을 입은 송환법 반대 시민들을 폭행하기도 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영국 외무부는 전날 제러미 헌트 장관 명의 성명을 통해 “우리는 홍콩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겠다”며 “일국양제 시스템 유지가 홍콩이 중국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우리는 믿는다”고 밝혔다. 홍콩 시위와 관련, 중국을 향해 압박을 가한 셈이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영국은 번번이 홍콩과 관련한 일에 간섭을 하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 강력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한다”라며 “영국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홍콩 사무에 간섭하는 걸 중단하기를 권고한다”고 반발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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