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32> 직업계고 근로자 

※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두 가지 측면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자신의 불편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지난달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19 우수기술연구센터(ATC) 사업 성과교류회 및 마이스터고·특성화고 채용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어렵게 취업을 해도 유무형의 차별에 시달린다. 연합뉴스

“고졸이라서 차별은 있습니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중소기업 최종 면접장에서 면접관은 이지영(가명ㆍ18)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순간 이씨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네,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올해 초 서울의 한 상업계열 특성화고를 졸업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마음이 더 급했다. 취업이 절박했다. 면접을 잘 본 덕분일까. 그는 지난 4월 1일 드디어 입사에 성공했다. 사회생활 3개월차, 새내기 직장인인 그에게 소감을 물었다.

“이 직장은 내 직장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미래가 없으니까. 입사하자마자 확 느껴져요. 고졸 신입은 11급 사원이 돼요. 대졸 신입은 8급부터 시작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11급에서 8급까지 가는데 10년 이상 걸린대요.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올라간 사람이 없어서. 한 선배는 회사에서 11년 일했다는데 아직 9급이에요. 고졸은 9급까지 밖에 못 봤어요. 사람이 진급을 해야 성취감이 있을 텐데, 의욕이 사라지는 거죠.”

한국 사회에서 고졸 신화는 글자 그대로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고졸-대졸 간의 현격한 임금ㆍ승진 격차, 공공연한 차별로 직업계고를 졸업한 취업자들마저 다시 대학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불합리한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씨도 “고졸 사원끼리 모이면 퇴사하고 수능으로 가든 내신으로 가든 재직자 전형으로 가든 무조건 대학 가겠다는 이야기는 꼭 나온다”며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이 디폴트’라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고졸 차별은 학력 차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고졸 차별은 결국 한국 사회의 여러 사회 문제의 핵심인 ‘과잉학력’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졸로 취업하면 자립과 성공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너도나도 대학을 갈 수밖에 없다. 사회는 고졸 차별에 따른 ‘청년 일자리의 미스매치’ ‘높은 입직(入職ㆍ직장에 들어감) 연령’ ‘과도한 입시 경쟁’ 등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과잉학력에 따른 노동시장 진출 지연 기회비용은 연간 최대 19조원으로, 입시를 위한 사교육비까지 고려하면 기회비용은 39조1,000억원에 달한다.

김경진 기자

◇직업계고 출신이라는 꼬리표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고졸과 대졸을 구분해 임금과 승진에서 격차를 둔다. 물론 학위를 따는데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니, 임금이나 승진에서 당연히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가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이는 ‘차별’과 다름없다는 게 직업계고를 졸업한 근로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성화고 졸업생으로 올해 한 IT 기업에 취직한 김준현(가명ㆍ19)씨도 회계 분야에서 일하던 특성화고 졸업생이 회사에서 7년 일한 고졸자와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이 동일한 급여 체계를 보고 화가 나 퇴사한 사례를 안다고 전했다. 그는 “저는 대졸자와의 차이는 인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하는 편”이라면서도 “대학을 갈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인데 대학 4년의 차이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일수록 대졸자와 고졸자의 직무가 똑같은데도,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임금 격차가 벌어질 때가 많다. 이럴 경우 고졸 취업자의 좌절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직장 내 이뤄지는 학력 차별 발언은 직업계고 근로자들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이은아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위원장은 “특성화고 졸업생 근로자를 ‘OOO사원’, ‘OOO인턴’ 이렇게 부르는 게 아니라 ‘OO상고’, ‘OO공고’ 이렇게 부르는 직장도 있다”며 “일하는 노동자로 보는 게 아니고 그 학교에서 뽑아온 잡일꾼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4월 사단법인 특성화고권리연합회에서 특성화고 졸업생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환경 기초조사에서도 ‘취업 후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야근, 특근 등 장시간 노동(24%)’에 이어 ‘고졸이어서 받는 차별과 무시(23%)’가 2위를 차지했다. 한 응답자는 이 설문지에 상사가 입사 후 회식 자리에서 “너희 특성화고 애들 뽑기 싫다. 억지로 뽑아서 마음에 안 드는데 정부 정책상 어쩔 수 없이 뽑았다”와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고 털어놨다.

직업계고 졸업생 근로자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고충은 유독 이들만 직장 내에서 부서 이동이 잦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쌓을 기회도 줄어들게 된다. 이 위원장은 “통계 업무로 입사했는데, 갑자기 비서과로 옮겨지는 등 전공과 연계해서 취업해도 이후에 관련 없는 인사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전공과 상관 없이 업무 공백이 난 곳에 우선적으로 배치하는 관행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김경진 기자

낮은 임금, 빈번한 부서 이동과 같은 열악한 근무 환경은 직업계고 근로자들의 잦은 이직을 불러오는 주요한 요인이다. 실제로 2017년 통계청의 학력별 취업자의 직장 경험 횟수에 따르면 고졸 취업자 중 이직 경험률은 대졸자(38.5%)에 비교해 월등히 높은 54.0%였다. 2명 중 1명 꼴로 이직을 한 셈이다. 특히 고졸자의 경우 4번 이상 직장을 옮긴 비율도 17.6%나 달했다. 고졸자의 일자리가 대졸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선배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이런 현실을 전해 들은 직업계고 재학생들을 대학 진학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경기 지역의 한 특성화고 금융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유모(18)양은 “원래는 취업을 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똘똘한 선배들도 취업이 어렵고 취업이 돼도 승진 등의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며 “특성화고 전형으로 경영학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업계고의 대학 진학률을 떨어뜨리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비율은 수 년째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현장실습 폐지로 취업률이 떨어지면서 취업 대신 대학 진학을 선택한 학생이 대폭 늘어났을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월 경기 부천의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인 신광엠엔피를 방문해 고졸취업 활성화와 현장실습 개선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학생도 아니고 근로자도 아닌, ‘현장실습생’

직업계고 학생들은 첫 사회생활인 현장실습 때부터 차별적이고 불합리한 관행을 경험한다. 현장실습이란 직업계고 학생들이 학교가 연계해 준 기업에서 정식 취업 전 실무를 익히도록 하는 제도다. 학생 신분으로서 학교로부터 공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취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2017년 12월, 교육부가 현장실습생의 잇따른 사망사고에 현장실습을 폐지한다고 했을 당시 직업계고 학생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직업계고 학생들은 현장실습 때 최저임금도 못 받은 채 고강도로 일을 하거나, 안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위험한 일에 내몰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관계 없는 직무에 투입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교육 효과도 없는데다, 각종 안전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준현씨는 “자기 전공과 관계 없이 공장에서 맨날 박스 접는 일과 같은 단순 업무를 하는 친구들도 많다”며 “기계과 같은 경우에는 안전 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학생들이 실전에 나가는 사례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2017년 11월 제주 생수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현장실습생 이민호군도 원래는 원예과 전공이었다. 이민호군은 당시 친구들에게 “아직 고등학생인데 메인 기계를 만진다” “원래 있던 베테랑들이 우리 같은 초보한테 일주일 미만으로 가르쳐주고 퇴사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사정은 이렇지만 교육당국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전공과 현장실습장의 전공적합도는 99.6%에 달한다.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이사장은 “학생이 현장실습에 나간 직장의 업종과 실제 학생이 하는 직무는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교육부가 조사한 전공적합도와 현실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실습생에 대한 기업의 노동착취를 근절하기 위해, 이들의 법적 지위를 근로자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업은 학생이면서 근로자인 현장실습생의 애매한 신분을 악용해 임금은 깎고, 업무 강도는 높이는 등 상황에 따라 유리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박동열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학생들이 기업에 가서 학습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는 아예 근로자로 인정해야 산업재해 등 모든 권리를 보호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현 이사장은 “특성화고 졸업생의 경우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취업을 하다 보니 불합리한 대우나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못 받게 되는 등 자기 권리를 침해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근로환경 문제해결에 관심을 기울이면, 자연스럽게 사회전반의 근로환경도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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