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결과물인 판결문은 전세계 대부분 국가가 공개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관습법이 근간인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판결문 공개가 이미 오래 전부터 법조 전통으로 자리 잡았고 대륙법계 국가들도 원칙적으로는 재판 공개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법원에서 선고된 모든 판결문을 즉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의 개인정보를 그대로 드러낸 실명 공개가 원칙이다. 주법원의 경우에는 주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공개가 대세라는 평가다. 미확정 판결문도 24시간 내에 온라인 사이트에 게재되고 뉴욕과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주는 인터넷으로 임의어 검색도 가능하다.

캐나다 역시 선고된 판결문을 전면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고 임의어 검색까지 할 수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도 미확정 판결문을 일주일 내에 공개한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의 영미법계 국가에서 판결문을 공개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개별 판결로 이루어진 판례법과 관습법을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한 판사는 “판결 자체가 법률로 인정받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고 적용할 수 없다”며 “대신 공개된 판결문에는 법리 문제가 주로 다뤄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륙법계를 택한 국가들도 재판 공개 원칙을 채택하고 있지만, 공개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대표적인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선례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일부 판결만 공개하고 피고인과 증인의 인적 사항은 비실명 처리된다. 비실명화 작업에도 프랑스는 1달, 독일은 1~3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대법원 판결은 대부분 공개하는 추세다.

중국은 대체로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지만 예외다. 2014년 제정된 ‘인터넷상에 인민법원 재판문서의 공포에 관한 최고인민법원의 규정’에 따르면 ‘혼인사건의 당사자, 형사사건의 피해자와 미성년자’를 제외하고는 실명으로 판결문을 공개해야 한다. 익명 처리나 개인정보 삭제 등의 기준을 명시해두고 있지만 집주소나 연락처 계좌번호 등 최소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 사법부도 느리긴 하지만 판결문 공개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확정 판결에 대해서는 2011년 민ㆍ형사소송법이 개정된 뒤로 비실명화 조치를 거쳐 공개가 시작됐다. 올해 초부터는 형사재판 판결문에 대해서도 사건번호나 피고인을 몰라도 임의어 검색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했고,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전국 모든 판결문을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는 “나라마다 역사적 이유나 입법 근거,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 등이 달라 해외 사례를 무조건 참고할 수는 없다”면서도 “비실명화 기술의 발전과 국민 알 권리 보장 등을 이유로 공개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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