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이 27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방위사업체 전 직원 등에 대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이 부인됐고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범죄 혐의가 증명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방위사업청에 접대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2015년 이들을 압수수색하면서 영장 범위를 벗어나 컴퓨터와 서류철 등을 몽땅 가져간 뒤 이를 ‘별건 수사’에 활용한 것은 위법이라는 취지다.
영장 발부 사유와 무관하게 압수한 자료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한둘이 아니므로 이날 고법 판결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사실상 불법이지만 지금까지 묵인되다시피 해 온 검찰이나 법원의 수사ㆍ재판 관행은 이것 말고도 여럿 도마에 올라 있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가 법정에서 그대로 증거로 인정된다거나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되는 재판 전 증거 제출 등은 오래 전부터 공판 중심주의를 해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지적했듯 검찰의 원칙 없는 피의사실 공표로 피의자와 가족의 인권을 침해해 온 행태도 개선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당연히 바로잡아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가 재판 거래,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등으로 지난 사법부가 송두리째 법의 단죄를 받는 상황에서 분출하는 모양새가 개운치만은 않다. 서울고법은 이날 1심과 마찬가지인 ‘별건수사 증거능력 없음’ 판결을 내리면서 이례적으로 자세한 보도자료를 내 그 의미를 설명했다. 비슷한 이유로 최근 강원랜드 채용 비리 재판에서 권성동 의원이 무죄를 선고받자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가 판결문 중 관련 대목을 꼬집어 칭찬하는 메일을 서울고법 전체 판사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이름이 거론됐다.
사법농단 재판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은 압수수색이나 자료 임의제출 과정에서 절차 위법이 있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판사들의 이런 행태가 자칫 이 재판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만도 하다. 만에 하나 그런 짐작이 사실이라면 “피고인이 되고서야 잘못된 관행에 눈을 떴다”며 자신들의 무죄 주장을 위해 사법 관행 개혁을 내세우는 지난 사법부 수장들만큼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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