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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아이와 도시를 걷는 삶은 가능할까

입력
2019.06.29 04:40
수정
2019.06.30 09:4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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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나의 주된 일과 중 하나는 맞벌이 동생을 대신해 23개월 된 조카를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이다. 차를 이용하면 10분 남짓의 거리이지만, 버스를 이용하는 우리는 거의 한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어린이집을 나와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15분 정도 걷는 여정인데도 오래 걸린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나는 긴장을 한다. 버스가 오기 전부터 탑승 대기 상태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에 탑승하지 못하고 보낸 경우도 많아서 생긴 버릇이다. 버스에 타더라도 대부분 아이가 앉기 전에 출발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는 신호에 맞춰 미리 멈추려는 차보다 어떻게 해서든 지나가려는 차를 더 자주 본다. 신호등은 또 어떤가. 아이가 다 건너기도 전에 깜박이고 소리까지 내면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결국 중간에 아이를 안고 건너야 하는데 그러면 아직 빨간 신호로 바뀌지 않았음에도 차들은 내 뒤로 지나간다. 이처럼 아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매일이 모험이다.

나는 종종 우리가 보이지 않는 건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버스가 단 5초라도 기다려 줬다거나 천천히 출발했더라면, 다음 버스를 위해 다시 버스 정류장에서 십여 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 느린 보행자를 위해 정차한 차들이 성급함을 보이지 않았다면 횡단보도를 걷는 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아이와 탑승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기사도 있지만, 매번 버스 기사의 호의나 재량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골목을 지날 때도 갑자기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튀어나온다. 유아차가 지나다니기에 인도는 너무 좁고, 문턱은 높고, 부서진 곳도 많다. 곳곳에 안전망 없이 철근으로 뼈대만 세워 두고 공사하거나 건축 자재, 장비가 인도에 방치되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빠른 길을 두고도 다른 길로 에둘러 간다. 아이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신경 쓸 일이 많다. 이것은 아이에게 이 곳이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조카와 동행하는 일을 시작할 무렵, 주변에서 부모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오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두어 시간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 두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을 데리러 온 나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 나오는 조카를 보았을 때, 건물 밖으로 나와 눈이 부신 데도 한참 햇빛을 바라보며 나에게 무어라 말하는 아이를 보았을 때, 지나가는 길에 핀 꽃을 보며 “이게 뭐지?”라고 묻는 아이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아이에게 바깥으로 나오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최근 ‘아동친화도시’를 선포하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지역에서는 젊은층 유출과 저출생을 막기 위한 대응책으로 내놓은 대안이다. 모두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지역에 놀이터를 설치하거나 공원을 조성하는 것 등 시설을 증축하는 것이나 돌봄서비스지원 확충에 그친다. 인프라 확대도 중요하지만 단지 시설물만 늘린다고 해서 아동친화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아동친화도시가 그저 각 지자체에서 유행하는 사업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의 걸음과 시선에서 도시를 설계해야 한다. 출입문과 신호등 보행시간이 몇 초만 늘어나더라도, 차도를 확장하는 대신 인도를 확장하더라도, 공사할 때 안전망을 의무화하고 유해물질을 엄격하게 규제하더라도 일상에서 체감하는 안전감은 달라질 것이다. 그럴 때 아이뿐만 아니라 노인, 장애인도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아이와 도시에서 안전한 산책이 가능할까. 도시에서 아이와 걷는 일이 긴장과 불안 대신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오늘도 바란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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