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건축가에서 반려동물 장례 전문가 된 권신구 21그램 대표
반려동물 1,000만 마리 시대에 갖가지 관련 직업이 탄생할 거라 예상했지만 이 직업은 ‘상황’을 맞닥뜨려 봐야 필요성을 인식한다. 십수 년 가족처럼 지내던 동물의 죽음이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동물 장례 정보, 슬픔을 이해 못하는 주변의 몰인식, 생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맞물릴 때쯤 찾게 되는 게 반려동물 장례 전문가다.
반려동물 장례서비스 플랫폼 ‘21그램’을 운영하는 권신구(37) 대표는 이 분야 국내 손꼽히는 인사다. 21그램은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전국 36개소 반려동물 장례식장 정보를 제공하고, 반려동물 보호자가 상담과 장례식장 예약,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24시간 운영한다.
13일 서울 송파대로 사무실에서 만난 권신구 대표는 “제대로 된 장례식은 남겨진 반려인들을 위한 의례”라며 “가족처럼 여겼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슬픔에만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반려동물 사체는 ‘폐기물’로 지정돼있어요. 등록된 동물 장례식장에서 화장해야 하는데, 많은 분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매장을 해요. 불법이거든요. (동물 사체를) 동물병원에서 알아서 처리해 달리고 맡기는 경우도 있는데, 주사기 등과 함께 의료 폐기물로 분류됩니다. 동물 장례는 정보를 얻기도 제대로 된 시설인지 검증하기도 어렵죠. 이제 동물 장례에 대한 인식도 문화도 바뀔 때라고 봅니다.”
권 대표의 전직은 건축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지도 교수의 설계사무소에서 7년을 일했다. 2014년 무렵 사무소로 동물 장례식장을 설계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고, 관련 정보를 조사하는 내내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공장 창고 같은 허름한 시설과 화장로가 노출돼있었고, 비용을 책정하기 위해 사체 무게를 다는 저울까지 있었다. “당시 동물 장례식장은 전국에 10개 남짓 있었는데, 장례식장이라기 보다는 화장터에 가까웠죠. ‘내가 이런 시설에서 십수 년 키우던 동물을 보내고 다시 새 생명을 입양할 수 있을까?’ 따져보니 아니더라고요.” 다른 한편으로 반려동물 수가 드라마틱하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동물 장례업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얼핏 멀쩡한 직장 관두고 이름도 생소한 동물 장례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지만,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다. 권 대표가 함께 설계사무소를 다니던 이윤호(35)씨와 퇴직금을 모아 21그램을 만든 게 2015년. 창업 초반에는 반려동물 유골함 같은 장례용품을 팔고, 부업으로 건축설계도 함께 했다. 교회, 주택 등을 설계하다 경기 광주시 일대에서 문화공간을 열고 싶어 하던 건축주 이상흥씨를 설득해 ‘미술관 같은 동물 장례식장’을 설계한 건물이 ‘팻 포레스트’ 1호점이다. 권 대표는 “반려동물 죽음은 누군가의 인생에서 첫 죽음을 공부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다. 어린이, 청소년이 거부감, 공포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례식장과 화장터, 납골당이 한 곳에 마련된 이 건물은 2017년 1월 연면적 713.96㎡, 5층 규모로 지어졌다. 교외 카페를 연상시키는 새하얀 건물이 광주시 아름다운 건축상을 받으며 지역주민들과 갈등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애초에 동물 장례식장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펫 포레스트를 지으며 이 꿈을 접었단다. 권 대표는 “그 사이 동물 장례 시설이 4배 가까이 늘어, 시설과 반려인을 잇는 플랫폼 사업이 승산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동물 장례식장 컨설팅도 맡았다. 장례식장 예약관리 시스템을 만들고, 인테리어, 장례용품 등을 판매했다.
권 대표는 “반려동물 생애주기를 15~17년으로 볼 때 2000년 이후 늘어난 반려동물들의 이별을 준비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면서도 “생(生)·로(老)·병(病)에 대한 국내 반려동물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처하는 문화는 여전히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전체 매출의 7할이 장례식장 컨설팅에서 나오지만 조만간 일반 소비자 이용도 늘 것으로 기대한다.
홈페이지 월 방문자 수는 약 2만명. 지난해 1,500명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성장이다. “1년에 버려지는 반려동물이 10만 마리에 달해요. 보호자들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당장은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를 알리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 보호자들이 다시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예요. 장례시설 찾는 분들께 유기동물을 연계해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에요. 반려동물과 관련된 사회문제도 해결되길 바랍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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