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기계약 경비원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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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한 아파트 경비 노동자 A(65)씨는 3개월마다 고용 불안에 떤다. 3개월 단위로 근로 계약을 맺는 ‘초단기 비정규직’ 신분 탓이다. 이 아파트에서 근무한지 2년도 안 돼 근로 계약서만 무려 6번을 썼다. 그는 “동료 경비원 대부분이 고용된 지 채 1년도 안 돼 해고되는 것을 보면 나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B씨(67)는 서울 노원구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 지 6개월 만에 직장을 잃었다. 3개월마다 갱신하는 계약연장이 불허된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계약기간 중에 이미 사측(용역업체)으로부터 사직서를 쓸 것을 강요 받았다는 데 있다. 그는 “경비 용역업체들이 경비원들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경우 법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꼼수를 쓴다”고 전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극심한 고용 불안에 떨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나 용역업체들이 경비 노동자들과 고용 계약을 맺으면서 복잡한 해고 절차나 퇴직금 지급을 피하고자 1년 미만의 ‘초단기 근로 계약’을 맺는 일이 늘고 있어서다. 아파트의 브랜드나 입주 규모에 상관없이 전방위로 발생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경비 노종자 고용실태 조사 결과 - 송정근 기자/2019-06-25(한국일보)

25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노원노동복지센터의 ‘아파트 경비노동자 고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런 현실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난 한달 간 서울지역 아파트 40여 개 단지 경비 노동자 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2명 중 23명(44%)이 3개월 계약직 행태로 나타났다. 1개월 계약직도 4명에 달했다. 이들을 포함해 6개월 미만 초단기 계약직이 33명(63%)으로, 절반을 넘었다. 1년 이상 계약직은 19명(36%)에 불과했다. 22명(42%)은 이전 아파트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아파트 경비 노동자 상당수가 3개월짜리 초단기 근로 계약 조건으로 근무한고 있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한 경비원이 아파트 용역업체와 체결한 3개월짜리 근로 계약서. 노원노동복지센터 제공

경비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에 내몰리는 이유는 법적 보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기간제법엔 단기 계약직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전무하다. 2년 이상 고용된 기간제 근로자는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는데, 이마저도 55세 이상 고령자 등은 전환 대상에서 빠져 있다. 경비 노동자 대부분이 60세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법적 보호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윤을 더 남기려는 경비 용역업체의 이해관계도 맞물려 있다. 경비 노동자를 고용할 때 만 1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연장 계약을 안 해주거나 해고하는 식이다. 해고를 쉽게 하기 위한 의도도 숨어 있다. 근로기준법 상 재계약을 기대할 수 있는 ‘갱신 기대권’의 권리를 미리 박탈하려는 이유도 있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경비원의 열악한 근무 환경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한 C씨(67)는 단지 보도블럭을 정비하라는 입주자대표자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3년 간 일한 일터에서 쫓겨났다. 그는 “경비 업무가 아니라 거부했는데, 해고됐다”고 억울해했다.

이번 조사에선 19명(36%)이 입주자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듣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답했다.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답한 경비원은 14명(26%)에 불과했다. ‘휴게시간 중임에도 급한 일이 생길 경우 대처한다’는 응답은 19명(36%)에 달했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한 꼼수를 막기 위해선 3개월 이상 근무해도 퇴직금을 주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득균 공인노무사는 “아파트의 공익성을 강화해 국가나 지자체가 경비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 각 아파트에 파견하는 행태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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