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본격화
선두그룹에 무명의 피터 부트저지
주목되는 밀레니엄세대 이념 좌표
대통령 선거에 출마 도전장을 낸 피터 부트저지(왼쪽) 민주당 후보. WVPE

미국 민주당의 2020년 대선 후보 레이스가 26일 저녁 첫 TV토론회를 시작으로 본격화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격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춘 때문인지, 경선엔 사상 최다인 24명의 후보가 나섰다. 여론조사 선두그룹은 대략 5명. 바이든 전 부통령 등 대부분 전국 지명도의 스타 정치인들인데, 유독 무명 정치인 한 사람이 끼어 있다. 인디애나주 소도시 사우스밴드의 시장 피터 부트저지.

부트저지는 3월께 CNN 타운홀에 출연한 뒤 지지율이 올라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이어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과 순위를 다투고 있다. 모금액도 선두권이고 첫 결전장인 아이오와주에선 워런을 앞서 3위다. 그건 작은 이변이다. 출마의 변과 프로필만으로 상당수 지지층의 공감을 얻은 셈이다.

그는 남자 고교교사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동성애자다. 당선되면 미 역사상 최초의 “공개적인” 게이 대통령이 된다. 수식어가 붙은 것은 역대 대통령 중 동성애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LGBTQ(성소수자) 일각에선 그를 “지노(GINO, Gay in Name Only)”, 그러니까 “이름만 게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에서 LGBTQ 사회는 주요 정치세력이고, 2012년 대선 이후엔 민주당의 주요 지지층이다. ‘정체성 정치’의 많은 이론이 성소수자 운동에 뿌리를 둔다. 하지만 부트저지는 선거운동이나 행동으로 성정체성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도리어 “나는 게이지만, 심지어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험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따라서 “나만의 경험, 나만의 문화를 너는 모른다고 잘라버리면 결코 멀리가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연대론(American Solidarity)이라고 명명한 그의 주장은 미국 보수와 진보가 벌이는 문화전쟁에 대한 반론이다. 인종ᆞ여성ᆞ이민정책에서의 투쟁을 중시하는 민주당 노선을 분열적이라고 암암리에 비난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졌다. 많은 후보가 트럼프와 전쟁을 치르는 전사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과도 다르다. 경험과 문화, 역사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걸 독점하면 한없는 분열이 계속돼 결국 소속감의 위기가 온다는 게 그의 논리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가 흑인이고 트랜스젠더 여성일 수 있다”는 게 자주 쓰는 비유다.

부트저지의 이력은 다채롭다. 성정체성이 부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하버드대 졸업 후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해군 정보장교로 아프간전에 참전했다. 지역적으론 대선의 결전장인 중ㆍ서부 출신이다. 무엇보다 그는 37세로 난립한 후보들 중 유일한 밀레니얼세대(미국의 경우 1981~1992년생)다. 트럼프 이후의 민주당, 그리고 미국은 이념적으로 더 왼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미래의 주류인 밀레니얼세대 후보가 중도타협적 가치를 내세운 게 하나의 반전이다. 이 세대는 X세대보다 더 개인주의적일 거라는 예측 때문에 ‘Me, Me’세대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조사에선 2차대전 후 공동체적 가치를 가장 중시하는 세대로 드러나고 있다.

부트저지가 경선에서 어디까지 해낼지는 미지수다. 이변은 벌써 끝났다는 관측도 있다. 그렇더라도 기성세력과 전혀 다른 그의 주장이 강한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올 초 갤럽 조사에선 민주당 당원 51%가 당 노선이 더 온건해지길 바란다고 답했다. 실제 후보들 분위기는 이와 동떨어져 있다. 기성세력 후보들이 그리는 트럼프 이후 미국은 회고적이다. 바이든은 정치 리더들의 동질성 회복, 샌더스는 사회주의의 재평가와 부활을 얘기한다. 경제 정의를 내세우는 워런은 어머니가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던 시절의 자본주의를 다시 이루겠다고 말한다. 부트저지는 “시계를 멈추고 산업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미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다양해진 사회에선 투쟁보다 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리더의 덕목이 된다는 것이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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