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밸리, 혁신의 심장을 가다] <3> 실리콘밸리 캠퍼스 달리는 자율주행 로봇

※편집자 주: 밀레니얼 세대가 미국 경제의 핵심지 실리콘밸리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이 창업과투자, 소비와 문화활동의 중심 세대로 자리 잡은 실리콘밸리는 이제 ‘밀레니얼 밸리’라 불려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2~5월까지 4개월 동안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스타트업과 스탠퍼드대ㆍ버클리대의 창업지원 기관 등에서 취재한 ‘밀레니얼 밸리’ 현장의 이야기를 매주 목요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달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주립대 캠퍼스 안에서 키위봇 한대가 다음 배달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버클리=신혜정 기자.

“오늘은 뭐 먹지?”

지난달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시 버클리주립대 교정.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행복한 고민을 안고 삼삼오오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 사이에서 어디선가 네모난 로봇이 나타나 유유히 지나간다. 바쁘게 식사를 배달하고 있는 ‘키위봇(Kiwibot)’이다. 사람 무릎에 닿는 작은 로봇이 스스로 길을 찾는 모습이 신기할 법도 한데, 학생들은 익숙하다는 듯 제 갈 길을 간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관광객뿐이다.

스타트업 ‘키위캠퍼스’의 키위봇은 경력 2년의 배달로봇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원하는 메뉴와 배달지점을 선택하고 결제를 하면 금세 키위봇이 달려온다. ‘30분 내 배달보장’이라는 약속을 어긴 적 없는데다, 배달비도 1회당 5달러 남짓으로 ‘인간’ 배달원에 비해 3~7달러 싸다 보니 이 일대 주문을 싹쓸이 하고 있다. 실제 버클리주립대와 주변 번화가를 걷다 보면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길에 서서 쉬고 있는 키위봇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로스쿨 재학생 줄리엔(28)은 “시험기간이면 식사는 물론 버블티 같은 음료도 키위봇으로 주문한다”고 말했다. 키위캠퍼스에 따르면 우수고객 50명은 일주일에 평균 15번 키위봇을 이용한다. 매일 두 번 이상 키위봇으로 배달음식을 먹는 셈이다.

키 60㎝ 남짓, 얼핏 봐선 장난감 같아 보이지만 키위봇은 이래봬도 제 스스로 돈을 번 첫 번째 자율주행로봇이다. 실리콘밸리에만 50여개의 자율주행기술 스타트업이 경쟁하고 있지만, 실제 소비자들을 상대로 서비스를 시작한 건 키위캠퍼스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 소속 ‘웨이모(Waymo)’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일부 지역에서 상업용 자율주행택시를 운영하기 시작한 게 불과 지난해 12월. 다른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이 기술개발과 주행시험만 반복하며 기약 없는 상용화를 기다리는 동안, 키위봇 150대는 2017년 3월부터 4만번의 유료 배달을 하며 자리를 잡았다. 초기 스타트업이지만 이미 200만달러(약24억원) 투자유치를 했고, 20만달러(약2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달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시의 한 사무실에서 자율주행 배달로봇 스타트업 '키위캠퍼스'의 제품총괄 샤샤 이아체니아가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버클리=신혜정 기자

혁신이 가능했던 건 키위캠퍼스의 창업자들이 ‘기술 완벽주의’대신 ‘소비자 중심주의’를 택했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인 펠리페 차베스(29)와 동업자들은 사람들이 지금 당장,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서비스를 상상했다. 안전문제를 우려하는 소비자에게 다가가려면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탑승용 서비스보다는 배달서비스가 유망해 보였다.

창업자들 자신과 같은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ㆍ1981~1996년생)’는 배달로봇을 시험하기 가장 좋은 소비자였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개방적인데다가, 쓸데없는 외출보다 집에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게 ‘쿨하다’고 생각하는 세대였기 때문이다. 배고프고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이 많은 버클리주립대는 최적의 실험장소였다.

이들도 처음엔 운전자가 필요 없이 장거리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완전자율주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단거리만 이동해도 되는 배달로봇에 높은 기술적 완성도가 필요한 완전자율주행은 굳이 필요 없었다. 전후방 6개의 카메라와 라이다(LiDARㆍ레이저 반사광을 이용해 거리 등을 측정하는 센서), 기계학습(머신러닝)이 가능한 인공지능 두뇌를 갖춘 키위봇에게 짧은 거리의 자율주행은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 서비스를 시작하고 보니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첨단기술만이 답은 아니라는 결론은 명쾌했다. 키위봇에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앞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거나, 학생회관처럼 사람이 밀집한 공간에선 적절히 돌아갈 줄 아는 ‘센스’가 필요했다. 이에 사람이 스크린을 통해 5~10초에 한 번씩 도착 지점을 확인하는 원격감시 시스템을 도입했다. 덕분에 시간과 비용이 조금 걸릴지라도 키위봇은 더 정교하게 움직이게 됐다.

성공의 꿈을 안고 무작정 실리콘밸리로 날아온 콜롬비아 청년 펠리페는 창업 1년만에 매사추세츠공대(MIT) 테크놀로지리뷰가 선정한 ‘35세 이하 혁신가’로 꼽혔다. 첨단 기술과 트렌드를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다는 평가다.

키위캠퍼스는 올해부터는 스탠퍼드대, 코넬대 등 12개 대학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웬만한 대도시라면 어디서든 청년들을 쉽게 접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캠퍼스일까? 제품 총괄인 사샤 이아체니아(26)는 “소비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사고를 당한 키위봇에게 손수 장례를 치러줄 정도로 로봇에 친밀감을 느낍니다. 이런 학생들이 많아질수록 향후 우리의 잠재고객도 커지겠죠.” 웃고 윙크하는 깜찍한 키위봇의 디자인도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의도한 거라는 설명이다.

자율주행편의점 로보마트. 로보마트 제공

‘자율주행배달’ 시장의 가능성을 예상한 기업들은 키위캠퍼스뿐만 아니다. 대형유통기업인 아마존이 이미 자율주행배달로봇과 드론 개발을 시작했고, 완전자율주행차 개발을 진행중인 포드 역시 자율주행배달로봇을 별도로 선보였다. 구글 웨이모출신 엔지니어가 만든 자율주행배달로봇 스타트업 누로(NURO)는 조만간 피자 체인인 도미노와 함께 시범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부모세대보다 배달음식을 3배 더 자주 시켜먹는 세대(금융기업 UBS의 보고서), 열명 중 셋은 집에서 혼술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세대(마케팅사 민텔 보고서)인 밀레니얼이 조만간 최대 소비자가 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전략은 시의적절해 보인다.

영국에서 이미 두 개의 스타트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알리 아메드(36)가 실리콘밸리로 온 것도 기회를 봤기 때문이다. 그가 2017년 시작한 스타트업 로보마트는 ‘자율주행편의점’ 서비스를 지향한다. 그저 로봇을 이용하는 일반적인 자율주행배달과는 크게 다르다는게 알리의 설명이다. 승용차 형태의 자율주행로봇이 편의점처럼 판매대를 싣고 다니면서 주문이 오면 주문자에게 이동하는 방식이다. “맥주를 배달시킨다고 해봅시다. 일단 앱이나 쇼핑사이트에 접속해 원하는 제품을 골라야겠죠. 주문이 접수되면 가게에서는 포장을 하고 이를 배달원에게 맡길 겁니다. 이 복잡한 과정들이 아예 편의점 하나를 통째로 보내는 것만으로 크게 단축 되는거죠.”

알리는 로보마트가 편의점이 적은 지역은 물론 다양한 가게가 많은 도심에서도 성공할거라고 본다. “앉은 자리에서 빠르고 편하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로보마트는 올해 슈퍼마켓체인인 샵앤샵과 함께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에서 시험운행을 한 뒤 본격적으로 시장 진출을 할 계획이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은 지난해 1,190만달러였던 세계 배달로봇시장 규모가 연평균 19.2% 성장해 2024년 3,400만달러로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버클리=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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