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두 권 낸 유종호 문학평론가 
유종호 평론가는 “오늘날 노인은 옛날처럼 불가결한 지식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며 “노년의 지혜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100세 시대’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을 만큼 노인의 범주는 확장됐지만, 정작 ‘존경받는 어른’의 자리는 역설적으로 더 좁아지는 시대다. 고령사회에서 사회 잉여자로 전락하지 않고 유효한 노인의 역할을 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예술원 회장을 지낸 유종호(84) 문학평론가는 여전히 노장의 역할을 긍정 평가한다. “비록 순발력이나 명민한 두뇌 회전에서는 청장년을 따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경험에 있어서만은 어엿한 부자”이니 “노년이 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여가 있다면, 연륜과 경험에서 나온 장기적 안목을 제공”하는 것이라 말한다. 최근 두 권의 산문집 ‘그 이름 안티고네’(현대문학)와 ‘작은 것이 아름답다’(민음사)를 낸 유 평론가를 1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과거에는 80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평균수명이 늘다 보니 그 덕을 보기도 했겠고, 개인적으로는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했던 것이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1957년 등단, 60년 넘게 비평활동을 해 왔고 65세가 넘어 낸 책만 15권에 달한다. 활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나이에 꾸준히 읽고 쓰는 비결을 묻자 ‘시대’에 덕을 돌린다. “물론 예전만큼은 못해요. 한 시간 읽고 나면 먼 산 바라보며 눈을 좀 쉬어 줘야 합니다.”

최근 선보인 책 두 권은 각각 월간 현대문학과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에 연재한 글을 선별해 엮은 것이다. ‘그 이름 안티고네’가 노년의 학자로서 바라본 시대와 문학에 대한 통찰을 다룬다면, ‘작은 것들이 아름답다’는 개별 시 소개와 개인적 체험을 담고 있다.

책의 제목으로 삼은 ‘안티고네’는 그의 철학이 총체적으로 담긴 상징어다. 조국의 배신자로 규정돼 매장이 금지된 오빠의 시체를 묻음으로써 국가 권력에 맞선 그리스 신화 속 안티고네는 정의와 인간 존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대로 매장을 금지한 섭정 크레온은 부정의와 오만을 대변한다. 유 평론가는 안티고네에서 한국 사회의 ‘편향과 쏠림 현상’을 본다. “권력자는 무조건적인 ‘적대적 타자’로 여겨져요. 저항하고 비판하는 것만이 지식인의 참다운 모습이라고 보죠. 그러나 다수파가 아니라 할지라도, 소수 의견 역시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요.”

문학과 정치에 대한 그의 통찰은 날카롭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이른바 노년의 지혜라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라고 쓴, 나이 듦에 대한 글은 엄격하면서도 비애가 스며 있다. “눈빛 초롱초롱한 새싹들에게 간헐적으로 산타클로스 노릇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라면서도 “그것은 고해(苦海ㆍ괴로움이 끝이 없는 인간 세상) 장기체류자의 몰염치한 나태”가 아니겠냐고도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우리 시대에 어른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정치화된 사회 풍토다. “한국은 진영논리가 득세해요. 아무리 한 분야를 열심히 파서 업적을 이뤘어도,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르면 귀 기울이지 않죠. ‘폴리페서’란 말이 있듯, 의과대 교수, 컴퓨터 공학자도 정치에 휩쓸려요. 그런 사회에서는 어른이 나오기 힘듭니다.”

그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얘기를 하되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길이라고 말한다. “사회는 결국 여러 세대로 구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령자는 고령자의 얘기를, 중년은 중년의 얘기를,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의 얘기를 해야죠. 젊은이 글을 애송이 글이라고 읽지 않아서도 안 되고, 노인의 이야기를 낡았다고만 치부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산문집 두 권이 동시에 새로 나왔다. '그 이름 안티고네'(왼쪽 사진ㆍ현대문학)와 '작은 것이 아름답다'(민음사)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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