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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감정평가’ 두고 갈라진 화랑가… 감정서 9000건 무용지물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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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감정평가’ 두고 갈라진 화랑가… 감정서 9000건 무용지물되나

입력
2019.06.24 19:00
수정
2019.06.24 20:3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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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9일 당시 서울중앙지검이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리자 취재진이 검찰청 소회의실에서 해당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12월 19일 당시 서울중앙지검이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리자 취재진이 검찰청 소회의실에서 해당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수근(1914~1965) 작가는 국내 미술시장 최고 인기 작가 중 한 명이다. 워낙 인기 작가이다 보니 위작 시비가 붙곤 한다. 법정 다툼 끝에 진품으로 결론이 난 ‘빨래터’(1950)가 대표적이다. 박수근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은 국내 최대 민간 감정기구인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평가원)이 발급한 감정평가서를 통해 진품 인증을 받는다. 평가원이 지난 3월 해산되고 미술계가 감정평가 주도권을 둘러싸고 이합집산하면서 9,000여건의 기존 감정평가서도 무용지물이 될 위기에 처했다. 평가원의 감정평가서에는 박수근의 작품 252개를 포함해 김환기, 이우환, 김창열, 천경자 등 국내 주요 작가의 작품 대부분이 속해 있다. 미술품 거래자들은 위작 여부에 대한 공신력 있는 감정 없이 미술품을 사고 팔아야 될 상황이다.

논란이 시작된 건 지난 3월 평가원이 해산하면서다. 평가원은 2002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로 출범했다가, 이후 사단법인인 한국미술품감정협회와 법인의 재정ㆍ행정 업무를 뒷받침하는 주식회사인 평가원으로 분리 운영 됐다. 평가원 내부에선 기관이 보다 공익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사단법인으로 일원화하기 위해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열고 평가원 청산을 결정했다.

이후 평가원에 속했던 다수 인사가 평가원 해체 직후 사단법인이 아닌 주식회사 형태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센터)를 설립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센터 공동대표를 맡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평가원 해산과 센터 발족은 관계 없고, 감정 기구 역시 경쟁해야 발전이 있다는 취지 아래 설립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07년부터 평가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명의로 감정평가서를 발급해왔던 한국화랑협회 측은 “해산 이유로 공공성 강화를 내세워 놓고 새 주식회사를 만든 의도가 불순하다”고 반박했다. 결국 평가원 해산은 일부 인사들이 감정 주도권을 갖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2016년 11월 15일, 당시 경찰이 이우환 화백의 작품 ‘선으로부터’ 위작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6년 11월 15일, 당시 경찰이 이우환 화백의 작품 ‘선으로부터’ 위작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감정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 양상이 벌어지면서 평가원이 그간 발급 해왔던 감정평가서가 효력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평가서를 발급한 기관이 사라지면 문서의 법적 근거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17년 간 평가원이 발행한 감정평가서는 9,296건에 달한다.

화랑협회는 자체 기구로 감정운영위원회를 구성해 감정 업무를 맡으면서 평가원으로부터 그간의 감정 자료를 이어 받아 기존의 감정평가서를 보증해주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평가원 측은 감정서를 공유하지 않고 나아가 폐기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웅철 화랑협회 회장은 “17년 간 축적돼 온 감정서가 폐기될 경우 데이터베이스가 사라져 미술시장의 혼란이 클 것“이라며 “그림 소유자들도 다시 감정료를 내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화랑협회는 지난 4일 평가원 감정자료 등에 대한 가처분 금지신청을 낸 상태다.

감정평가기관이 여러 개 운영되며 빚어지는 혼란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의 작품을 두고 감정 기구의 의견이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는 벌써부터 현실이 되고 있다. 화랑협회에 따르면, 서울 인사동의 한 화랑 대표 A씨는 최근 평가원의 감정평가서를 근거로 컬렉터 B씨에게 작품을 팔았다. 하지만 B씨가 최근 설립된 센터에 해당 작품의 진위 여부를 문의한 결과 ‘위작’ 의견이 나왔고, 결국 작품 구매를 취소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화랑 대표는 “기관마다 평가가 다르면 유통 질서에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화랑 혹은 사설 기관 중심으로 이뤄지는 국내 감정 평가 시스템은 오랫동안 비판 받아 왔다. 작가 중심의 감정 체계가 정립된 다른 국가들과 달리 객관성이 떨어지고 진위 판정 역시 다른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천경자, 이중섭, 박수근, 이우환 위작 논란이 대표적 예다. 논란이 반복되자 국회에선 국가가 특정 기관을 미술품감정연구센터로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정부는 현재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된 법안이 통과될 경우 감정 인력 확보 수준 등을 따져 감정 기관을 지정한다는 계획이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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