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제주도를 찾는 것이다.
대다수의 직장인 및 대한민국의 성인 남녀들이 일상을 살다 아무런 걱정 없이, 아무런 고민 없이 그리고 아무런 계획 없이 제주도를 찾는다면 탁 트인 바다, 그리고 매력적인 장소 및 감성이 담긴 곳곳을 찾으며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일부 ‘지나친 상업화’ 그리고 ‘대기업 및 프랜차이즈의 침략’이 돋보이는 곳도 있겠지만 홀로 스티어링 휠을 쥐고 해안도로 곳곳, 그리고 산길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여전히 매력적인 힐링의 장소’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일정에서는 캐딜락의 아이코닉 SUV, ‘에스컬레이드 플래티넘’과 함께 이러한 ‘힐링’을 즐길 수 있었다.
해안도로, 그리고 V8 엔진의 매력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플래티넘과 함께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달리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그리고 캐딜락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제주도의 구불구불한, 그리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및 내리막 구간을 지나며 드라이빙의 감성이 강렬히 전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캐딜락의 여러 차량을 타본다면 단 번에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사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물론이고 여러 캐딜락들은 프리미엄의 감성을 명확히 전달하는 건 물론이고 차량의 세그먼트 및 포지셔닝에 관계 없이 ‘오너-드리븐’의 감성을 강렬히 전달한다.
덕분에 캐딜락을 타면 탈수록 ‘드라이빙의 재미’를 확실히 느끼게 된다.
이러한 감성이 명확히, 그리고 강렬히 전달되는 원동력이 있다면 역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V8 6.2L LT1’ 엔진에 있다. 이 엔진은 최고 출력 426마력과 62.2kg.m의 토크를 자랑하며 10단 자동 변속기, 그리고 AWD를 통해 노면과 연결된다.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깊게 밟을 때 에스컬레이드의 캐빈룸을 가득 채우는 우렁찬 사운드는 외부로는 존재감을, 그리고 실내 공간으로는 강렬함과 대담한 감성을 확실히 누릴 수 있다. 참고로 이와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서스펜션 시스템인 ‘MRC’가 자리하고 있어 해안도로의 레이아웃 또한 아무런 걱정이 없다.
플래티넘의 가치를 말하다
캐딜락 코리아에게 있어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플래티넘의 도입이 무척 늦었다는 점이다.
사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데뷔도 늦었는데, 최고 사양인 플래티넘이 최근에야 도입되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캐딜락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엔트리 트림인 럭셔리보다는 상위 트림인 프리미엄 및 플래니텀 쪽을 상당히 선호한다는 걸 꼭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로 에스컬레이드 플래티넘에는 더욱 고급스러운 가죽 패키징과 전동 사이드 스텝, 냉장고 기능, 새로운 디자인 파츠 등이 더해져 감각적인, 감성적인 만족감을 높인다. 덕분에 캐딜락이 ‘미국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걸 확실히 과시하는 모습이다.
우연하게 마주한 공간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플래티넘과 함께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달리던 중 저 멀리 성당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내심 ‘이런 곳에 성당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이라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그 성당 어귀를 지날 무렵 ‘김대건 신부’라는 문구를 보고 스티어링 휠을 돌렸다.
대한민국 천주교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성인(聖人)이 있다면 바로 성 김대건 신부일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신부)이자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천주교를 위해 숨을 거둔 이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한 명의 사제’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천주교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큰 의미를 담고 있고 있다.
그리고 영화 세트장이라 생각됐던 그곳은 바로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이었다.
라파엘호와 조선을 찾다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대건은 16세의 나이에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아 함께 마카오로 유학을 떠나 25세까지 해외의 문물과 언어, 그리고 신앙을 공부하며 1845년, 중국 상하이의 김가항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며 조선과 대한민국의 최초의 사제가 됐다.
그 길로 한반도의 천주교를 전하기 위해 삼대천사 중 하나이자 여행자의 수호 천사인 ‘라파엘’의 이름을 딴 라파엘호에 오른 김대건 신부는 풍랑을 만나 한 달에 이르는 표류 끝에 제주도 용수리 해안에 닿게 됐다. 용수리 해안에 닿은 김대건 신부는 ‘첫 미사’를 봉헌하고 이후 라파엘호를 수리하여 선교를 위해 전라북도를 향해 나섰다.
1999년 용수리 해안은 대한민국 천주교 제주교구에 의해 성지로 지정됐고, 2006년 지금의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 성당’이 완공되었다.
참고로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 성당’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미사는 주일(일요일)과 화요일 저녁 8시(하절기), 7시 30분(동절기)에 봉헌되며 제주 성지 순례자 등을 위한 미사 또한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봉헌된다.
김대건 신부의 행보를 담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바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가톨릭 신학교정, 고향인 솔뫼성지 그리고 순교자의 길이라 할 수 있는 미리내, 절두산 성지 등에 모셔진 것처럼 그의 행보에서 중요했던 용수리도 유해가 모셔진 것이다.
이와 함께 당대 천주교인에게 가해진 고문 및 형벌에 대한 전시도 함께 치러지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의 주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활동 내역, 그리고 그의 서신이나 소장품, 의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용수리 해안에 표착하던 모습을 디오라마로 구성해 눈길을 끌었다. 아주 큰 규모는 아니지만 김대건 신부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장소로 충분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천주교의 역사와 대한민국에서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며 한국을 찾았던 ‘선종 사제’의 기록들, 유품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박해 속에서 지금의 모습까지 이어진 천주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한편 기념관 바로 옆에 자리한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 성당은 실제 미사가 봉헌되는 성당인 만큼 그 어느 성당보다도 정숙하고 엄숙한 모습이었다. 혹여나 이곳을 찾는 ‘신자가 아닌’ 이가 있다면 다른 종교, 그리고 중요한 공간이라는 걸 이해하고 이 정숙에 공감하길 권한다.
천주교인에게 더욱 특별한 제주
참고로 제주도와 용수리 해안, 그리고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 성당 및 기념관은 천주교인들에게 특별한 장소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순례에 나서고자 하는 신자라면 꼭 찾아야 할 장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캐딜락 브랜드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앙트완 드라 모스 캐디약(Antoine de la Mothe Cadillac)’ 경은 17세기 중반에 태어나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군인이자 모험가이자 정치가다. 그리고 덧붙여 프랑스 남부 ‘캐디약’ 지방의 가문인 만큼 그 누구보다도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