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그리고 사람 이야기] 반려인의 ‘냥통령’ 수의사 나응식
“길고양이, 이제 동네고양이라 불렀으면”
나응식 수의사가 지난 15일 서울 논현동 자신의 동물병원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그람이 최필선 ww5654@naver.com

‘야옹신’ ’냥신’ ‘냥통령’ 그리고 ‘거대고양이’.

고양이와 관련한 별명만 여러 개인 나응식(41) 그레이스동물병원 대표원장은 최근 고양이 반려문화가 급속히 번진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수의사 가운데 한 명이다. 나 수의사는 고양이의 행동을 분석하는 ‘행동학’을 기반으로 말 못하는 고양이와 고양이의 행동만 보고 그 마음을 알고 싶은 보호자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일을 한다. 고양이가 ‘골골’ 소리를 내면 기분이 좋다는 뜻이라는 것이 ‘고양이 행동학’의 가장 널리 알려진 예다. 그래선지 스스로를 ‘냥신도’라 칭하는 극성팬(?)들이 생길 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는 유명세를 즐기듯 최근에는 고양이와 관련해 진료는 기본이고 강연과 유튜브 방송을 넘어 책까지 출간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양이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은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반려동물 행동교정, 개는 강형욱, 고양이는 나응식

나 수의사가 고양이 행동 전문가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건 지난해 3월 반려묘 행동교정 프로그램인 EBS ‘고양이를 부탁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다. 반려견 행동교정 전문가 강형욱씨를 스타 반열에 올린 반려견 행동교정 프로그램인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고양이 버전인 셈이다. 우스갯소리로 상당수 반려인들에게 강 전문가는 ‘강아지 강씨’, 나 수의사는 ‘냐옹이 나씨’라는 본관의 시조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수의사로서 동물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고양이를 많이 접하게 됐고, 많이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고양이가 좋아졌다고 했다. 초등학생과 대학생 때 반려견을 키웠던 그가 고양이를 처음 접한 건 충북대 수의대 재학 당시 친구부탁으로 고양이를 1주일간 임시보호하면서다. 수의대생 신분상 일반인보단 동물을 잘 돌볼 거라는 주변의 선입견과 반려견을 키웠던 본인 경험상 ‘개와 비슷하겠지’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성급하게 임시보호를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전 그때 나쁜 임시보호자였어요. 고양이가 하루를 살더라도 화장실에 쓸 모래처럼 기본적으로 필요한 게 있는데, 그냥 강아지랑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 따로 준비한 게 없었거든요.”

나응식 수의사와 9년째 함께 생활하고 있는 반려묘 아인. 냥신TV 캡처.

그가 고양이에게 본격적으로 빠진 건 2010년부터 병원에서 아메리칸숏헤어 품종 아인(9살)을 키우면서다. 당시 진료를 받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분양을 받은 게 지금의 아인이다. 병원에서 본인은 물론 다른 직원들의 사랑까지 받으며 자란 탓인지, ‘철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른 고양이를 진료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진료실로 들어와 다른 고양이의 물건을 마치 제 것처럼 쓰려고 하거나, 아픈 고양이를 데려온 보호자 표정이 안 좋은데 무릎 위로 올라가 애교를 부려요.”

2005년 일본 미야자키대 동물병원 외과연구원을 1년간 활동할 당시 처음 행동학을 제대로 접했다는 그는 아인이를 키우는 반려인과 고양이를 진료하는 수의사라는 입장을 수년간 병행하면서 행동학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행동학만으로 질병을 고칠 수는 없지만, 정확한 치료를 위한 문제점 파악 등에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와 뜻이 같은 수의사들이 하나 둘 늘면서 국내에서도 행동학에 대한 필요성이 수의학계에 점차 공론화됐고, 그가 집행부로 활동하던 서울시수의사회가 이에 발맞춰 2014년 반려동물 행동학연구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같은 해 국내 수의사들이 집필한 첫 행동학 서적인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관계’를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국내 수의대에는 행동학 관련 학제는 없고, 정식 커리큘럼보다는 외래 강사를 통한 학습이 많은 편”이라며 아쉬워했다.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평소 행동학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그는 2017년 tvn ‘대화가 필요한 개냥’에 반려묘 전문가로 출연했고, 이어 지난해부터는 EBS‘고양이를 부탁해(고부해)’에도 출연해 문제 행동을 보이는 반려묘들에게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초 보호자에게 곁을 안 주는 고양이 ‘솔솔이’의 문제를 짚었는데, 처음엔 심리적인 문제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서야 치아가 아파 얼굴 주변에 오는 손길을 거부했다는 걸 알았죠. 한 가지 원인을 찾으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방송에서는 이런 과정들을 자세히 다루지 못하는 만큼 기계 고치듯 쉽게 하는 것 같이 보일까 항상 신경 쓰입니다.”

나응식 수의사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냥신TV에서 ‘월간 냐옹신’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냥신TV 캡처

정규 방송 특성상 많은 이야기를 풀 수 없었던 아쉬움은 유튜브 채널 개설로 이어졌다.

그가 지난해 10월 개설한 유튜브 채널 '냥신TV'는 이달 중순 현재 8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외국에는 고양이보호협회 등에서 고양이 정보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꽤 있는데, 국내에는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만 담는 채널들이 대부분인 게 안타까워 채널을 개설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코너는 고양이와 관련된 영화나 소설 등을 소개하는 ‘월간 냐옹신’이다. 그는 “고양이 반려정보와는 성격이 다른 내용이다 보니 조회수가 가장 적지만 의미 있는 내용이라 생각한다”며 “‘실버 버튼’(채널 구독자가 10만 명 이상인 유튜브 채널)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나 수의사는 지난 14일 냥신도 100여명과 함께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 출간을 기념하는 북콘서트도 열었다. 지난달 출간된 ‘잠시 고양이면 좋겠어’는 나 수의사가 반려인과 수의사로서 직접 경험한 내용을 고양이 반려생활과 관련된 정보에 접목해 읽기 쉽게 쓴 책이다.

기본 습성과 행동 분석부터 관리 요령까지 고양이 반려생활과 관련된 정보가 담긴 책의 맨 뒤에는 그가 직접 출제한 ‘집사(고양이 반려인) 역량 테스트’시험지도 첨부돼 있다. 기초 질문부터 고난이도 내용까지 뒤섞인 고양이 마음 탐구영역 출제 문항 20개(문제당 5점) 가운데 18개 이상을 맞혀 90점 이상을 받으면 ‘만점 집사’에 해당한다고.

나응식 수의사가 진료실에서 업무를 보는 동안 곁을 지키고 있는 반려묘 아인. 나응식 수의사 제공

소위 요즘 잘 나간다는 수의사지만 그도 말하기 쉽지 않은 고충은 있다. 진료과정에서 1년에 많게는 수십 마리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목격해야만 하는데, 그때마다 감정조절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는 “진료 받는 고양이가 질병 등으로 사망한 모습을 본 직후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은 아깽이(아기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보호자와 웃고 대화해야 하는 마음이 어떨지 헤아려 보라”는 말로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다. 그는 “복잡한 심경에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려다 보니 차갑고, 직설적이고, 시크한 이미지가 된 것도 같다”고 했다.

스스로는 따뜻한 사람인데 이미지는 차갑게 각인된 것이, “항상 개와 비교당하며 차가운 동물로 인식되는 고양이와 닮았다”고 말하는 그는 길고양이에 대한 편견도 갖지 말아달라 당부했다. “가장 힘겹게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은 과거 도둑고양이로 불릴 때보다 크게 인식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어요. 앞으로는 길고양이가 ‘동네고양이’로 불리며 정말 사람들과 공존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태무 동그람이 팀장 santafe29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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