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 이란 북동부 담간(Damghan) 
이란의 뿌리라 할 담간의 테페 히사르 유적 한가운데로 기차가 달리고 있다. 잃은 것은 역사요, 얻은 것은 속도다.
담간의 대략 위치. 구글맵 캡처.

이란 북동쪽 마슈하드에서 테헤란으로 길고도 느린 여정을 시작했다. 무려 한국의 16배가 넘는 이란 땅을 주무르는 고원. 봉긋하고도 삐쭉한 산 사이를 유려한 기차가 조심스럽게 빠져나간다. 어쩌면 이 완행열차야말로 이란의 태곳적 도시로 시간여행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교통수단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미래로 달리는 5G 시대에 시간을 거스르는 선로 위에 올랐다. 기차는 수천 년의 영화를 안은 담간(Damghan)에 우릴 내려 놓았다.

기차는 여러 여행자를 만나는 호스텔과 닮았다. 대화가 섞이고 긴 여정일지라도 시간은 짧다.

담간 기차역에 털썩 내려진 배낭이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사막인가. 낙타 한 마리쯤은 나와 줘야 할 것 같은 물기 한 점 없는 풍경이다. 담간의 역사는 기차역 부근에 있는 테페 히사르(Tepe Hissar) 유적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 이란인의 조상인 아리아인이 이 땅에 정착한 게 기원전 4,000년 무렵이다. 덕분에 ‘첫째’의 영예가 많다. 고대 국가 파르티아의 수도였고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도 이곳에 있다. 최악의 지진과 화려한 번영의 우여곡절을 겪은 후 지금의 담간은 조용하고 낮은 자세다. 대개 시라즈와 이스파한 등 이란 중부를 훑는 여행자의 버킷리스트에 담간은 빠져 있다. 이란의 뿌리를 학습하는 워밍업 여행지로 충분히 가치 있는 곳인데 안타깝다.

기차역에서 시내로 가는 길, 타리하네 모스크는 담간으로 입성하는 표식이다.
정교한 벽돌 퍼즐 맞추기와 최초의 캘리그래피인 쿠픽이 조화로운 미나렛. 꼭대기는 오랜 풍파에 훼손됐다.
365일 어떤 어둠도 깃들지 않는 피레 알람다르 무덤. 잠든 아버지 모함마드 빈은 무섭지 않을 것이다.
무덤 바깥의 쿠픽 흔적.
무덤 안의 쿠픽. 패턴이 화려하고 기품이 있다.
건축가의 손가락 자국은 후세에 남기는 위트 있는 보너스.

담간 시내는 도보로 동선을 짜기가 제법 쉽다. 기차역에서 이맘 호메이니 회전교차로까지, 그리고 교차로 주변으로 볼거리가 몰려 있다.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인 타리하네(Tarikhaneh) 모스크는 담간의 랜드마크다. 벽돌에 새긴 정교한 문양이 26m 미나렛(모스크의 첨탑)을 우아하게 장식하며 하늘로 솟구친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사산왕조(226~651) 시대엔 조로아스터교의 사원이었다. 담간의 또 다른 사원인 피레 알람다르(Pir-e Alamdar) 첨탑의 정교함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담간의 통치자 아부하드가 극진한 아버지 사랑으로 헌사한 무덤이다. 실내 벽면의 쿠픽(암각 명문)에 유난히 시선이 꽂힌다. 최초의 캘리그래피인 쿠픽이 짙은 남색으로 코란의 문구를 포함해 원형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12세기 건축 당시 새긴 페르시아인의 숭고한 지혜가 지금도 건재하다. 문을 닫은 낮에도, 휘영청 달밤에도 실내는 신통하게 밝다. 중앙에서 소리를 내면 웅장한 울림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건축가가 그의 명작에 손가락 자국을 남긴 것도 십분 이해가 간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능이 아니던가.

이란의 시원이라 할 테페 히사르 유적.
유적 어디에도 ‘테페 히사르’란 제대로 된 표식이 하나도 없는 점이 아쉽다.
이란 동북부 도시 담간의 테페 히사르 유적. 기원전 5,000년으로 거스르는 21세기 시간여행자.

기차역 쪽으로 좀 더 긴 걸음을 내디뎠다. 테페 히사르다. 기원전 5,000년부터 2,000년까지의 시간대로 이동하는 길은 덥고도 무겁다. 무려 3,000년 간 이란의 선조가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린 육중한 유적지인데 첫 발굴은 1931년에야 시작됐다. 주로 농경생활을 했다는 증거를 비롯해 선사시대의 유골과 당시 사용한 무기와 장식품 등이 다량 발견됐다. 발굴이 늦은 것도 의외지만, 현재의 상황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기차 선로가 테페 히사르의 숨통을 정확히 끊는다. 유적을 알리는 표식 대신 담간 기차역 푯말만이 또렷하다. 편의를 앞세워 사적을 훼손한 예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막상 7,000년 유적지를 반 토막 낸 철로 앞에 서니 긴 한숨만 나온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기차를 탄 우리도 같은 죄인이구나. 담간 시내를 바라보니 날 선 병풍바위가 능선을 그리고 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라이프 최신기사